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영화 '추락의 해부' 31일 개봉
남편 죽음 메스 삼아 부부의 세계 파헤쳐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남편이 죽는다. 외딴 산간 별장에서다. 3층에서 떨어졌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살해된 후 던져졌는지, 실수로 추락했는지 알 수 없다. 시체를 발견한 이는 시각장애가 있는 어린 아들이다. 아내는 별장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경찰은 아내 산드라(잔드라 휠러)의 살인으로 결론짓는다. 산드라는 억울하다. 오랜 지인인 변호사 뱅상(스완 아를로)과 함께 재판을 준비한다.
법정에서 까발려지는 부부의 비밀
오는 31일 개봉하는 프랑스 영화 ‘추락의 해부’는 남편의 죽음을 메스 삼아 어느 부부의 관계를 파헤친다. 독일인 산드라는 제법 성공한 작가다. 프랑스인 남편 사뮈엘(사뮈엘 타이스)은 문학 교수를 그만두고 작가 데뷔를 준비 중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부부 사이 있었던 은밀한 일들이 까발려진다. 검찰은 유죄로 옭아매기 위해 산드라의 도덕적 문제점을 지적한다. 뱅상은 산드라를 변호하기 위해 아내의 성공에 대한 사뮈엘의 시기와 질투를 제시한다. 실체는 알 수 없다. 추측이 난무하고 통념과 편견이 끼어든다.
산드라는 ‘여자’로서 도덕적 단죄를 받는다. 그는 집안일에 소홀했고, 사뮈엘은 육아와 가사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처럼 법정에서 묘사된다. 검찰의 주장은 법적으로 아무런 효력이 없으나 배심원들의 마음을 뒤흔들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런 부도덕적이고 아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여자라면’이라는 전제는 검찰의 강력한 무기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으로 주목받던 산드라는 남편의 성공을 가로막은 악녀로 추락한다.
뱅상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사뮈엘의 나약함과 부주의함을 공략한다. 그의 남자답지 못함을 강조하며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 가능성을 설파한다. 홈스쿨링으로 아들을 가르치고 집안일을 많이 했을 사뮈엘은 죽은 뒤에 그렇게 무능력하고 지질한 남자로 전락한다. 뱅상이 용의자가 된 산드라에게 하는 말, “뭐가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아”는 의미심장하다.
산드라의 살인 여부와 상관없이 재판을 거치며 부부의 추억은 산산조각이 난다. 뜨거운 사랑으로 결혼을 했고 아들 다니엘(밀로 마차도 그라너)을 보았으나 이제 둘의 감정은 의미 없는 과거가 됐다.
진실은 알 수 없다... 다만 믿어야만 할 뿐
다니엘은 재판 과정을 모두 지켜보며 부모의 비밀을 알게 된다. 그는 주요 증인이자 유일한 목격자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발언을 해야 하는 상황이 곤혹스럽다. 그런 다니엘에게 법원 직원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를 믿어야 하는데 선택지가 두 개라면 하나를 선택해야 해.” 다니엘은 선택을 하고,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모종의 일을 해낸다. 다니엘의 행동은 재판에 큰 영향을 주지만 이 또한 진실은 명확히 알 수 없다. 배심원의 통념과 편견을 자극한 건 확실하다.
치밀하고 정교하며 흥미진진한 수작이다. 좋은 각본이 좋은 영화로 이어졌다. 예측불허 이야기를 전개하며 삶의 다양한 면모를 살핀다. 영화는 부부의 세계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서 망원경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망하는 것 같은 효과를 빚어낸다.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최고상)을 받았다. 여성 감독 영화로는 1993년 ‘피아노’(감독 제인 캠피온), 2021년 ‘티탄’(감독 쥘리아 뒤쿠리노)에 이어 세 번째 수상이었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은 실화를 바탕으로 동거인 아서 하라리와 함께 각본을 썼다. 트리에 감독은 “관계의 추락을 그려낸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며 “육체적, 정신적으로 하강하는 한 인물을 기술적으로 묘사해 그들의 사랑 이야기가 쇠퇴하는 과정을 상징적으로 담아내는 것이 영화의 요지”라고 밝혔다. 오는 3월 10일 열릴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상 5개 부문(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 각본상, 편집상) 후보에 올라 있다.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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