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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은 몰려다니지 않는다

입력
2024.02.01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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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욕설과 외계어가 날뛰는 세상. 두런두런 이야기하듯 곱고 바른 우리말을 알리려 합니다. 우리말 이야기에서 따뜻한 위로를 받는 행복한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목숨도 아끼지 않은 성웅 이순신을 그린 영화 ‘노량’의 한 장면. 휘어진 길을 거부하고 올바른 길만 걸었던 이순신. 묵묵히 정의의 길만을 걸은 그는 진정한 대인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목숨도 아끼지 않은 성웅 이순신을 그린 영화 ‘노량’의 한 장면. 휘어진 길을 거부하고 올바른 길만 걸었던 이순신. 묵묵히 정의의 길만을 걸은 그는 진정한 대인이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돌쇠파·번개파·진술이파·딸기맛 미역파·꼴망파·청하위생파….

눈치 빠른 이는 알아챘을 게다. 맞다. 폭력조직 이름이다. 살벌한 조직 이름치곤 느낌이 참 말랑말랑하다. 경찰에 잡히면 왠지 술술 불 것 같은 진술이파, “마님!”이 떠오르는 돌쇠파엔 피식 웃게 된다. 꼴망파는 꼴(소와 말 먹이)을 담는 도구 꼴망태가 연상돼 정겹다. 제주를 들었다 놨다 했다는 딸기맛 미역파는 전신이 ‘감귤 포장파’란다. 단내 폴폴 풍기는 이름이다.

이쯤 되니 궁금하다. 폭력조직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경찰에 따르면 대부분의 폭력조직 명칭은 수사 과정에서 검사나 경찰이 붙인다. ‘국제PJ파’(광주 음악감상실), ‘향촌동파’(대구), ‘부평식구파’(인천), ‘신오동동파’(마산)처럼 조직이 활동하는 지역, 혹은 지역 내 술집 다방 노래방 이름을 활용한단다.

폭력조직이 스스로 ‘~파’라는 이름을 짓지 않는 이유는 ‘조직’으로 불리는 걸 꺼려서다. 현행법상 조직명과 행동수칙 등이 있으면 ‘범죄단체’로 규정해 우두머리의 경우 최고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 조직원도 죄질에 따라 무거운 형을 받을 수 있는 건 물론이다.

간혹 영화나 문학작품 속에선 조폭이 미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폭력, 협박, 갈취 등으로 이익을 얻는 자들에게 낭만은 눈곱만큼도 없다. 폭력배는 사라져야 한다.

그나저나 선거를 앞두고 벌써부터 정상배와 모리배가 날뛰고 있다. 둘 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아첨에 능수능란한, 간사한 무리다. 예부터 권력자 주변엔 늘 간신배, 정상배가 우글거렸다. 고려 공민왕에겐 노비 출신 승려 ‘신돈’이 있었고, 조선 연산군에게는 ‘희대의 간신’ 내시 김자원이, 광해군에게는 상궁 김개시(개똥)가, 명성황후에겐 무당 ‘진령군(眞靈君·박창렬 직위)’이 있었다.

정상배 모리배 간신배 폭력배 시정잡배 무뢰배 등 소인은 모두 우르르 몰려다닌다. 그래서 소인배다. 접사 ‘-배(輩)’는 ‘무리를 이룬 사람들’을 뜻한다. 물론 선배, 후배, 동년배처럼 중립적 의미로도 쓰이지만, 대개 부정적인 말에 붙는다. 무리나 파벌은 좋게 보일 리 없다.

최근 들어 ‘대인배’라는 얼토당토않은 말이 언론에 자주 등장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소인배의 반대말은 말과 행실이 바르고 덕이 높은 대인이다. 인격과 능력을 지닌 ‘큰사람’은 몰려다닐 일이 없다. ‘배’는 대인에겐 어울리지 않는 글자다.

나라가 최악의 위기에 빠진 2024년. 이번 총선엔 ‘민심은 곧 천심’임을 아는 대인이 나타나길 기대해본다.





노경아 교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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