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거명령·구금상태서 '피의자' 취급
"한국에 오면 공연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꼬드김에 속아 국내로 들어온 필리핀 여성들이 있었다. 그러나 입국 후 이들은 성매매를 강요 당했다가 적발돼 강제 출국 명령을 받았는데, 억울함조차 풀어주지 않고 다짜고짜 출국 조치만 내렸던 한국 정부를 상대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하며 손해배상 소송의 재심을 청구했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필리핀 국적 A씨 등 3명은 지난해 12월 26일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을 다시 열어달라"는 재심 청구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재심은 확정된 판결에 중대한 잘못이 발견된 경우 이를 취소하고 다시 심리하는 절차로, 사건은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부에 배정됐다.
A씨 등은 공연 목적 사증(E-6-2 비자)을 받아 2014년 한국에 입국했다. 하지만 고용업체 직원들은 그들의 여권을 압수하고 폭력을 행사하면서, 공연 대신 성매매를 하라고 강요했다. 감금과 다름 없이 생활하면서 강압에 못 이겨 성매매에 내몰린 이들은 이듬해 3월 단속에 걸려 피의자로 입건됐다.
이후 출입국당국은 45일간 이들을 구금한 뒤 추방명령을 내렸다. 퇴거 명령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내 봤지만 번번이 기각돼 결국 패소가 확정됐다.
분위기가 반전된 건 2018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가 조사에 나서면서부터다. 약 5년 간의 조사 끝에 지난해 10월 이들은 권리 침해를 인정 받았다. A씨 등은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고 앞으로 무고한 여성들에 대한 인신매매 방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유엔 위원회 결론을 토대로 재심을 청구하게 됐다.
피해자들의 법률대리를 맡은 공익법센터 어필 소속 김종철 변호사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 한국 정부를 향해 개인의 권리 침해에 대한 배상과 제도 개선을 권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피해가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인정된 셈"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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