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술 먹고 제왕절개 수술했는데... 걸려도 1개월 쉬면 그만?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술 먹고 제왕절개 수술했는데... 걸려도 1개월 쉬면 그만?

입력
2024.02.05 04:30
10면
0 0

복지부, 5년간 음주 진료 의사 9명 적발
형사처벌 0... 자격정지도 소송으로 취소
"의사 음주 관대"... 의료법 개정 움직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의사가 응급실에서 와인을 마시고 환자를 보고 있어요."

2017년 9월 서울 송파구의 한 병원에서 이런 내용의 112신고가 접수됐다. 출동한 경찰은 음주측정기로 의사 A씨의 음주사실을 확인했으나 현행법상 음주 진료를 처벌할 규정이 없어 일단 철수했다. 대신 송파구보건소가 행정처분 검토를 요청했고, 보건복지부는 2019년 '1개월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A씨는 반발하며 처분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간호사가 와인을 따서 시음하는 순간 같이 있었을 뿐이고, 음주측정기 결과는 전날 밤 마신 술의 영향"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도 "술에 취해 진료에 영향을 줬다는 증거가 없다"면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자격정지 처분은 취소됐다. 아무런 처벌 없이 사건이 종료된 것이다.

의사 음주 진료는 처벌 무풍지대

의사들의 음주 진료·수술 행위는 오래전부터 문제가 됐다. 환자의 생명을 다룬다는 점에서 엄한 처벌이 당연할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적발돼도 1개월 자격정지가 고작인데, 이마저도 소송을 통해 처분이 취소되는 일이 다반사다.

4일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음주 의료행위로 적발된 의료인은 9명이었다. 언뜻 보기엔 적은 숫자 같지만 환자가 의사의 음주 여부를 알기도 어렵고, 내부고발이 없으면 적발이 불가능한 음주 의료행위 특성상 수면 아래 감춰진 사례가 훨씬 많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증언한다.

적발 사례만 봐도 위험천만한 경우가 태반이었다. 2019년에는 의사 4명이 당직근무 중 함께 술을 마시고 환자를 진료한 사건이 확인됐고, 이듬해엔 점심 반주 후 진료를 하다 환자에게 횡설수설한 의사가 적발됐다. 2021년에는 음주 상태로 응급실 환자 3명을 진료한 의사, 음주운전 단속 수치인 혈중알코올농도 0.038% 상태에서 제왕절개 수술을 집도한 의사도 있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그러나 형사처벌을 받은 의사는 전무했다. 의료법상 의료사고만 아니면 술을 먹고 진료한 행위 자체를 문제 삼기 어렵기 때문이다. '의료인의 품위를 심하게 손상하는 행위를 할 경우 1년 범위 면허 자격정지가 가능하다(의료법 66조 1항)'는 조항만 있는데, 이것도 음주 관련 세부기준은 없어 '자격정지 1개월'에 그치기 일쑤다.

빠져나갈 구멍은 또 있다. 2021년 음주 상태에서 7시간 30분 동안 응급실 환자들을 진료하다 자격이 정지된 의사도 A씨처럼 처분취소 소송을 냈다. 1심에서 복지부가 패소했고 2심이 진행 중이다. 술을 곁들인 점심식사 후 환자를 봤다가 지난해 자격정지 처분을 받은 한의사도 소송을 통해 처분취소를 노리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별도 규정이 없어 패소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응급 상황도 일괄 규제? 의사들 볼멘소리

의사들의 음주 근무는 다른 직종과 비교해도 너무 관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령 철도종사자는 철도안전법 41조에 업무 중 술을 마시면 형사처벌하는 벌칙 조항이 있다. 도로교통법에서는 음주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가 0.03%를 넘어야 면허가 정지되지만, 철도종사자 일부 직군은 0.02%만 넘어도 처벌 대상이다. 한국철도공사는 업무 투입 전 직원들을 상대로 음주 검사도 한다.

맹점이 분명하게 드러난 이상, 정부도 의료법 등을 개정해 음주의료 행위에 대한 조치를 구체화할 방침이다. 다만 의사들의 근무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대표적으로 특수분야 의료는 대학병원이라 해도 처치 가능한 의사가 한두 명밖에 없어 밤에 긴급 환자가 들어오면 유선상으로 진료를 할 때도 있다. 그런데 일괄 처벌 규정이 생기면 응급환자 진료를 거부하는 의사가 속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궁인 이화여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음주 의료행위는 근절돼야 마땅하나 의료법을 섣불리 개정했다가 오히려 국민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복지부는 이달 말쯤 개정안의 윤곽을 내놓기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술을 먹고 어떤 진료행위를 했느냐에 초점을 맞출지, 음주 의료사고의 책임을 더 강하게 물을지 등 다양한 방안들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의료계 입장도 적극 수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서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