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로기완', 척박한 삶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사람' [HI★리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로기완', 척박한 삶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사람' [HI★리뷰]

입력
2024.02.28 11:30
0 0

내달 1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
온기가 필요한 우리네 삶을 어루만지는 작품

'로기완'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로기완'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때때로 사랑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찾아온다. 사막에도 꽃은 피듯, 탈북자 로기완의 절박한 인생에도 한줌의 사랑이 피어난다. 이방인의 삶을 다룬 넷플릭스 영화 '로기완'은 돌고 돌아 결국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이야기다.

이 영화는 탈북인의 삶을 담아낸 장편소설 '로기완을 만났다'를 원작으로 한다. 벨기에로 밀입국한 함경북도 출신 스무 살 청년 로기완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이다. 한 다큐멘터리 작가가 로기완이 3년간 기록한 일기를 구해 그의 자취를 더듬어가는 구조로, 북한 주민과 탈북인들의 아픈 현실을 그려냈다.

영화는 소설보다 로맨스에 초점을 맞췄다. 삶의 마지막 희망을 안고 벨기에에 도착한 탈북자 기완과 삶의 이유를 잃어버린 여자 마리가 서로에게 이끌리듯 빠져드는 이야기를 담았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낯선 곳으로 향한 로기완과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마리의 만남을 통해 따스함을 전한다.

극 중 로기완(송중기)이 벨기에로 떠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어머니 옥희(김성령) 때문이다. 어머니의 목숨값과 바꾼 삶이기에, 기완은 화장실에서 잠을 청하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연명하면서도 악착같이 생의 의미를 되새긴다. 난민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낯선 땅, 차가운 시선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그의 모습이 극 초반부를 꽉 채운다.

로기완을 연기한 송중기는 '죄책감'이라는 단어를 많이 떠올렸다고 고백했다. 작품을 준비하며 몇 년간 고민한 끝에 내린 결론은 '더불어 사는 사람을 통해 죄책감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삶의 여정을 다뤘고, 그 안에서 많은 일을 겪는 만큼 힐링도 받는다. 그래서 '힐링 영화'라 말하고 싶다"고 했다.

'로기완'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로기완'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로기완'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로기완'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기완의 지갑을 훔쳐 달아난 마리(최성은)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이일화)에 대한 그리움과 아버지(조한철)를 향한 원망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벨기에 국적의 한국인 사격선수였던 그는 훈련을 떠난 도중 벌어진 일 때문에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하고, 바닥까지 내려간 삶의 단면을 보여준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서도 살고자 애쓰는 기완을 만나 삶에 대한 의지가 움튼다.

작품은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대부분 촬영됐다. 김희진 감독은 보도블록의 질감, 가로등 불빛, 시간대까지 세심하게 챙기며 이국적이면서도 적막한 풍광을 스크린으로 옮겨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배우들의 노력도 돋보인다. 처음으로 북한말 연기에 도전한 송중기는 자연스러운 대사 처리로 몰입감을 깨지 않는다. 한 차례 작품을 고사했던 그는 시간이 지난 후 이 대본을 받고 '내 영화'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한다. 실제 삶에서도 많은 일들을 겪은 만큼 책을 볼 때의 느낌 또한 달랐을 터다.

김성령의 연기도 좋다. 로기완의 어머니로 분한 김성령은 짧지만 강력한 존재감으로 극 전개에 큰 당위성을 부여한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북한말 연기로 드라마 속에서 보여줬던 세련된 엄마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로기완 외삼촌 역의 서현우 또한 연기 내공을 발산하며 신스틸러 역을 톡톡히 해냈다.

오디션을 통해 작품에 합류한 최성은은 묘한 매력으로 보는 이들을 사로잡는다. 카메라의 각도나 메이크업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얼굴이 인상적이다. 사격과 불어를 소화하면서 쉽지 않은 도전을 해냈다. 선주 역의 이상희는 압도적인 연기로 시선을 붙든다. 기완이 벨기에 정육 공장에서 만난 조선족 출신 인물로, 무거운 분위기를 살짝 풀어주는 역할도 한다. 수많은 작품에서 크고 작은 역할로 활약해온 경력이 '로기완'을 통해 빛을 발한다.

초반 로기완의 서사에 많은 시간이 할애되면서 각 캐릭터들의 설명이 부족한 점은 아쉽게 다가온다. 마리와 로기완의 사랑이 다소 급진적으로 전개되는 느낌이 있고 과한 설정으로 보이는 지점도 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확실하게 다가온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와 치유에 대해 집중해서 보면 좋을 작품이다. 또한 자극적인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나만의 길을 가겠다'는 뚝심이 엿보여 로기완의 인생과도 닮아있는 듯하다. 각박한 우리네 삶에도 한줌의 사랑은 필요하지 않을까.

유수경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