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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 주행의 눈' 만드는 이재은 비트센싱 대표

입력
2024.01.17 05: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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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운전하지 않아도 자동차가 알아서 달리는 자율주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주변 인식이다. 운전자 지원시스템(ADAS) 중 하나인 주변 인식 기술은 도로 위 다른 자동차나 사람, 차선, 신호등과 표지판은 물론이고 갑자기 발생하는 돌발 상황을 파악해 사고를 방지한다. 따라서 주변 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율주행 차량은 눈 감고 도로를 질주하는 흉기가 된다. 그런 점에서 자율주행의 주변 인식 기술은 미래 자동차의 눈으로 꼽힌다.

2018년 이재은(42) 공동대표가 레이더 기술을 활용한 레이더테크를 표방하며 창업한 비트센싱은 자율주행 차량의 눈을 개발하는 신생기업(스타트업)이다.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이 대표를 만나 자율주행 기술에 대해 알아봤다.

이재은 비트센싱 공동대표가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며 자율주행에 필요한 레이더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국내에서 최초로 차량용 레이더를 개발한 개척자다. 윤서영 인턴기자

이재은 비트센싱 공동대표가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인터뷰를 하며 자율주행에 필요한 레이더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국내에서 최초로 차량용 레이더를 개발한 개척자다. 윤서영 인턴기자


라이더와 레이더의 차이

자율주행의 주변 인식 기술은 상황 파악을 위해 빛과 전파 중 무엇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라이더(LIDAR, light detection and ranging)와 레이더 등 두 가지로 나뉜다. 초당 수백만 개의 레이저 광선, 즉 빛을 발사해 주변 상황을 파악하는 기술이 라이더, 전파를 쏘아서 주변을 탐지하는 방식이 레이더다.

두 방식은 장단점이 있다. 사람의 눈처럼 빛을 감지하는 이미지 센서가 달린 카메라로 주변을 살피는 라이더는 정확한 사물 파악이 가능하다. 하지만 날씨에 영향을 받는다. 비나 눈이 심하게 오면 레이저가 대기 중에 흩어져 사물을 파악하는 가시거리가 줄어든다.

반면 제2차 세계대전 때 군사용으로 개발된 레이더는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전파를 이용하기 때문에 사람의 눈이 사물을 파악하기 힘든 악천후를 뚫고 사물을 인지한다. 다만 공간을 훑는 기존 레이더 기술은 전방을 똑같이 평면으로 인식해 위, 아래 각도 등 사물의 위치 파악에 약하다.

이 같은 장단점 때문에 자율주행 차량을 개발하는 자동차 업체들은 라이더와 레이더 기술을 섞어 사용한다. 이 중에서 이 대표는 레이더를 이용한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한다.

국내 최초 차량용 레이더 개발

이 대표가 레이더를 택한 이유는 경력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자동차용 레이더를 개발했다. 포항공대와 같은 대학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2008년 자동차 부품을 개발하는 만도에 입사해 자동차용 레이더를 개발했다. 그는 이 기술로 서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원을 마친 뒤 병역을 해결하기 위해 만도가 어떤 회사인지도 모르고 병역 특례요원으로 입사했어요."

만도에서 그는 레이더 연구를 처음 시작했다. "당시에는 레이더 장비를 전량 수입했어요. 국가 산업을 살려야 한다는 선배의 말을 듣고 가슴이 뛰었죠. 그렇게 3명의 연구원과 함께 팀을 만들어 맨땅에서 레이더 연구를 시작했어요. 거의 매일 밤을 새우며 해외 논문과 제품 등을 뜯어봤죠. 그 이후로 지금까지 16년간 레이더를 연구하고 있어요."

10년 다닌 만도를 뛰쳐나와 창업한 것은 대형 교통사고 때문이었다. "2015년 2월 영종대교에서 안개 때문에 106중 추돌사고가 발생했어요. 레이더가 있으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여서 충격이 컸죠. 회사에 자동차용 레이더 기술 확산을 제의했으나 당시 회사 방침이 시장성 때문에 자동차 레이더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어요."

크게 낙담한 그는 창업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인연을 만났다. 스타트업 육성업체인 퓨처플레이의 류중희 대표다. "어느 행사장에서 우연히 류 대표를 만나 식사를 했어요. 그 자리에서 자동차 레이더를 얘기했더니 류 대표가 대뜸 투자하겠다며 창업을 권유했죠. 너무 갑작스러운 제안에 의심이 들었어요. 주변에 알아보고 2주 동안 고민하다가 창업을 결심했죠. 자동차용 레이더를 개발해 자율주행 시대를 여는 것이 목표죠."

비트센싱이 개발한 차량용 4차원 이미징 레이더로 가능한 기능들. 비트센싱 제공

비트센싱이 개발한 차량용 4차원 이미징 레이더로 가능한 기능들. 비트센싱 제공


4차원 레이더로 교통사고 줄인다

이 대표는 레이더를 차량에 장착하면 교통사고 발생률을 30% 이상 줄일 것으로 본다. "레이더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감지해요. 고속 주행하며 차선 변경할 때 옆 거울에 보이지 않는 옆 차선 차량이나 교차로에서 차체에 가려 보이지 않는 사람을 파악하죠."

이를 위해 이 대표는 공간과 속도를 모두 인식하는 4차원 이미징 레이더를 개발했다. "과거 레이더는 수평 방향만 탐색했는데 우리가 개발한 기술은 수평과 수직을 모두 훑어서 공간을 입체로 파악해요."

이 기술은 2026년 이후 제품화될 예정이다. "원래 안정성과 성능 평가 때문에 자동차 적용까지 오래 걸려요. 국내 제조업체와 양산 계약을 체결했어요."

