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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의 선민후사

입력
2024.01.24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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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충남 서천군 서천읍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기원전 3세기 전국시대 조나라는 천하의 보물인 화씨벽(비취 원석)을 얻게 된다. 이를 탐낸 강대국 진나라는 화씨벽과 성 15개를 바꾸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조나라가 화씨벽을 건네도 진나라가 성을 넘길 리는 만무했다. 그렇다고 거절하면 이를 빌미로 쳐들어올 게 뻔했다. 이때 조나라의 사신으로 진나라를 찾은 게 인상여다. 그는 일단 진나라 왕에게 화씨벽을 바쳤다가 "실은 화씨벽에 작은 흠이 있는데 알려드리겠다"면서 돌려받은 뒤 돌연 "성부터 내주지 않으면 화씨벽을 던져 깨뜨리겠다"고 협박했다. 이후 인상여는 사람을 시켜 화씨벽을 조나라로 돌려보낸 뒤 "강한 진나라부터 약속을 지키면 약한 조나라가 어찌 감히 따르지 않겠냐"고 진나라 왕을 설복, 무사 귀환한다.

□ 조나라 왕이 인상여의 공을 높이 사 상경 벼슬을 내리자 장군 염파의 불만이 커졌다. 자신은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반면 인상여는 겨우 혀만 놀렸을 뿐인데 지위가 역전됐다며 분을 삼키지 못했다. 이런데도 인상여는 오히려 염파를 피해 다녔다. 이유를 묻자 인상여는 “지금 진나라가 우릴 치지 못하는 건 나와 염파가 있기 때문인데 두 호랑이가 싸우면 결국 누가 좋겠냐”며 “나라의 위급함을 먼저 생각하고 사적인 원망은 뒤로 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 얘기에 염파는 인상여를 찾아가 사과한 뒤 의기투합한다. 여기서 나온 사자성어가 선공후사(先公後私)다.

□ 이 말이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선 선당후사(先黨後私)로 둔갑했다. 주로 당과 조직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할 때 활용됐다. 국민의힘이 이준석 전 대표를 '내부 총질' 등을 이유로 쫓아낼 때도 이 용어가 등장했다.

□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한 달 전 취임하며 "선당후사 대신 선민후사(先民後私)해야 한다"며 "국민의힘보다 국민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22일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를 거절하면서도 "저는 선민후사하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인상여가 조나라를 걱정할 때보다 더 위급하다. 핵과 극초음속 미사일을 가진 북한은 연일 도발이다. 치솟는 물가에 민생은 파탄 직전이다. 출산율은 국가 소멸을 우려할 정도이고, 주력 산업의 경쟁력마저 흔들리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한 위원장도 진정으로 공을 먼저 생각하고 사는 뒤에 둘 때다.

박일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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