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세때 유럽행... 카라얀 사사
29년 보스턴 심포니 음악감독
일본이 낳은 세계적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가 지난 6일 별세했다. 향년 88세. 불과 25세의 젊은 나이에 파리로 건너간 그는 동양인이 서양 클래식 음악을 이해하고 지휘할 수 있겠느냐는 편견을 깨고,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 세계적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활동했다.
10일 일본 공영방송 NHK와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오자와는 지난 6일 도쿄 자택에서 심부전으로 사망했다. 가족과 친지들은 이미 장례식을 치렀고 추후 고별회 개최를 검토 중이다.
20대 때 카라얀과 번스타인에게 인정받아
1935년 당시 만주국이었던 중국 선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1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초등학생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중학생 시절 럭비로 손가락을 다친 후 지휘로 전향했다. 1959년 유럽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바로 그해 프랑스 브장송 국제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한다. 이듬해 쿠세비츠키 콩쿠르에서도 우승한 그는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인 헤르베르트 폰 카랴얀의 눈에 띄어 사사했고,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으로부터도 주목받아 뉴욕 필의 부지휘자로 채용됐다.
고인은 카라얀과 번스타인이라는 세계적 지휘자에게 모두 인정받으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지만 1962년 일본 최고의 명문 오케스트라인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려 했을 때는 권위적인 일본 단원들과 극심한 마찰을 겪고 지휘를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1965년 토론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취임했다. 이듬해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빈 필을 처음으로 지휘했고, 1970년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상임 지휘자로 취임했다.
보스턴 심포니 최장수 음악감독, 베를린필·빈필 객원지휘
1973년 미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중 하나인 보스턴 심포니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한 후엔 무려 29년 동안 재임해 최장수 상임지휘자가 됐다. 또 1980년대부터는 베를린 필과 빈 필의 주요 객원지휘자로서도 정력적으로 활동했다. 2002년에는 빈 필 신년음악회를 지휘했고 이듬해는 빈 국립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취임해, 카라얀 이후 최장 기간 재임했다.
오자와는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했다. 그는 1993년과 2004년 두 차례 빈 필과 내한 공연을 했다. 2007년엔 빈 국립오페라를 이끌고 내한해 예술의전당에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공연했다.
하지만 2010년 식도암 진단을 받고 빈 국립오페라극장의 음악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수술 후 7개월 만에 무대에 복귀한 그는 이후 건강 악화로 여러 차례 휴식기를 가지면서도 지휘자로서 활동을 계속했다.
보스턴 심포니, G선상의 아리아로 추도 연주
9일 오자와의 부고가 전해지자 세계 음악계에선 애도의 물결이 어어졌다. 고인이 29년간 음악감독을 맡았던 보스턴 심포니는 9일(현지시간) 오후 공연을 시작할 때 과거 오자와의 젊은 시절 지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내걸고 추도곡으로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했다. 오자와가 생전 친구가 죽었을 때 이별곡으로 연주했던 곡이다.
보스턴 심포니는 홈페이지에 추도문을 올리고, “오자와는 전설적 지휘자였을 뿐 아니라 차세대 음악가들을 열성적으로 지도한 교육자이기도 했다”며 그를 기렸다. 빈 필과 베를린 필, 뉴욕 필도 홈페이지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추도문을 발표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X(옛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국경을 넘어 큰 감동을 준 위대한 지휘자이며, 일본이 자랑하는 전설”이라며 그를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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