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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서 ‘이상한 나라’로 간 에마 스톤…성애 오디세이로 자아를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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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랜드’서 ‘이상한 나라’로 간 에마 스톤…성애 오디세이로 자아를 찾다

입력
2024.03.05 13:00
수정
2024.03.05 14:00
22면
0 0

오스카 11개 부문 후보작 ‘가여운 것들’
스톤, ‘어른 몸+아기 정신’ 인물 연기
백지상태 인물로 통념과 편견 풍자해

영화 ’가여운 것들‘ 속 주인공 벨라는 어른의 몸을 지녔으나 아기의 정신을 가진 인물이다. 백지상태 정신을 지닌 그는 세상 모든 고정관념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가여운 것들‘ 속 주인공 벨라는 어른의 몸을 지녔으나 아기의 정신을 가진 인물이다. 백지상태 정신을 지닌 그는 세상 모든 고정관념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이상한 감독이 이상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이상한 이야기를 펼친다. 괴이하고 낯설지만 종종 웃기고 전복의 쾌감을 자주 선사한다. 파격적인 사연이 고정관념을 뒤집고, 기이한 볼거리가 동공을 자극한다. 영화 ‘가여운 것들’은 별나고 새로우며 진귀한 영화다.

빅토리아여왕 시대 영국 런던에서 이야기는 시작되나 우리가 아는 그 시절 그 공간이 아니다. 다중우주가 있다면 어딘가에 있을 만한 시공간이다. 증기기관 기술이 세계를 지배하고, 기이한 과학이 횡행한다. 고전 소설 ‘프랑켄슈타인’(1818) 속 상상이 현실화된 세계라고 할까. 주인공은 벨라(에마 스톤)다. 벨라는 몸과 마음이 따로 논다. 신체적으로는 성숙하나 정신적으로는 아기다. 걸음마를 막 시작한 아기처럼 몸을 움직이고 말투는 어눌하다.

벨라를 딸처럼 돌보는 이는 의사 갓윈(윌럼 디포)이다. 기이한 외모를 지닌 그는 기이한 실험으로 기이한 생명체를 만든다. 개와 오리가 결합되거나 개와 닭이 합쳐진 생명체가 그의 솜씨로 빚어져 집 안을 떠돈다. 갓윈은 벨라를 ‘창조’한 인물로 보인다. 흑마술 같은 그의 의술은 사회에서 공식적인 인정을 받는다. 갓윈은 벨라를 자신의 제자인 반듯한 의사 맥스(라마 유세프)와 결혼시키려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성에 막 눈을 뜨는 벨라는 음흉한 바람둥이 덩컨(마크 러팔로)의 꾐에 빠져 성애의 여행에 나선다.

‘가여운 것들’은 기이한 성장기다. 벨라는 시간이 지날수록 정신이 자라고 세상의 이치와 현실을 깨달아간다. 백지상태였던 그의 정신은 갖은 편견과 통념으로부터 자유롭다. 새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려고 한다.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벨라는 위험천만한 존재다.

순진무구한 벨라는 바람둥이 덩컨의 꾐에 빠져 세상을 여행하게 된다. 지질한 남자 덩컨의 의도와 달리 벨라는 이전과 다른 세상을 알게 되고 자신만의 세상을 찾아 나선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순진무구한 벨라는 바람둥이 덩컨의 꾐에 빠져 세상을 여행하게 된다. 지질한 남자 덩컨의 의도와 달리 벨라는 이전과 다른 세상을 알게 되고 자신만의 세상을 찾아 나선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그리스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가 스크린 속 ‘이상한 나라’를 빚어냈다. 그는 괴이한 소리로 의사소통하는 가족을 그린 ‘송곳니’(2009), 짝을 찾지 못하면 동물로 변해 버려지는 사람들의 사연을 담은 '더 랍스터'(2015) 등 특이한 내용을 특이한 방식으로 전해왔다. 그는 광각렌즈와 필름 질감을 활용해 그만이 제조해 낼 수 있는 별천지를 ’가여운 것들‘에 펼쳐낸다.

스톤은 인생 연기를 구현해 낸다. 그가 없었다면 ‘가여운 것들’의 완성이 가능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스톤은 수시로 옷을 벗고 강도 높은 침실 장면들을 소화하며 어른 몸속에 깃든 어린아이를 표현해 낸다. 배우 지망생을 연기한 ‘라라랜드’(2016)로 미국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할리우드 최고로 인정받은 이답지 않은 행보다. 난도 높아 보이는 역할에도 불구하고 스톤은 “그녀(벨라)는 세상에서 연기하기 가장 즐거운 캐릭터였다. 그녀는 어떠한 것에도 아무 부끄러움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지난해 7월 패션지 보그와의 인터뷰).

영화를 보고 나면 제목이 가리키는 존재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기성 관념에 휘둘려 살면서도 자신들이 주체적 인간이라 착각하는 남성들이 가여운 것인지, 태어날 때부터 기성체제에 짓눌려 굶주리고 학대받으며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가여운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둘 다일 수 있다). 분명한 건 세상의 틀을 깨고 자신만의 세상을 구축해 가는 벨라는 가여운 존재가 아니다.

스코틀랜드 포스트모더니즘 작가 앨러스데어 그레이(1934~2019)의 동명 소설(1992)을 바탕으로 했다. 지난해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최고상)을 수상했고, 10일 열릴 제96회 아카데미상 시상식 11개 부문(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 등) 후보에 올라 있다. 스톤이 두 번째 오스카 트로피를 손에 쥐어도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6일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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