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 코미디언 엄지윤
KBS 32기 공채 개그맨으로 출발...유튜브 '숏박스'로 주목 받으며 인기
유튜브·TV 예능→연기까지 종횡무진 활약
최근 여성 코미디언 중 가장 '핫한' 인물을 꼽으라면 엄지윤을 빼놓을 수 없다. 스케치 코미디 '장기연애' 콘텐츠 시리즈로 화제를 모으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 현재 구독자만 무려 282만 명에 달하는 유튜브 채널 '숏박스'의 원년 멤버로 존재감을 알린 그는 개인 유튜브 채널 '엄지렐라'로도 큰 인기를 얻으며 주목 받는 여성 코미디언 중 한 명으로 입지를 굳혔다.
활약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앞서 MBC '놀면 뭐하니?'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TV 예능에도 진출하며 예능인으로서의 활약도 이어온 그는 이제 연기자로서도 입지를 넓히고 있다. 그야말로 '종횡무진' 행보다.
최근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만난 엄지윤은 자신을 "유연한 사람"이라 설명했다. 어떤 분야에 나서더라도 유연하게 자신의 몫을 해내는 사람, 그것이 지금 엄지윤이 밝힌 자신의 정체성이다.
"유튜브로 인기, 운이 좋았죠"...엄지윤, '반짝 스타' 아닌 이유
유튜브의 인기가 급격하게 상승하며 대중에게 얼굴을 알리긴 했지만, 사실 엄지윤은 어느날 갑자기 등장한 '반짝 스타'와는 거리가 멀다. 어린 시절부터 코미디언을 꿈꿔왔던 그는 KBS 공채 32기 개그맨 출신으로 희극인의 길에 입문했다.
"어릴 때부터 막연하게 '나는 언젠가 개그맨이 돼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 땐 TV에 나오면 저도 스타가 되는 줄 알았거든요. (웃음) 19살 즈음에야 진로를 정하면서 개그맨이 되기 위해서 뭘 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됐고, 관련된 학과로 진학을 하고 개그맨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KBS 공채 합격을 했는데, 막상 합격을 했는데도 그렇게 즐겁진 않았어요. 당시 '개그콘서트'가 존폐위기라는 소문이 있었던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합격하고 나서도 '이제 어떻게 해야하지?'라는 막막함이 사실 컸던 것 같아요. 과연 내가 지금 상황에서 모든 걸 버틸 수 있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고요. 마치 새로운 시작점으로 온 느낌이었죠. 마냥 행복하고 '인생 폈다'라는 느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우려는 현실이 됐다. 2018년 공채 합격 이후 2년여 만에 '개그콘서트'가 폐지되며 그는 갑작스럽게 설 곳을 잃었다. 안정적인 궤도에 오르기도 전 소속이 없어진 상황은 코미디언으로서 큰 타격이었으나, 엄지윤은 "오히려 많은 생각이 안 들었던 것 같다"라는 의외의 말을 꺼냈다.
"공허하거나 많은 생각이 들지도 않을 정도로 제가 쌓아놓은 베이스가 없었던 상황이었거든요. 다른 선배들은 프로그램이 없어진다고해서 개그맨이라는 삶 자체가 무너지진 않았던 것 같은데, 저와 비슷한 기수의 후배들은 그냥 허무했어요. 오히려 그런 상황이다 보니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이후 엄지윤이 택한 무대는 유튜브였다. 그는 당시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인기를 모으며 활동하던 다른 코미디언들의 뒤를 따라 유튜브에 입성했다. 엄지윤은 "프로그램이 공중분해 된 뒤 (코미디언으로서) 인정은 받고 싶은데 신인들이 갑자기 나갈 수 있는 곳이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다"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유튜브 시장 역시 녹록치 않았다. '숏박스'로 단번에 성공 반열에 올랐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엄지윤은 여러번의 실패를 거듭했었다. 그는 "처음엔 '잘 될 것 같다'라는 아이템을 짜서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진짜 망했다"라며 "스케치 코미디를 소재로 한 콘텐츠도 당시 유행과 안 맞아서 잘 안 됐고, 동기 언니들이랑 했던 채널도 망했다. 연달아서 실패를 하고난 뒤에는 제2의 헤이지니를 꿈꾸면서 키즈 유튜버에 도전도 해봤다. 하지만 그것도 딱히 잘 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던 중 만난 것이 김원훈과 조진세였다. 스케치 코미디 콘텐츠를 중심으로 하는 '숏박스' 채널을 만들어 의기투합한 세 사람은 '장기연애' 콘텐츠로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얻는 데 성공했다.
