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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술관, 그림 보러 갔다 그림 같은 공간에 빠진다

입력
2024.01.29 04:3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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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일상으로 들어온 전시 공간

편집자주

'정태종의 오늘의 건축'은 치과의사 출신의 건축가인 정태종 단국대 건축학부 조교수가 국내외 현대 건축물을 찾아 각 건축의 지향점과 특징을 비교하고 관련된 이슈를 소개하는 기획입니다. 4주에 1번씩 연재합니다.


"미술관 보러 갈래요? 무슨 전시를 하는데요? 전시 말고 미술관요. 네?" 최근 문화생활을 대표하는 공간인 영화관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에 의해 인기가 줄어 가고 있다. 그사이 사람들의 오프라인 만남은 영화관에서 미술관으로 옮겨가는 듯하다. 어두운 데다 꼼짝 못 하고 두서너 시간을 갇혀 있어야 하는 영화관은 공간보다 영화 자체가 더 중요한 공간이다. 영화를 보러 가지 영화관을 보러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나 미술관은 조금 다르다. 물론 전시 작품과 내용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와 함께 미술관은 공간 자체를 즐기고 경험하는 곳으로서 우리 일상으로 들어왔다.

전시공간의 사회적 역할

미술관에서 박물관까지 전시 공간은 역사적으로 전시 대상물을 중심으로 하는 공간인 화이트 박스에서 시작해 주변 환경과 연결하는 개방적 공간으로 변모해 왔다. 아울러 계획된 강제 동선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자유로운 동선의 선택, 사회적 공간에서 우연한 접촉으로 인한 도시 속 일상의 공공 공간화, 도시재생의 새로운 방식, 지방 자치제를 기반으로 다수의 미술관 네트워크 체제로 연결되는 지역 연계 시스템으로 변화하고 발전해 왔다.

또한 전시 공간을 미셸 푸코의 도시 공간 관점에서 보면 이상적 공간인 유토피아나 일상의 공간과는 다른 이질적인 공간이다. 사물의 질서를 전시하면서 지식과 권력과의 관계로 확장하고, 주체의 자기 감시로 내재화하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전시 공간에 대해 무언가를 본다는 시선을 이용해 현상학적인 관점이 아닌 역사적 지층을 형성하는 원리를 찾는 고고학적 방법론과 지식, 권력, 통치, 윤리의 영역으로 사회를 해석하는 계보학적 관점을 적용해 본다. 전시 공간은 사회의 일상에서 벗어난 이질적인 '헤테로토피아'며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과 통치를 위한 권력이 시각화되고 미분화된 곳이라 할 수 있다.

스크램블 교차로 같은 미술관

일본 건축사사무소 사나가 설계한 스미다 호쿠사이 미술관은 독특한 금속 외관으로 유명하다.

일본 도쿄의 최대 번화가를 상징하는 곳은 아마도 시부야역 앞 스크램블 교차로일 것이다. 이곳은 대각선 횡단보도로 각 방향에서 보행자들이 뒤섞여 지나가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시의 거리는 보행자가 각자의 목적에 따라 이동하는 기능적인 면이 강하지만, 이제 도시의 공공 공간인 보행로는 개인과 타인이 만나는 중요한 공간이 되고 있다. 이런 사회적 역할을 고민해서 설계한 미술관이 있다. 일본 건축가 사나(SANAA)가 설계한 도쿄의 스미다 호쿠사이 미술관은 외형은 금속 외피의 단순한 기하학적 박스인데 자세히 보면 건물 중간에 몇 개의 틈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위쪽의 틈은 미술관 외부에서부터 자연 채광을 내부로 끌어들이기 위한 공간이고, 아래쪽의 틈새는 사방으로 나 있는데 이곳을 통해 미술관의 입구로 연결되기도 하고 마치 작은 골목과 교차로처럼 만들어 한쪽에서 들어왔다가 다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곳이다. 틈새가 넓지 않아 현실적으로 많이 사용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간혹 주변 사람이 미술관을 통과해서 지나가기도 하고, 이러한 독특하고 새로운 건축 개념을 현실화했다는 데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우아한 리모델링의 극치를 보여준 싱가포르

싱가포르 도심에 위치한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는 2008년 구시청 건물을 리모델링해 갤러리로 전환했다.

