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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캉 폭행' 피해자 부모 "징역 7년? 어떤 형량도 만족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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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캉 폭행' 피해자 부모 "징역 7년? 어떤 형량도 만족 못 해"

입력
2024.02.04 07:00
수정
2024.02.04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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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캉 교제 폭력 피해자 부모 인터뷰]
30일 1심 판결 직후 검찰에 항소 요청
"교제 폭력에 경종 울리는 처벌 필요"
4시간 넘게 증인신문… "2차 가해"
"딸은 트라우마에 환청·환시 증상"
거부 의사에도 억대 기습공탁 시도

'바리캉 교제 폭력 사건' 피해자의 아버지 A씨가 지난달 30일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에서 열린 선고공판 이후 취재진을 만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소희 기자

'바리캉 교제 폭력 사건' 피해자의 아버지 A씨가 지난달 30일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에서 열린 선고공판 이후 취재진을 만나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소희 기자


"결코 용서할 생각은 없습니다."

'바리캉 교제 폭력' 피해자가 선고 직후 아버지에게 남긴 말

지난해 여자친구를 감금해 바리캉(이발기)으로 머리를 밀고 강간 및 폭행한 김모(26)씨에게 징역 7년이 선고됐다. 김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무려 7가지. 강간,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이용 촬영·촬영물 등 이용 협박), 특수협박, 감금, 강요, 폭행 등이다. 1심 재판부는 해당 혐의에 대해 모두 유죄라고 판결했다.

피해자의 아버지 A씨는 최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선고 결과에 대해 "어떤 형량이 나와도 만족할 수 없다"며 "교제 폭력에 경종을 울릴 수 있는 처벌이 내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인 사이의 폭력을 쉽게 바라보고 형량조차 가볍게 나오는 현실을 바꿔야 한다"며 검찰에 항소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앞서 김씨에게 징역 10년을 구형했던 검찰은 2일 "피고인이 대부분의 범행을 부인해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 등 죄에 상응하는 형이 선고돼야 한다"며 항소장을 제출했다.

"강간→강간치상 변경해야"

교제 폭력은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 연인 간 다툼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피의자 김씨도 재판 내내 '합의에 의한 성관계', '피해자 자의로 오피스텔에 머물렀다'는 취지로 범행을 부인했다. A씨는 "만나던 사이라는 이유로 강간의 진위 여부부터 다퉈야 하는 상황이 참담했다"며 "숱하게 폭행을 당하고 머리가 밀린 상황에서 과연 스물한 살 여성이 원해서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느냐"고 분노했다. 그는 "딸의 목을 졸라 약 4차례 기절시키고, 얼굴에 소변을 누는 등 가혹행위를 저지르고도 '증거가 없다'며 부인했다"고 했다.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것도 피해자의 몫이다. 둘만 있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교제 폭력은 증거가 부족하다. A씨는 딸이 구조된 직후 생업을 내려놓고 보름 동안 폐쇄회로(CC)TV 등 증거를 찾아다녔다. 그는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피·가해자의 휴대폰 비밀번호부터 통신사 서류, 산부인과 진료서, 상해 진단서, 정신과 진단서까지 경찰에 다 가져다줬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강간치상이 아닌 강간 혐의를 적용했다. 피해자 법률대리인 조윤희 변호사는 "강간으로 인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정신적 상해가 발생했다는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며 "1심에서는 피고인의 구속 기간(2월 3일 만료) 문제로 진행하지 못한 공소장 변경을 검찰에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형법상 강간죄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 강간치상죄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해당해 상대적으로 형량이 높다.

지난해 7월 경기 구리시 한 오피스텔에 감금돼 남자친구로부터 바리캉(오른쪽 사진)으로 삭발당한 피해자(왼쪽 사진). 피해자 제공

지난해 7월 경기 구리시 한 오피스텔에 감금돼 남자친구로부터 바리캉(오른쪽 사진)으로 삭발당한 피해자(왼쪽 사진). 피해자 제공

김씨의 추가 폭행도 드러났다. 피해자 측은 감금 도중 산부인과에 들렀을 당시 병원 대기실에서 김씨가 피해자의 목덜미를 잡고 머리를 때렸다는 진술을 뒤늦게 확보해 추가 고소했다. 오피스텔 방 안이 아닌 옥상 계단에서 김씨가 피해자의 뺨을 때리는 등 폭행을 가하는 모습이 담긴 CCTV도 A씨가 직접 확보해 수사기관에 증거로 제출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29일 이 사건을 재판에 넘겼으나 현재 같은 법원 단독 재판부에 계류 중이다.

