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치 그라모폰 두 번째 정규 앨범 '브리드' 발매
아내 죽음 기린 세이킬로스 비문에서 영감
팬데믹 동안의 삶과 죽음에 관한 고민과 고찰 담아
13일 롯데콘서트홀서 음반 발매 기념 리사이틀
"예전엔 행복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있었다면 꼭 행복하지 않아도 삶은 살아진다는 것을 배웠어요. 배고프지 않고서는 배부름을 알 수 없고, 고요함 없이 음악을 알 수 없는 것이니까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독일 베를린 국립오페라 등 세계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세계 정상급 소프라노 박혜상(36)의 말이다. 5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만난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이 상실의 시간이었다고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여럿 떠나보내고 슬픔 속에 침잠했다. 악보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음악으로 평가받는 그리스 세이킬로스의 비문에서 희망을 찾았다. "세이킬로스가 아내의 죽음을 기리며 쓴 것으로 보이는 '살아 있는 동안은 빛나라/결코 슬퍼하지 말라/인생은 잠시 동안만 존재한다/그리고 시간은 그 대가를 요구한다'라는 구절을 접하고 세이킬로스의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면 어떨까 생각했지요."
박혜상은 도이치 그라모폰(DG) 두 번째 정규 앨범 '브리드(숨)'를 내고 이를 기념하는 리사이틀을 이달 13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연다. 2020년 아시아 소프라노 최초로 DG와 전속 계약한 박혜상은 4년 만에 내놓은 이번 앨범에 팬데믹 동안의 죽음과 삶에 대한 고민과 고찰을 담았다.
'노마드' 음악인의 삶 끝내고 한국에 집 구해
박혜상은 "(새 앨범을 준비한) 지난 2년 반 동안 모든 것을 쏟았고 영혼을 다해 앨범을 생각하며 살았다"고 말했다. 그는 2022년 8월엔 하루 20~30㎞씩 25일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고, 에어비앤비 숙박을 계기로 우연히 알게 된 이탈리아 왕족의 도움으로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피에타를 봤다. 이 경험들이 영감이 됐다. 음반엔 현대음악 작곡가 루크 하워드에게 의뢰해 그의 곡 '시편'에 세이킬로스 비문을 넣어 편곡한 '와일 유 리브', 비반코스가 작곡한 '보컬 아이스' 등을 수록했다.
앨범과 공연 레퍼토리엔 한국 작곡가 우효원의 '어이 가리'도 들어 있다. 박혜상은 "한국 가곡을 많이 부르고 싶은 마음이 있고 한국 노래를 부를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앨범에 대해 "혼자 간직하고 싶고 아무도 몰랐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사람들에게 위안과 힘이 되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두 가지 마음이 왔다 갔다 한다"고 덧붙였다.
박혜상의 해외 공연 일정은 올해 연말까지 꽉 차 있다. 다음 달 영국, 아르헨티나를 시작으로 4월엔 영국, 프랑스에서 공연하고 여름엔 영국으로, 가을엔 독일, 헝가리 등으로 이동한다. 스케줄 때문에 거처를 정해 두지 않고 '노마드 음악인'으로 살던 박혜상은 최근 어머니의 권유로 한국에 집을 구했다. 그는 "집은 마음속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침대가 있는 게 이렇게 좋을 줄 몰랐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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