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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영의 '셀프 복수'...'한국적 사이다' 뒤 고민

입력
2024.01.21 13:00
수정
2024.01.21 18:19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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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 지금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

편집자주

K컬처의 현안을 들여다봅니다. 김윤하, 복길 두 대중문화 평론가가 콘텐츠와 산업을 가로질러 격주로 살펴봅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절친과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고 살해당한 여자가 10년 전으로 회귀해 시궁창 같은 운명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운명 개척 드라마다. 사진은 드라마에서 죽기 직전 지원(오른쪽, 박민영)의 모습. tvN 제공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절친과 남편의 불륜을 목격하고 살해당한 여자가 10년 전으로 회귀해 시궁창 같은 운명을 그들에게 돌려주는 운명 개척 드라마다. 사진은 드라마에서 죽기 직전 지원(오른쪽, 박민영)의 모습. tvN 제공

평소에는 ‘한국’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한국인이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이 한국이니 당연한 것이다. 된장찌개와 쌀밥을 먹었지만 ‘한식’을 먹었다고 표현하지 않고 그룹 씨스타19의 신곡을 들었지만 ‘K팝’을 들었다고 여기지 않는 것처럼.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 ‘한국’을 의식해야 할 때가 있다면 그것은 지극히 필요에 의한 일일 것이다.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 ‘한국’을 말하는 것은 어렵다. 작은따옴표 속에 든 한국이란 두 글자는 ‘K’라는 접두사로 치환되고 그것은 곧 ‘한국’이라는 국가와 사회를 안팎에서 통찰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한다. 그런데 가끔 어떤 고민도 없이 ‘이것이 바로 한국’임을 느끼게 하는 K콘텐츠들이 있다. 요즘 화제인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가 바로 그런 작품이다. 1화만 봐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란 무엇인지, ‘한국적인 것’은 무엇인지. 일일극의 그 유명한 ‘막장 문법’처럼 김치로 ‘싸대기’를 맞는 기분이 과연 어떤 것인지.

아침일일극 '모두 다 김치'에서 장모가 전 사위의 얼굴을 포기김치로 때리고 있다. MBC 방송 캡처

아침일일극 '모두 다 김치'에서 장모가 전 사위의 얼굴을 포기김치로 때리고 있다. MBC 방송 캡처

그러나 '내 남편과 결혼해줘'를 지금 가장 탁월한 K콘텐츠로 꼽은 데에는 단지 이 작품이 ‘한국 드라마’의 수많은 클리셰를 구현해 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전형성을 답습하고 곧바로 뛰어넘는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회귀’라는 강력한 장치다.

주인공 강지원(박민영)은 '아내의 유혹'(2008)의 구은재(장서희)처럼 점을 찍고 새 사람이 될 필요가 없고, '더 글로리'(2022)의 문동은(송혜교)처럼 가장 완벽한 복수를 위해 와신상담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기억을 간직한 채 10년 전 자신의 몸으로 회귀했기에 자기 자신에게 일어날 비극을 막고, 스스로 성장할 가능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정은 같은 회귀물 장르인 '재벌집 막내아들'(2022), '이재, 곧 죽습니다'(2023)와 비교했을 때도 차이가 뚜렷하다. 다른 이의 몸으로 태어나 복수를 행하다 자기 자신이 아닌 삶의 허망함에 이르는 여느 작품들과 달리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나 자신으로의 회귀를 통해 원한을 계획적으로 청산한다. 나아가 복수 후에 남을 피해자의 허망함까지도 개인의 성장으로 메우는 빈틈없는 ‘사이다’ 구성을 취하고 있다.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죽고 다시 태어난 지원의 모습. tvN 제공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에서 죽고 다시 태어난 지원의 모습. tvN 제공

또한 이 드라마는 남자 주인공과의 로맨스만큼 여성 간의 연대를 심도 있게 다루며 클리셰를 배반하고, 주 소비자층인 여성 시청자들의 요구에 성실히 답한다. 주란(공민정)은 지원이 남편 민환(이이경)에게 교제 폭력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연인 사이에도 상대가 원하지 않는 스킨십을 강요하는 것이 좋지 않다’며 지원을 구조한다. 지원은 번번이 승진에서 밀리는 ‘워킹맘’ 주란을 독려하고 코칭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 신뢰하는 동료가 되어 성희롱을 일삼고 부당한 권력을 휘두르는 남성 상사를 끌어내린다.

하지만 이런 것을 지나치게 전복적으로 읽어줄 필요는 없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어디까지나 로맨스, 판타지, 치정과 복수 등 한국 시청자가 원하는 모든 욕망을 충족시키는 지금 가장 ‘자극적인’ 드라마다. 그래서 작품은 필연적으로 위험한 도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악녀를 징벌하기 위해 폭력에 노출하는 것이나 불안정한 계약직 신분을 조롱하는 것, 10년 전으로 회귀했기에 주식으로 언제든 ‘한방’을 노릴 수 있다는 물질만능주의적 메시지들이 그렇다. 이것은 권선징악에 가려져 있기에 더욱 위태롭게 보인다. 논리적 근거가 필요 없는 회귀라는 장치가 작동해 자칫 누구도 책임질 필요가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작품의 흡인력이 강할수록 거리를 두고 탄산이 강할수록 질문을 거듭하자. 우리가 수출해야 할 K콘텐츠는 바로 그 질문 자체일지도 모른다. 모처럼 한국 드라마의 상투성을 이용한 흥미로운 작품이 나와 그것을 바라보는 거리 역시 세심히 교정하게 된다. 이 또한 한국인의 기꺼운 숙명이다.


복길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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