"'숏박스'도 처음엔 잘 될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사실 그 때만 해도 저희 셋 모두 하는 것 마다 잘 안 되던 사람들이였거든요. 그래서 시작은 정말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놀고 먹느니 뭐하나' 싶은 생각으로 같이 했었죠. 그런데 '장기연애' 콘텐츠가 갑자기 잘 되더라고요. 처음엔 조회 수를 보고 유튜브 버그가 걸린 줄 알았어요. 그래도 그 수치를 한 번 보니까 이후의 플랜이 세워지더라고요. 운이 좋았어요. 아마 안 되는 세 명이 만나서 운을 좀 받은 게 아닌가 싶어요."
코미디·예능부터 연기까지 도전, "엄지윤의 매력은..."
스스로는 '운이 좋았다'고 표현하지만, 이후 엄지윤이 보여준 행보는 일련의 성공이 결코 '운'에 기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유튜브로 인기를 얻은 뒤 엄지윤은 본격적으로 활로를 개척했다. 2022년 MBC '놀면 뭐하니?'로 TV 예능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뒤 예능 MC로 입지를 넓힌 그는 최근 tvN '소용없어 거짓말', SBS '7인의 탈출', 영화 '30일'에 출연하며 연기자로도 영역을 확장했다.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활약하고 있는 희극인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행보다.
엄지윤은 "'나는 배우가 될 거야'라는 생각은 아니지만 '기회가 왔는데 왜 안하지?'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라고 연기에 도전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 뒤 "너무 감사하게도 제안을 해주셔서 연기를 해보게 됐는데, 기회가 왔을 때 해야지 나중에 하려고 하면 길이 너무 험한 걸 아니까 과감하게 도전했다. 안 해 봤던 영역이라 너무 긴장되지만, 연기 역시 너무 좋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제 연기를 못 보겠다"라고 너스레를 떤 그다. 그는 "영화 '30일'을 보는데, 제 연기가 너무 꼴보기 싫어서 영화관에서 울 뻔 했다"라며 "확실히 제가 너무 아마추어처럼 임했다는 것이 느껴지더라. 심지어 긴 영화 촬영 기간 중 아무 생각 없이 관리를 안 했던 탓에 문을 열고 들어오는 장면에서는 제 얼굴이 각각 다르기까지 하더라. 그걸 보는데 스스로 너무 아마추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좋은 기회가 온다면 조금 더 몰입해서 완성도를 높이고 싶다는 생각이다. 여러모로 많은 걸 배운 기회였다"라고 덧붙였다.
장르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쉼 없이 달리고 있는 엄지윤이 생각하는 자신의 매력은 무엇일까. 엄지윤은 "저는 뭔가를 시켰을 때 전문 분야처럼 완벽하게 하진 못하지만 또 너무 못하지는 않는, 어느 정도 무던한 실력이 있는 사람인 것 같다"라며 "다 부담스럽긴 하지만 딱 그 정도를 기대하시는 것 같아서 열심히 하려 한다. 완벽한 스킬은 없지만 뭔가를 망칠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라며 미소를 지었다.
"저는 뭐든 할 수 있을 때 하자라는 주의에요. '무조건 이것만 밀고 간다'라는 불도저 같은 생각은 없는 것 같아요. 연기의 맛을 봤다고 해서 '가자!'라는 것도 아니고, '나는 본 투 비 코미디언이니까 미친듯이 웃기겠다' 이런 것도 아니거든요. 스스로 프레임을 씌워서 가두기 보다는 매번 타이밍에 맞춰서 노력을 하려 하는 유연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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