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지상파 드라마 '아이 러브 유' 인기
한국인과 한국식 사랑하는 'K멜로' 제작 바람
①IT업계 등 한국 청년 선호 현상
②'K콘텐츠 매료' 10~30대, 한국 문화 거부감 없어
해외 수출 판로 넓히려는 전략이기도
일본에서 한국 청년과의 연애를 주제로 한 콘텐츠들이 잇따라 제작되고 있다. 일본 지상파는 '한국 연하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를 선보였고, 일본 넷플릭스는 'K드라마 같은 사랑을 하고 싶어'란 제목을 달고 한국과 일본 청년들이 데이트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까지 내놨다. '한국 청년과의 연애'가 일본에서 한류의 새로운 키워드로 떠오르는 양상이다. 한국 청춘스타들이 나오는 K콘텐츠에 매료된 일본 10~30대가 주도하는 변화라는 분석이 나온다.
일본 안방극장 달구는 '순두부 청년'
한국 청년과 한국식으로 연애하는 'K멜로'를 다룬 TBS 드라마 '아이 러브 유'(Eye Love You)는 지난달 일본 넷플릭스에서 1위에 올랐다. 오사카에 사는 시청자 나츠(24)는 최근 이 드라마를 본 뒤 도쿄로 순두부찌개를 먹으러 갔다. 한국 유학생 태오가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난 모토미야 유리(니카이도 후미)에게 순두부찌개를 끓여 보온병에 담아주는 모습에 반해서였다. 도쿄 시부야엔 이 드라마에 나온 비빔밥 등 한식을 먹을 수 있는 카페까지 등장했다. 한식을 뚝딱 만드는 태오는 '무인도의 디바'(2023)등에 출연한 한국 배우 채종협(31)이 연기했다.
드라마에서 태오는 "오다가 주웠다"며 모토미야에게 꽃을 주고, 야근하는 모토미야의 사무실로 음식을 만들어 가져다준다. 'K연하남'이 만든 한식을 먹으며 모토미야는 "에너지 차지(Charge·충전)"라고 말한다. 외모가 훤칠한 태오는 성격에 구김살도 없다. 무뚝뚝한 것 같으면서도 속 깊은 '츤데레'이면서 든든하고 자상한 그는 남성에 대한 온갖 판타지가 투사된 인물이다. 그런 역할을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 맡은 것 자체가 이채롭다. 한국 청년이 가까이하기 어려운 연예인(NHK '돈도하레'·2007·류시원 출연) 혹은 영업 실적이 좋지 않아 상사에게 혼나기 일쑤인 직장인(후지TV '솔직하지 못해서'·2010·김재중 출연) 등으로 그려졌던 것을 고려하면 180도 달라진 캐릭터 설정이다.
'아이 러브 유' 제작진은 TBS를 통해 "한국 청년과의 연애에 관심 있는 일본 청년이 많다"며 드라마 제작 배경을 들려줬다. 1990년대 일본 대중문화에 푹 빠진 한국 X세대가 일본인과 일본 문화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SNS에 줄줄이 올라오는 한국 '약속'하는 방법
한국 청년이 일본 드라마에서 로맨스 판타지의 대상이 된 것은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는 "정보통신(IT) 업계에서 일본 기업들의 한국 청년에 대한 선호가 특히 높다"며 "일본에서 취업하거나 유학을 간 한국인들이 늘면서 그들에 대한 관심이 커진 일본 사회의 현실이 드라마로 반영된 것"이라고 진단했다. 나카무라 야에 한국외국어대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는 "드라마 '겨울연가'(2002)로 일본의 한류가 시작된 지 20여 년이 흘렀다"며 "당시 한류를 즐긴 부모 세대가 키운 일본의 10대와 20대가 한국 청년들의 문화를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이 현상을 바라봤다.
'아이 러브 유'엔 라볶이, 전, 잡채 등 다양한 한식을 비롯해 태오를 통해 드러나는 한국 문화적 특징이 곳곳에 배어 있다. 이 드라마를 즐겨 본다는 니시키 사야카(20)와 덴진 나오코(31) 등 일본 시청자들은 한국인들이 약속을 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태오가 밸런타인데이 데이트 약속을 하며 유리에게 새끼손가락을 걸거나 양손 바닥을 마주 비비는 장면 등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엔 태오가 약속할 때의 손동작을 그림이나 영상으로 설명하는 게시물이 줄줄이 일본어로 올라왔다.
미국선 '한국 이민사', 일본선 'K멜로'
일본 예능의 'K멜로' 제작은 더 적극적이다. 일본 OTT 아베마는 일본 10~30대 여성들이 서울에서 또래의 한국인들과 데이트를 즐기는 연애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로맨스는 데뷔 전에'(2023), '하트시그널 재팬'(2022) 등을 기획했다.
미국 할리우드 제작사들이 드라마 '성난 사람들'과 '파친코' 등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와 이민자들의 정체성을 담은 'K스토리'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면, 일본 제작사들은 'K멜로' 콘텐츠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그간 K콘텐츠의 수입이 일본 한류를 만들어냈다면 이젠 일본에서 'K멜로' 콘텐츠를 직접 생산하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다. ①한류에 친숙한 일본 소비자를 불러 모으면서 ②해외 판매 시장을 넓히기 위한 투트랙 전략으로 해석된다. 이영훈 한국콘텐츠진흥원 일본 비즈니스센터장은 "예전엔 '미생' '시그널' 등 한국에서 인기 있는 장르 드라마를 일본 시장에서 리메이크하는 방식으로 한류가 소비됐다면, 이젠 일본 업계가 한국 청춘 배우를 직접 섭외해 한국적 특수성이 담긴 멜로 콘텐츠 제작으로 국내외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국 연예기획사엔 일본 업계의 출연 요청이 잇따르고 있다. 20, 30대 배우를 관리하는 국내 매니지먼트회사의 한 대표는 "일본 제작사에서 대본도 나오기 전에 '이런 소재로 드라마를 기획 중이니 나중에 대본이 나오면 검토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며 "콘텐츠 파급력 등을 생각하면 일본보다 국내 시장이 먼저이긴 한데, 요즘 국내 드라마나 영화 제작 편수가 줄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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