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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게 살고 싶지 않은 마음

입력
2024.02.25 22:00
수정
2024.03.14 10:3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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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착하지 않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그 중대한 결심을 아침 산책길에서, 어금니 앙다물며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새해를 맞아 아침저녁으로 걷기 운동을 시작하고 한 달쯤 지난 날이었다. 집 뒤, 자주 걷는 산길을 올라가는데 S자로 굽어진 계단 안쪽 잔디 위에 맥주캔 여섯 개가 일렬횡대로 놓여 있었다. 지난밤에는 없던 물건이었다. 누군가 한밤중에 야경 좋은 이곳에 맥주를 들고 와서 마셨던 게 틀림없다. 한 명이 여섯 캔을 다 마셨을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두 명 혹은 세 명? 걸음을 늦추며 올라가는데 조금 더 위쪽에 돌로 야무지게 눌러놓은 오징어 과자와 새우 과자 봉지가 눈에 띄었다.

순간 비위가 확 뒤틀렸다. 다 마신 맥주캔을 저렇게 한 줄로 세우고 과자 봉지를 돌로 눌러둘 정신이었다면, 분명 만취 상태는 아니었을 터다. 바로 아래 아파트로 들어가면 쓰레기를 수거하는 장소도 좌우로 다섯 개나 있었다. '야밤에 굳이 여기까지 와서 술을 마시고 이런 식으로 쓰레기를 버린 놈들의 도덕적 감수성은 대체 뭐란 말인가. 세상이 왜 이렇게 뻔뻔스러운 인간들의 놀이터로 변해가는 걸까.'

나는 평소 가방에 딱지처럼 접은 비닐봉지를 두세 개씩 넣고 다닌다. 가끔 전통시장을 지나다 냉이나 감자 몇 개를 살 때도 필요하고, 식당에서 먹다 남은 새우튀김 등을 싸 올 때도 요긴하다. 물론 외출 중에 생긴 휴지나 산책로에 떨어진 자잘한 쓰레기를 주워 담는 용도로 쓰는 일이 제일 많다. 한데 그 아침에는, 나란히 세워진 맥주캔을 내 손으로 주워 담기가 싫었다. 싹퉁머리 없는 녀석들의 부도덕에 더는 호구 잡히기 싫다는 자의식이랄까? 부리나케 계단을 뛰어올라 사직공원 쪽으로 내달린 뒤 그날 저녁에는 아예 반대쪽 동네를 향해 산책을 다녀왔다.

사람이 견디기 힘든 일 중 하나가 졸렬한 자기 모습과 마주하는 것이다. 다음 날 아침, 관성처럼 익숙한 계단을 오르다가 다시 보고 말았다. 이번에는 두 개가 더 늘어나 맥주캔 여덟 개가 나란히 서 있었다. 위쪽 돌 아래 오징어 과자와 먹태 과자 봉지가 보태진 모양이 눈에 들어왔다. 젠장! 애써 태연한 척 산등성이를 올라가는데 불편한 감정의 소용돌이와 함께 점점 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발길을 돌린 후 아까 그 계단으로 내려왔다. 맥주캔 여덟 개를 하나하나 발밑으로 떨어뜨린 뒤 냅다 밟아 찌그러뜨렸다. '어디, 걸리기만 해봐.'

설마 하찮은 쓰레기 하나로 내 감정이 분화구 속 부글대는 물처럼 끓어오르는 걸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지만, 이렇게라도 분노를 드러내고 나니 감정이 다소 잦아들고 손가방에 넣어뒀던 비닐봉지를 꺼내 형편없이 구겨진 깡통과 과자 봉지를 수거할 마음이 생겼다.

다행히 빈 맥주캔은 다시 보이지 않았지만, 사소하디 사소한 일로도 예상치 못하게 틀어지는 것이 사람 마음인가 보다. 그날 이후 염치 불구, 부도덕한 이들의 얼굴이 TV나 신문에 비칠 때면 그 아침의 풍경이 떠오르며 깡통을 밟아 찌그러뜨리던 분노가 다시금 치밀곤 하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는 게 세상사라며 착하게 웃는 대신, 어금니를 꽉 깨물며 벼르는 마음. 다만 부작용이 이리 클 줄은 나도 몰랐다. 화를 삭이지 않고 며칠을 지내다 보니 위염이 생겨 낫지를 않는다. 어째야 좋을까.


지평님 황소자리 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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