내셔널 갤러리 싱가포르는 싱가포르 도심의 국립 기념물이자 싱가포르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구대법원과 구시청 건물이 합쳐진 건축물로 2008년 리모델링을 통해 갤러리로 전환한 곳이다. 국제현상공모 우승자인 스튜디오 밀루 건축(Studio Milou Architecture)은 프랑스 건축 회사로 파리와 싱가포르에 지사를 두고 있으며 문화 공간 설계를 전문으로 한다. 기존 건축물인 구대법원과 구시청은 코린트식 및 이오니아식 기둥으로 이루어진 신고전주의 영국 건축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리모델링은 입구 쪽 지하와 위층을 연결하는 계단을 만들고 기존 건축물을 덮기 위한 외피로 미세한 금속 메시가 활용됐고 이전 대법원 건물과 시청을 지붕에서 연결하기 위해 나무 모양의 기둥으로 지지가 되는 캐노피를 이용하였다. 최근 많은 도시와 건축물은 도시재생이라는 과정을 통해 기존의 오래된 공간을 재개발하거나 리모델링을 진행한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기존 공간에 현대 건축이라는 새로움을 덧입힌 시간과 공간의 변증법적 결합은 그 어느 곳보다 새롭고 세련되고 우아한 갤러리로 우리 앞에 펼쳐진다. 공공건축과 도시재생의 놀라운 성공작이다.

일상으로 들어온 분수 속 예술 작품

프랑스 파리의 스트라빈스키 분수는 예술이 일상으로 들어온 대표적 사례다. 위키피디아 캡처

파리는 지난 수백 년 동안 도시건축으로 볼 때 혁신의 도시다. 파리는 나폴레옹 3세가 오스만 남작을 시장으로 임명해 1853년부터 1870년까지 대대적으로 진행된 도시 정비 사업 덕분에 개선문을 중심으로 하는 방사선 대형 도로와 신개선문으로 연결되는 도시 축 등 근대 도시 계획이 현실화됐다. 전시 공간으로 퐁피두센터는 공간과 전시 예술 모두 새로운데 특히 퐁피두센터 옆 스트라빈스키 분수는 파리의 현대성에 화룡점정의 역할을 한다. 현대 예술이 미술관 내부에 전시하는 캔버스에서 벗어나 조각, 설치, 행위예술로 확장하고 발전하면서 전시 공간은 미술관 내부의 한계에서 벗어나 공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예술 작품이 미술관 외부의 도시 광장이나 자연 속에 전시되는 조각공원이 보편화하지만, 스트라빈스키 분수는 도시 외부 공간에 얀 팅겔리의 키네틱 아트의 장점과 니키 드 생팔의 자유로운 조각의 특성을 이용하면서 분수라는 도시 속 기능까지 포함한다. 이제 예술은 고급화나 일부 계층의 전유물에서 내려와 시민의 품 안으로 들어온다. 스트라빈스키 분수는 예술이 일상화된 명확한 사례다.

모든 역할을 다 품은 우리의 미술관

한국 건축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지금까지 보아 온 미술관은 전시 공간에 대한 뛰어난 새로운 개념의 공간으로 그런 곳을 품고 있는 도시가 부럽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도 그에 못지않은 좋은 전시 공간이 생겼다. 2013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은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에 있는 미술관이다. 엠피아트건축사사무소의 건축가 민현준은 기무사 건물과 종친부 건물, 그리고 새로 신축한 미술관 건물을 통해 한국 전통건축, 일본 근대건축, 현대건축이라는 서로 다른 시대의 다양한 유형의 건축물이 모여 회복과 조화라는 한국 건축의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공간 구성은 배치부터 외부와 내부 공간까지 다양하게 나타나며 이는 전시 공간의 여러 가지 사회적 역할과 연결된다. 외부 공간은 한옥 양식의 문화재인 종친부와 적벽돌로 지어진 국군기무사령부 건물과의 조화를 고려해 마당 중심 미술관으로 조성됐다. 주변 어느 방향에서도 미술관으로 입장할 수 있도록 개방된 일상 속 열린 미술관의 모습이다. 내부에서는 외부의 풍경을 차경으로 시각적 연결을 시도하며 내부의 전시 공간은 전시물에 맞춰 다양한 공간으로 구성돼 관람자가 선택할 수 있다.

전시공간을 바라보는 우리의 관점들

박물관에서 시작해 갤러리로 발전한 전시 공간은 단순히 예술의 가치를 전시하는 공간에서 다양한 사회적 역할의 공간으로 변화해 왔다. 현대사회에 나타나는 기존의 전시물 중심에서 전시 공간 자체의 중요성으로의 전환 과정에서 현대건축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존 예술에서 주체와 대상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은 인간 중심 또는 위계의 권력 중심 사고의 결과이다. 이제 우리가 지금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배경과 공간에 주목해야 한다. 전시 공간은 이런 사고의 전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곳이다. 현대건축은 전시 공간에 새로운 사회적 역할을 공간화하는 동시에 배경으로만 존재하던 전시 공간을 인간과 예술품을 연결하는 특정한 프로그램으로서의 행위자로 창조한다. 전시 공간의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파악했으니 이제 우리의, 우리에 의한, 우리를 위한 미술관에 가서 이전과는 다른 세계 속 진리를 찾아보자.


글·사진=정태종 단국대 건축학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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