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개봉 영화 ‘바튼 아카데미’
서로 미워하는 이들의 우정 그려
작품상 등 아카데미 5개 부문 후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방학이 시작된다. 기숙학교 바튼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가족과 함께할 시간에 마음이 들떠 있다. 유급생 앵거스(도미닉 세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머니가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전한다. 새아버지하고만 달콤한 시간을 가지고 싶으니 학교에 머물라고. 담당 교사는 엄격하면서 괴팍하고 고집 센 폴(폴 지어마티)이다. 폴의 지도로 매일 수업이 있고, 난방비 절약을 위해 양호실에 모여 자야 한다. 천국 같은 방학이 지옥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폴이라고 다를까. 휴가 대신 일을 하며 반항적인 앵거스를 단속해야 한다. 둘 사이 완충지대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는 영양사 메리(더바인 조이 랜돌프) 정도다. 고립된 학교 안에서 셋은 원만하게 방학을 보낼 수 있을까. 더군다나 때는 1970년 말. 스마트폰은커녕 인터넷도 없다.
‘바튼 아카데미’는 극적이지 않다. 눈이 휘둥그레질 볼거리를 제공하지도 않는다. 평범한 듯한 이야기에 삶의 숨겨진 의미를 담았다. 관객 입가를 종종 올라가게 하며 종국엔 보는 이의 심장 온도를 2, 3도 정도 올려놓는다. 나이도 생각도 입장도 각기 다른 두 사람이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며 서로를 알아간다는, 보편적인 소재의 힘은 강하다.
앵거스와 폴은 매사 부딪치나 알고 보면 공통분모를 지니고 있다. 폴은 자신이 가르치는 고대 문명사에 애정이 남다르다. 앵거스는 폴의 수업을 듣는 학생 중 고대 문명사 점수가 가장 높다. 폴의 청춘은 앵거스의 현재와 겹쳐 보인다. 폴은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랐고, 성격 때문에 빼어난 재능을 세상에 펼치지 못했다. 폴은 앵거스가 자신의 길을 갈까 우려하고, 앵거스는 그런 폴에게서 인간애와 사제의 정을 느끼게 된다.
폴과 앵거스가 함께 보는 영화 ’작은 거인‘(1970)이 이 영화의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어린 시절 미국 원주민 부족과 함께 살며 그들의 삶을 이해하게 된 백인 남자 잭(더스틴 호프먼)의 파란 많은 삶을 다룬 영화다. 어떤 이와 소통하고 그의 사정과 언행의 맥락을 속속들이 알게 되면 제아무리 높은 인종과 이념의 벽이 있어도 그를 오해하거나 미워할 수 없다. 고집불통 백인 교사와 사고뭉치 백인 학생, 가난한 흑인 영양사의 교유는 그 평범한 교훈을 새삼 통감케 한다.
‘어바웃 슈미트’(2002)와 ‘사이드 웨이’(2004) ‘디센던트’(2011) ‘네브라스카’(2013) 등을 연출한 알렉산더 페인 감독의 신작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치 않은 사연을 파고들며 웃음과 눈물을 빚어온 그의 솜씨는 더욱 원숙해졌다. 다음 달 10일 열릴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에 작품상과 남우주연상(폴 지어마티), 여우조연상(더바인 조이 랜돌프), 각본상, 편집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있다. 원제는 ‘The Holdovers(남은 자들)’이다. 2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