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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 상승의 욕망이 세운 베이징 '저장촌'... 어떻게 의류 메카가 됐나

입력
2024.02.16 15: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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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뱌오 '경계를 넘는 공동체'

저장촌 첫 의류도매시장인 타오위안시장. 글항아리 제공

저장촌 첫 의류도매시장인 타오위안시장. 글항아리 제공

중국 베이징 저장촌(浙江村). 1980년대 후반 중국 동남부 저장성 농촌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형성한 집거지다. 초창기 여섯 가구에 불과했던 마을은 10년이 안 돼 10만 명이 사는 공동체로 성장했다. 이후 중국 동북부 전역에 중저가 의류를 공급하는, 서울의 동대문시장 같은 의류 중심지가 됐다. 이주민들이 무리 지어 살던 작은 촌락은 어떻게 의류 산업의 메카로 성장했을까.

인류학자인 샹뱌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사회인류학연구소장의 책 '경계를 넘는 공동체'는 저장촌 형성 과정을 추적한 연구서다. 샹뱌오 소장은 베이징대 재학 시절인 1992년부터 6년간 저장촌에서 생활한 내용을 바탕으로 석사 논문을 썼고, 논문은 2000년 책으로 나왔다. 젊은 연구자의 저장촌 이야기는 중국보다 서구권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그는 단숨에 세계 인류학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샹뱌오가 저장촌 생활을 파고든 키워드는 '옷'이다. 1990년대 중반까지 저장촌 사람들은 번화가 노점에서 옷을 판매했다. 노점이 불법이었기 때문에 경찰 단속을 피해 몸을 숨길 수 있는 공중화장실 근처에 매대를 설치했다. 생존을 위해 국영 상점 직원들과 알음알음 관계를 맺었고, 상점을 임대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저자는 모든 관계가 '계(系)'라는 관계 사슬로 맺어진다는 점을 주목한다. 계는 학연과 지연을 바탕으로 하는 '친우권', 사업적 협력관계를 의미하는 '사업권' 등으로 나뉘는데 둘이 중첩되거나 한 사람이 여러 계에 속하는 경우가 흔했다. 책에는 친구·동향 사람을 중심으로 한 집단생활 속에서 '좋은 친척, 좋은 고향사람'으로 인식되려고 노력하면서도 끊임없이 외부의 새로운 사업 파트너를 찾는 저창촌 주민들의 모습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계로 구축된 사회에 구심력과 원심력이 절묘하게 작동한 것이 가장 큰 성장 비결이라는 게 저자가 내린 결론이다.

지금 베이징 저장촌의 모습은 달라졌다. 무허가 건물은 철거되고 교통과 위생, 치안이 몰라보게 개선됐다. 남은 사람들은 중상급 부동산을 구입해 평범한 도시 주민의 삶으로 편입했다. 주변에서 중심으로 진입하기 위한 저장촌 사람들의 분투가 결실을 이룬 것이다. 900쪽이 넘는 벽돌책을 일독하면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네 구도심의 풍경도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부푼 꿈을 안고 상경한 우리의 조부모와 부모 세대가 무채색 도시의 삶터에 얼마나 많은 서사를 숨겨놓았을지가 궁금하고, 알고 싶어진달까. 자기 이해의 구멍은 때로 남을 이해함으로써 채워지는 법이다.

경계를 넘는 공동체·샹뱌오 지음·박우 옮김·글항아리 발행·896쪽·3만9,000원

경계를 넘는 공동체·샹뱌오 지음·박우 옮김·글항아리 발행·896쪽·3만9,000원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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