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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지는 의사들

입력
2024.02.22 19:2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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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수준의 수입을 보장받는 의사들
그만한 가치를 환자에게 돌려주고 있나
승자독식구조 승자인 양 특권의식만 보여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비운 지 사흘째인 22일 오후 원주시의사회 회원 100여 명이 원주시청 앞 광장에서 "의대 정원 졸속 확대로 한국 의료가 고사한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병원을 비운 지 사흘째인 22일 오후 원주시의사회 회원 100여 명이 원주시청 앞 광장에서 "의대 정원 졸속 확대로 한국 의료가 고사한다"며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연합뉴스


의료문제만큼 한 사회를 곤경에 빠뜨리는 이슈가 없다. 미국에선 정권 색깔을 바꿀 정도이나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데는 예외가 없다. 오바마에 앞서 네 명의 대통령이 전 국민 의료보험을 추구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임금인상이 어려운 이유도 다름 아닌 인플레율의 서너 배에 달하는 의료보험료다. 금융위기 때 일시 파산한 GM은 당시 자동차 1대에 의료비 1,500달러를 얹어 팔았을 정도니 버티는 게 이상했다. 그 반성인 오바마 케어는 트럼프의 폐기, 바이든의 뒤집기 속에 무력화되고 있다.

우리도 박근혜 정부의 원격진료, 문재인 정부의 의대 400명 증원 추진이 무산됐다. 미국과 다른 점이라면 정쟁이 아닌 의사들의 집단거부라는 것이다. 의사들은 역대 정부를 상대로 정책충돌에서 9전 전승을 기록하며 이익을 지켜냈다. 가장 큰 무기는 환자를 볼모로 삼은 의료공백이다. 인질극 소동에 다름 아니지만 그 결과는 참으로 기이하다. 내가 낸 보험료와 병원비로 의사들은 세계적 수준의 수입을 보장받는 난공불락을 쌓았지만, 정작 그만한 가치는 돌려주지 않고 있다.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를 보면 인질들은 아직 풀려나지 않았다.

사람 생명과 의사의 이익 가운데 어느 쪽이 중하냐고 물으면 답하기 어려워진 게 우리 의료 현실이다. 다치고 아픈 사람들을 건져내야 할 의료계에서 믿기 힘든 일이다. 이번 전공의 집단 사직 사태에는 의사들의 특권층 정서까지 더해졌다. 수능 고득점자라는 데서 출발한 이상한 선민의식이 배경으로 짐작된다. 그 우월감이 자신의 능력을 사회에 돌려주려는 것이라면 묵인할 수 있다. 그런데 자신들에게 사회가 더 많은 것을 약속해야 한다는 것은 특권의식에 젖어 생떼 쓰는 아이와 같다.

더 무서운 것은 잘못된 주장들이 그들만의 세계에서 반복되고 학습되면서 공공연히 집단적 피해의식을 드러내는 데 있다. 후배 취재기자는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정책에 대한 의사들의 분노를 듣다가 보면 정작 딴 세상 얘기를 한다며 고개를 흔들었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거나 ‘지방에 부족한 것은 의사가 아닌 민도’이고 ‘내가 없으면 환자도 없다’는 직업윤리마저 무너진 발언에 누가 이해와 공감을 표하겠나.

이들의 황당한 주장 중 하나가 의대 정원 확대를 불공정 문제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입시생을 줄 세워 3,000명 들어가던 의대를 5,000명까지 문을 넓히면 공정하지 않다는 억지다. 결국 한국사회의 승자독식구조에서 승자인 자신들의 독점적 보상은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이고 ‘너희는 비정규직이야’라고 말하는 것이나 매한가지다. 하지만 사실 수능 1등급 의사라고 명의가 아니듯 수능 9등급에게 명의가 될 기회를 주는 건 불공정하지 않다.

1970년대 강원 탄광지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고 조규상 가톨릭의대 교수에게 한 진폐 환자가 화랑 담배 두 갑을 꼭 쥐여줬다. “이 병이 내 잘못이 아니라, 일을 해서 생긴 거라고 밝혀줘 정말 고맙다”는 말도 함께였다. 고마움의 선물이 하필 담배였지만 조 교수는 이 일로 평생 산업보건 일을 할 힘이 생겼다며 잊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생전 진폐증으로 고통받는 석탄 광부들을 위한 국내 첫 산재병원을 건립했다. 18세기 어린 굴뚝 청소부들의 음낭암을 보고 굴뚝 속에 들어가 직업암을 처음 찾아낸 영국 의사처럼, 이 시대의 굴뚝을 찾는 우리 의사들의 이야기는 한편에서 계속되고 있다. 급식 종사자의 폐암 발병률이 일반인의 35배에 달하고, 마음을 병들게 하는 일터 괴롭힘까지 재해로 인정되는 것도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우리 사회는 이런 의사를 예우하고 흰 가운의 권위를 신뢰하는 전통이 강했다. 직업 이름 뒤에 ‘님’자 붙이는 게 일반적인데도 ‘의사 선생님’이라 칭하고, 다른 ‘사’자 전문직들과 다르게 ‘스승사(師)’를 써 높였다. ‘신의 수선공’이라 했을 만큼 병들고 아픈 사람을 고치는 의술이 중하고, 그 손길이 고마운 때문일 것이다. 히포크라테스는 의사가 이런 환자의 믿음을 위해 어느 정도의 비만으로 건강함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며 신뢰를 중시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우리 의사들이 드러낸 모습은 체구가 커졌는지 몰라도 저 정신은 왜소해진 게 아닌가 싶다.

이태규 논설위원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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