"피해 증언·기습 공탁, 피해자 두 번 죽여"

피해 사실을 증언해야 하는 재판 과정도 피해자에겐 가혹했다.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피해자는 지난해 12월 19일, 지난달 9일 두 차례 재판에 출석해 약 4시간 넘게 증인신문에 응해야 했다.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 측 변호사는 '다른 남자 만나다가 걸려서 그런 거 아니냐', 'CCTV에 보이지 않는 옥상과 계단에서 성관계한 것 아니냐', '저항하면 머리를 밀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등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는 듯한 질문을 이어갔다.

피해자는 진정제를 삼키며 답변을 이어갔지만, 결국 증인신문 도중 실신하고 말았다. 애타는 마음으로 딸을 지켜본 A씨는 "사실관계가 없는 질문들로 피해자를 잔인하게 몰아세웠다"며 "2차 가해 정도가 아니라 사람을 완전히 죽이는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지난달 30일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에서 김씨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렸다. 김소희 기자

지난달 30일 의정부지법 남양주지원에서 김씨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렸다. 김소희 기자

재판이 시작되자 피고인 측은 진정한 사과 없이 합의를 종용했다. A씨는 "가해자가 재판부에 반성문을 제출했다고 하는데 피해자는 열람 신청을 해도 승인이 안 난다. 대체 누구에게 쓰는 반성문이냐"며 "한쪽에서는 합의를 종용하면서 반대로는 '절대로 기사에 날 만큼 흉악범은 아니다'라는 태도에 신물이 난다"고 했다. 피고인 변호사는 검찰 구형을 앞두고 A씨에게 '자백하고 인정하면 합의 고려할 수 있다고 하시는데 맞느냐'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피고인 측은 선고공판(지난달 25일)을 이틀 앞두고 1억5,000만 원을 기습공탁했다. 공탁은 피고인이 피해자와 합의하지 않았을 때 법원 공탁소에 일정 금액을 맡겨 피해 보상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피해자 측은 공탁금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혔지만, 재판부는 공탁 사실을 양형에 반영해 선고했다. A씨는 "피고인이 자신의 형량을 감경하기 위해 형사공탁을 기습적으로 진행했다"며 "공탁은 피해자를 두 번 죽이는 행위로, 오히려 불리한 양형으로 고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피해자 부모 "딸 자립할 시간만이라도..."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9일 시민 1만7,588명이 참여한 엄벌 촉구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한국여성의전화는 지난 9일 시민 1만7,588명이 참여한 엄벌 촉구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사건 이후 피해자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고 있다. 한때 군인을 꿈꿨지만, 트라우마로 인한 환청과 환시, 수면 문제로 일상생활이 어려워졌다. 당시 기억을 지우는 전기경련치료도 받고 있다. A씨는 "가해자는 우리집 주소와 가족들의 동선 등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며 "딸은 가해자가 '좋은 변호사 써서 빨리 나오겠다, 끝까지 따라가 가족들과 너를 죽이겠다'고 했던 말을 되뇌며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했다. 가족들도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있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한숨도 못 잔다. 매주 이틀은 정신의학과, 하루는 심리상담을 받으며 버틴다"고 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A씨는 "딸이 자립할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도 가해자가 지은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며 "악마 같은 가해자를 제대로 벌하지 않으면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것"이라고 경계했다. A씨 부부는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인천 스토킹 살인 사건 유족, 인천 가정폭력 피해자 가족 등과 범죄 피해자 연대를 꾸려 서로의 재판마다 함께하는 등 위로와 지지도 나누고 있다. A씨는 딸을 위해 각오를 다졌다. "우리가 겪는 일이 마지막이 될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울 겁니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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