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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이라는 마법 혹은 거짓

입력
2024.02.02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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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각 정부 부처 업무보고를 민생토론회 형식으로 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경기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에서 열린 일곱 번째 민생토론회(‘상생의 디지털-국민권익 보호’). 성남=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각 정부 부처 업무보고를 민생토론회 형식으로 열고 있다. 사진은 지난달 30일 경기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에서 열린 일곱 번째 민생토론회(‘상생의 디지털-국민권익 보호’). 성남=대통령실 제공

다시 ‘민생’의 계절이다. ‘일반 국민의 생활이나 생계’를 뜻한다. 이 단어가 정치인에게 특별히 사랑받는 시기가 따로 있다. 선거가 임박할 때다. 지금이 그렇다. 총선이 68일 앞인 탓이다. 여도 야도 민생을 외친다.

윤석열 대통령이 앞장선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이번 선거의 테마를 ‘민생’으로 잡은 듯하다. 각 부처 신년 업무보고를 ‘민생토론회’로 치르는 데 이어 기회만 되면 ‘민생’을 말한다. 여당도 보조를 맞춘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달 30일, 비대위원장 취임 이후 처음 윤 대통령과 나눈 오찬 전후로 ‘민생’을 거듭 강조했다. 가기 전엔 “(대통령과) 민생에 관한 이야기를 잘 나누고 오겠다”더니, 오찬 뒤에도 “민생에 관한 얘기를 2시간 37분 동안 했다. 2박 3일도 짧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서천=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수산물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서천=대통령실 제공

그런 ‘민생 원팀’은 큰불로 잿더미가 된 진짜 민생 현장은 ‘사진 거리’로 만들어 실망을 안겼다. 지난달 23일 두 사람이 찾은 충남 서천특화시장 얘기다. 점포 227곳이 탄 화재 현장은 두 사람이 화해의 제스처를 하는 배경이 돼버렸다. 윤 대통령이 시장에 머문 시간은 단 20분이었다. 물론 시작은 생계의 터전을 잃은 상인들을 위로하고 피해 규모를 살피려는 뜻이었을 거라고 믿는다. 그렇다면 좀 더 구석구석 현장을 굽어보고 상인들을 만나 손을 잡았어야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입에서도 민생 얘기가 나왔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그는 ‘민생경제’를 대한민국 제1의 위기로 꼽았다. 언론의 잇따른 보도와 지적으로 그 심각성이 알려진 민생 현안 중의 현안인 지방 의료ㆍ필수 의료 강화나 대형병원 쏠림 해결 얘기는 없었다. 하긴 이 과제 앞에 민주당은 할 말이 없게 된 처지다. 누구도 아닌 이 대표 때문이다. 부산 흉기 피습 사건 직후, 그가 향한 곳은 인근의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도, 성남시의료원도, 자신의 지역구인 인천의 병원도 아닌 서울대병원 본원이었다. 이 대표 덕분에 서울대병원은 ‘4차의료기관’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모든 3차의료기관의 상급병원이란 얘기다.

2004년 3월 당시 성남시립병원설립추진위 공동대표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민의 서명을 받아 시립병원설립 조례안을 발의해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는 모습. YTN 화면 캡처

2004년 3월 당시 성남시립병원설립추진위 공동대표였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민의 서명을 받아 시립병원설립 조례안을 발의해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는 모습. YTN 화면 캡처

공교롭게도 지방 의료 강화 문제는 이 대표가 정치를 하게 된 출발점이다. 2004년 그는 경기 성남시립병원 설립 추진위 공동대표였다. 성남시에 응급의료센터를 갖춘 대형병원이 없어져 본시가지 주민들이 분당이나 판교로 ‘원정 진료’를 가게 된 탓이다. 성남시장에 당선된 이후 그는 성남시의료원을 설립해 숙원을 이뤘다. 그러나 20년 뒤, 그는 자신이 정치를 하게 된 이유를 스스로 버린 꼴이 됐다.

민생은 정치인이 입에 올리기 좋은 단어다. 무슨 정책이든 ‘민생’만 붙이면 국민의 편에 선 듯한 효력이 발생한다. 협치 앞에도 ‘민생’을 붙이면 여야가 싸움만 하다가 민생을 두고는 협력하는 것 같은 착시 효과가 느껴진다.

바꿔 말하면, 정치인들이 그만큼 민생을 모른다는 뜻 아닐까. 민생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고 있으니 그런 것 아니냔 말이다. 진짜 민생을 살고 있는 국민은 정작 ‘민생’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일이 거의 없다. 선거철만 닥치면 각광받는 민생의 계절성 유행이 씁쓸하다. 선거 시즌에만 특별히 챙긴다고 민생이 나아질까. 정치인에겐 민생이 마법의 단어일지 몰라도, 유권자에겐 그것만큼 경계해야 할 거짓의 단어도 없다.


김지은 버티컬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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