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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산업’을 어찌할 것인가

입력
2024.01.17 04: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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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스모그가 덮친 1952년 12월 6일의 영국 런던 풍경. 이 환경재앙으로 시민 1만2,000여 명이 숨졌다. AP 자료사진

그레이트 스모그가 덮친 1952년 12월 6일의 영국 런던 풍경. 이 환경재앙으로 시민 1만2,000여 명이 숨졌다. AP 자료사진


1952년 12월 초대형 매연이 런던을 강타했다. 햇빛을 닷새나 가린 이 ‘그레이트 스모그’는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에 등장한다. 총리 처칠은 “안개는 왔다가 사라지는 거”라며 사태를 쉽게 보지만, 이 스모그는 훗날 각종 호흡기 질환의 원인이 되어 1만 명 이상 목숨을 앗아간 환경참사로 남았다.

2024년 1월 서울의 공기를 감싼 건 온통 분노다. 유튜브는 혐오를 조장해 조회수를 뽑고, 뒤질세라 포털과 언론은 화를 돋우며 사람을 모은다. 정치는 분노를 이용하고 심지어 생산한다. 진중함이 외면받는 사이, 자극적 언행은 실시간 이슈 중심에 언제나 선다. 그 결과 한국인은 분노하고, 분노하며, 또 분노한다.

불행히도 분노는 증발하지 않는다. 매연 입자가 폐포에 박히듯, 분노의 기운은 분노했던 인간들의 뇌, 심장, 온몸에 스며들어 다음 폭발을 기다린다. 처칠처럼, 우리는 이 넘치는 분노가 훗날 가져올 재앙을 알아채지 못한다.

서울의 분노는 런던의 매연과 닮았다. 비유를 위해 경제학의 외부불경제(나쁜 외부효과) 개념을 잠시 빌린다.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으며 내 이익만을 위해 해로운 물질을 쏟아내는 것을 말한다. 매연이나 폐수를 생각하면 된다.

산업화 초반엔 오염 규제가 없었다. 무한한 공기·강·바다가 유해물질을 다 걸러줄 것으로 여겼다. 산업자본은 공장·광산에서 오염원을 마구 배출하며 돈을 벌었는데, 그 결과가 그레이트 스모그와 미나마타병이다.

그때처럼 분노를 부산물로 내뿜으면서도 비용을 내지 않는 ‘분노산업’이 활황이다. 이쪽에선 분노로 경제적 소득을 올리고 저쪽에선 정치적 자산을 축적한다. 분노산업 종사자들은 안다. 담론을 움직일 강하고 값싼 에너지가 노여움이란 걸. 돈을 벌거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면 분노에 의지하는 게 합리적 선택이다. 그래서 이성, 상식, 팩트체크가 혐오를 걸러줄 거란 낙관론에만 의지하긴 어렵다.

판도라가 제우스의 상자를 이미 개봉한 디스토피아적 미래 앞에, 희망이 있다면 우리가 외부불경제를 다스릴 수단들을 이미 고안했다는 점이다. 공동선을 훼손하며 돈을 번다는 점에서 오염유발자와 분노유발자는 닮았다. 그래서 매연·폐수를 막은 방법은 분노산업 제어 장치로도 쓰일 수 있다. 외부불경제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는 행정력으로 직접 규제를 가하거나, 사회적 비용만큼 차액을 세금(피구세)으로 물려왔다.

이젠 공장이나 국가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을 비교적 정확하게 잰다. 데이터 측정·분석 기법을 활용하면, 분노산업이 유발하는 분노 총량을 측정하고, 화가 어떤 경로로 어디까지 전이되는지 파악할 수 있다. 기술적 한계는 없어 보인다.

주의할 점은 부작용이다. 어떤 분노는 부조리를 극적으로 노출시켜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선한 기능도 수행한다. 분노가 표현의 자유에 속할 수 있고, 정부가 선별적인 분노 규제를 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할 부분이다.

그럼에도 분노를 이용해 소득을 올리고 자산을 축적하는 ‘분노의 산업화’를 막기 위해서라면, 몇 가지 전제엔 합의를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①분노는 쉽게 사라지지 않고 ②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분노 총량에 한계가 있으며 ③분노가 특정집단의 목적 달성을 위한 값싼 수단으로 남아선 안 된다는 점이다. 여기에서 출발해, 사회적 제어를 모색할 때가 바로 지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영창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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