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20명 넘는 경찰관 스스로 목숨 끊어
오랜 범죄 노출 등 영향, 스트레스 극대화
불이익 우려 속앓이... 상담센터도 18곳뿐
경찰관들이 죽고 있다. 순직이 아니다. '마음의 병' 때문이다.
13일 현직 경찰관이 근무하던 파출소에서 사망했다. 충남 아산의 한 파출소 소속 A(51) 경위는 낮 12시쯤 함께 근무하던 순경에게 "피곤하다"며 숙직실로 향했다. 약 2시간이 지났을 무렵 돌연 '탕' 하는 총성이 들렸다. 순경이 쓰러져 있는 A경위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지만 결국 숨졌다. 조직 안에서도 모범적이고 좋은 성품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지난해 1월에는 경기 성남의 한 파출소에서 30대 B경장이 유서를 남기고 생을 달리했다. 2022년 2월에도 서울 서대문구 관내 파출소 대기실에서 20대 C경장이 숨졌다. 세상을 등진 방식은 모두 A경위와 같았다.
해마다 평균 21명의 경찰관이 자살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는 '지구대나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50대'. 장기간 현장에서 일하면서 범죄 위협으로 인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정신적 외상), 밤낮이 바뀐 근무환경 등이 우울증의 촉매제가 된 것으로 분석됐다. 치안 최전선에 있는 경찰관도 마음 놓고 치료와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의료체계 마련이 절실해 보인다.
마음의 병 앓는 베테랑 경찰관들
16일 학계에 따르면, 최응렬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와 박사과정 박양재씨는 최근 한국경찰연구에 게재한 '경찰공무원의 자살 현황 및 예방에 관한 연구'에서 2018년 1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경찰공무원 124명이 자살했다는 통계를 공개했다. 우울증 등으로 생을 마감하는 경찰관이 매년 20명이 넘는다는 얘기다. 같은 기간 순직자(70명)보다 1.8배 많은 수치다.
경찰관은 자살률이 높은 특수직 공무원 중에서도 특히 목숨을 끊는 비율이 높다. 2018년 발표된 '자살예방 국가행동계획'을 봐도, 자살자 수를 인구 10만 명으로 환산했을 때 경찰관은 약 20명으로 소방관(10명), 집배원(5명)보다 월등히 많았다.
가장 위험에 노출된 직군은 지구대·파출소에 근무하는 50대 경위다. 현장 치안을 총괄하는 베테랑 경찰관들의 정신건강에 문제가 많다는 뜻이다. 최근 6년간 사망한 50%(62명)가 지역 경찰이었다. 연령별로도 2017~2021년 자살자 111명 중 50대가 45명(41%)으로 최다였고, 계급별로는 경위가 절반 이상인 66명을 차지했다. 30년 경력의 서울 한 파출소 팀장은 "이태원 참사 등 참혹한 현장을 반복해 목도하다 보면 우울증에 걸리기 십상"이라며 "밤낮으로 일에 치이다 보니 가정불화 등 개인 문제로 괴로워하는 동료들도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경찰이 무슨 우울증이냐" 숨기기 급급
경찰관을 전문으로 상담하는 '마음동행센터'가 있긴 하다. 하지만 일선에선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심층적 치료가 어렵다고 지적한다. 현재 전국 18개 시·도경찰청에서 마음동행센터를 운영 중인데 근무지와 거리가 멀어 접근성이 떨어지는 데다, 전문상담원도 36명뿐이라 상담원 1명이 300명 넘는 경찰관을 관리해야 한다.
혹여 인사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마음의 응어리를 애써 감추는 경찰관도 상당수다. 한 파출소 팀장은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절대 들키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우울증을 키우는 데 한몫하는 건 맞다"고 말했다.
마음동행센터 증설과 더불어 경찰 조직문화 개선이 필요한 이유다. 연구진은 "지난해 1~8월 마음동행센터를 이용한 경찰관은 전체의 10% 정도인 1만2,244명으로 무시 못 할 수준"이라며 "시간·장소를 가리지 않고 언제든 상담받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관련 예산을 확보해 접근성이 떨어지는 지역을 중심으로 센터 증설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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