이와 함께 후방을 탐지할 수 있는 코너 레이더도 선보일 예정이다. "코너 레이더는 수직 탐지를 못 하지만 먼 거리를 탐지해요. 후방 감지는 공간 전체를 인식할 필요가 없어서 4차원 이미징 레이더보다 저렴한 코너 레이더로 충분하죠."

코너 레이더는 개발이 끝나 신뢰성 시험을 하고 있다. 이 제품은 내년 이후 양산돼 국내 및 해외 대형 자동차업체에 공급 예정이다.

요즘 유행처럼 번지는 인공지능(AI)도 자율주행 차량용 레이더에 결합된다. "레이더 신호처리부에 들어간 AI가 포착한 물체를 사람인지 사물인지 판독해요. 또 속도와 거리에 비해 계산이 복잡한 물체의 각도 측정도 AI가 하죠."

치매 등 건강관리에도 레이더 사용

차량용 레이더 기술은 도로 및 건강관리 등 다른 분야에서도 쓰일 수 있다. 도로에 레이더를 설치하면 자동차의 과속 여부와 교통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기존에는 도로를 파서 루프코일을 묻어 놓고 차량이 밟고 지나가면 속도를 측정했어요. 따라서 루프코일이 없는 도로에서는 속도 측정이 안 되죠. 또 노련한 운전자들은 루프코일을 묻어 놓은 곳을 눈으로 보고 피해가요. 도로감시용 레이더를 설치하면 루프코일이 없어도 속도 측정이 가능해요."

이 대표는 자율주행 차량이 기존 내연기관 차량들과 섞여서 달리려면 도로감시용 레이더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자율주행 차량과 기존 차량이 안전하게 도로를 달리려면 교통 흐름을 파악해 서로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해요. 여기 필요한 장치가 도로감시용 레이더죠."

이를 위해 그는 제주와 천안 논산간 고속도로에서 도로감시용 레이더를 시험한다. "제주에서는 교차로 신호등에 레이더를 장착해 교통 흐름을 파악하는 실증 사업을 하고 있어요. 또 천안 논산간 고속도로에도 올해부터 도로 감시용 레이더를 설치해 가동할 계획입니다."

건강 관리에도 레이더 기술이 사용된다. "실내에 가로 세로 5cm 크기의 소형 레이더를 달아 놓으면 호흡할 때 움직이는 가슴 높낮이를 파악해 수면 무호흡증 등 건강 이상을 알 수 있어요. 또 알츠하이머병에서 나타나는 무호흡 증상이나 뒤척임 등을 알 수 있죠. 차내에서 아이들의 질식사를 방지하기 위해 개발한 기술로, 유럽에서 최고 등급을 받으려면 자동차에 이 기술을 의무적으로 탑재해야죠."

이재은 비트센싱 대표는 4차원 이미징 레이더가 2026년 이후 자동차에 도입될 것으로 본다. 4차원 이미징 레이더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파악해 사람이 보지 못하는 자동차의 사각지대까지 파악할 수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이재은 비트센싱 대표는 4차원 이미징 레이더가 2026년 이후 자동차에 도입될 것으로 본다. 4차원 이미징 레이더는 공간을 입체적으로 파악해 사람이 보지 못하는 자동차의 사각지대까지 파악할 수 있다. 윤서영 인턴기자


고주파 허용 정책 필요

국내 차량용 레이더 기술이 발전하려면 넘어야 할 장벽이 있다. 주파수 대역을 둘러싼 정책이다. "이미징 레이더의 능력을 높이려면 현재 사용하는 79㎓보다 높은 고주파가 필요해요. 유럽에서는 140GHz 고주파를 사용해 선행 연구를 하죠. 따라서 해외와 기술 격차를 줄이려면 우리도 주파수 정책을 검토할 필요가 있어요. 아직 한국에서는 140GHz 주파수가 비어 있어요."

또 다른 장벽은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다. 해외에서 자율주행 차량의 사고가 잇따르면서 아직 100% 신뢰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자율주행이 신뢰를 얻으려면 레이더와 카메라를 이용한 라이더 기술을 모두 활용해야죠. 라이더만 갖고 자율주행을 하겠다고 선언했던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창업자도 최근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에 레이더 주파수를 신청했어요. 머스크가 공언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레이더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뜻이죠."

그래서 그는 자율주행 차량의 도로 주행에 신중하다. "아직 자율주행 차량이 도로를 달리는 것은 일러요. 사고가 예상되는 상황에 해외에서 시범 운행을 강행한 것이 이해하기 힘들어요. 주변 상황을 인식할 수 있는 기술이 충분히 발달한 뒤 자율주행에 나서야죠."

"완전 자율주행 시대가 두렵다"

직원 75명의 이 업체는 매출이 계속 오르고 있다. "지난해 매출을 100억 원으로 예상해요. 전년 매출이 37억 원이었으니 3배 가까이 올랐죠. 올해 매출 목표는 200억 원입니다."

투자는 지금까지 280억 원을 받았다. 전략적 투자자인 만도를 포함해 KDB캐피탈, 퓨처플레이 등에서 투자했다.

이 대표는 올해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다. "유럽 자동차업체들, 해외 1차 부품업체들과 세계 시장 진출을 논의 중이어서 올해 안에 결실이 있을 겁니다. 국내 전자업체와 레이더 기술을 이용한 건강관리용 반도체를 개발하는 방안도 검토 중입니다."

해외 공략에 성공하면 그다음 목표는 상장이다. "올해 중 증시 상장을 위해 주간사를 선정할 예정입니다. 내년 또는 후년 상장이 목표죠."

자율주행에 승부를 건 이 대표는 아직까지 자율주행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완전 자율주행 시대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제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 수 있어서 기계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직 불안해요. 운전대에서 손을 놓는 것보다 마음을 놓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릴 수 있어요."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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