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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적 아동학대 신고의 대가

입력
2024.02.06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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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학교 교실. 게티이미지뱅크

학교 교실. 게티이미지뱅크

"실제로 어땠는지는 아무 상관없어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괴물' 속 후시미 교장은 미나토 학생을 때리지 않았다는 호리 교사의 항변에 무심한 듯 말했다. "절대로 안 그랬다"는 교사에게 교장은 "압니다"라 할 뿐이다. 결국 교사는 교장 뜻대로 학부모들이 모인 자리에서 공개 사과했다. 나중에 미나토는 교장에게 "거짓말했어요"라며 속사정을 털어놓는다.

'라쇼몽'처럼 학부모와 교사, 학생의 시선으로 나눈 이 영화 일부를 내 관점에서 굳이 푼 것은 지난달 취재한 한국의 '호리 교사' 사연이 오버랩되어서다. 서울의 한 초등교사 A씨는 지난해 7월 한 학생이 카카오톡 프로필에 쓴 사진으로 불거진 학생들 간 초상권 침해 여부 분쟁을 중재하려 사실관계를 파악하다가 궁지에 몰렸다. 사진을 사용한 학생의 부모는 '다른 학생이 있는 교실에서 자녀를 조사했다'며 정서학대를 주장했다. 그러면서 남은 학기 A씨의 병가, 2학기 전근의 인사 조치를 요구했다. 안 들어주면 A씨에 대해 법적 조치한다고 경고했다.

교장은 A씨가 겸하던 학년부장 역할을 했을 뿐이라 보면서도 도리어 먼저 학부모 방문 당일 A씨를 신고했다. 아동학대처벌특례법상 학교 관리자의 신고의무를 의식해서다. 신고는 '아동학대를 알게 됐거나 의심이 들 때' 하라는 건데, 미신고로 받을 불이익의 우려가 '실제로 어땠는지'에 관한 판단보다 앞섰다. A씨는 지난해 10월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받고, 그다음 달 교권보호위원회는 학부모의 교권 침해를 인정했다.

사건이 서너 달 만에 종결됐으니 경미한 사건이었을까. 교장의 기계적 아동학대 신고로 교육 현장이 치른 대가는 컸다. A씨는 신고된 직후부터 무혐의 처분이 날 때까지 병가를 냈다. 진단서에는 '6주 이상 정신과 치료 필요'라 적혔다. 문제 학부모의 자녀를 피해 다닐 만큼 스트레스가 커져 비정기 전보 신청도 내 다음 달 다른 학교로 떠난다. 동료 교사들도 안절부절못했다. 43명이 수업 연구할 시간을 긴 탄원서를 쓰는 데 할애했다.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해도 보호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도 교단에 퍼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교사들이 수업과 학생 생활지도에 집중을 못하는 동안 학생들에게 그 피해가 돌아갔을 터다. A씨 반 학생들은 믿고 따르던 담임교사를 갑자기 잃었다. 학교 커뮤니티에는 'A씨가 보고 싶다' '쾌유를 빌어요'라는 글이 많았다.

이런 일은 교장만 탓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학교마다 대응이 다르다는 게 관할 교육당국의 설명이었다. 아동학대가 아니라 자체 판단하면 신고하지 않는 학교도 있다는 얘기다. 이 자체가 문제 아닌가. 이번 사건 보도 뒤 '교육당국의 정확한 지침이 있어야 한다'는 교단의 반응이 나왔다. 판단의 후과가 부담되는 학교 관리자의 사정도 헤아리면서다.

'서이초 사건' 이후 교권보호 관련 입법과 교단에 우호적 여론이 생겼지만, 교사가 부당한 아동학대 신고·고소 리스크에 언제든 노출될 우려가 큰 상황은 여전하다. 얼마 전 한 초등학교에선 비키니를 입은 여성 사진에 교사 얼굴을 합성해 뿌린 학생들의 부모 3명이 되레 교사를 아동학대로 고소해 논란이다. 교사들이 촉구하는 아동복지법상 정서학대 규정 개정은 신중한 입법적 고민이 필요한 사안이지만, 적어도 학교가 멀쩡한 교사에게 괴물이 겪어야 할 대가를 치르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손현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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