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개봉 영국 영화 '나의 올드 오크'
옛 탄광촌 유입 난민과 지역민 사연 그려
'블루칼라의 시인' 켄 로치 마지막 극영화
“연대(Solidarity)는 좋은 단어입니다.” 지난해 5월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에서 영국 감독 켄 로치(88)는 한국일보와 만나 연대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낮은 곳에서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의 손을 잡아야 한다는 그의 오랜 주장은 17일 개봉하는 ‘나의 올드 오크’에서도 여전하다.
"난민 유입으로 집값 더 떨어질라"
영화의 배경은 영국 잉글랜드 북동부 더럼의 한 마을이다. 한때 탄광으로 번성했으나 이제는 퇴락한 곳이다. 영국에서 집값이 가장 쌀지 모른다고 주민들이 자조하는 이곳에 새로운 사람들이 대거 전입한다. 시리아 난민들이다. 사람들의 불만은 폭발할 지경에 이른다. 집값이 바닥까지 떨어졌는데, 이슬람 난민까지 유입되면서 지역 거주환경이 더 열악해졌다는 판단에서다. 난민들을 향한 주민들의 눈은 험악해질 수밖에 없고, 난민들은 사람들과 쉬 섞이지 못한다. 선술집 ‘올드 오크’를 운영하는 중년사내 TJ(데이브 터너)와 사진가를 꿈꾸는 난민 소녀 야라(에블라 마리) 정도만 교감을 나눌 뿐이다.
영화는 난민이라는 21세기 현안을 낡은 도시 더럼으로 끌어들여 종교와 인종을 뛰어넘는 연대를 모색한다. 더럼은 1984년 광부 파업이 있었던 곳이다. 국영 탄광을 폐쇄하려는 정부 조치에 지역민들은 연대로 맞섰다. 조건 없이 서로를 도와주던 아름다운 전통이 있다. 하지만 전통은 난민들에게 예외다. 종교와 문화가 다른 이방인이라는 이유에서다. 영화는 인류애를 내세우는 TJ를 통해 난민이 가난한 노동자들과 다르지 않은 이들이라고 강조한다. 약자가 약자를 혐오하기보다 품어야 한다는 당위를 설파한다. 지나치게 이상적인 내용이나 울림은 크다. 로치 감독은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사정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며 공감을 이끌어내려 한다.
종교와 인종 뛰어넘는 연대의 힘
영화에서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건 음식이다. TJ와 야라가 각기 가슴 무너질 일을 겪었을 때 둘은 서로 음식으로 위로해준다. 슬픔을 밥으로 견디고 이겨내며 둘의 관계는 단단해진다. 마을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주는 것 역시 음식이다. TJ는 자신의 선술집 한편에 마을 청소년들을 위한 급식소를 연다. 억지로 집을 나눠 쓰게 된 지역민과 난민은 자발적으로 밥을 나눠 먹으면서 하나가 된다. ‘함께 나눠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Eat Together, Stick Together)’라는 광부 파업 당시 구호는 여전히 유효하다. 선술집 올드 오크는 이상적 공동체를 상징한다.
‘블루칼라의 시인’이라 불리며 노동자의 삶에 초점을 주로 맞춰왔던 로치 감독의 마지막 극영화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칸에서 그는 “(쇠약해진 몸 때문에) 더 만들기는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나의 올드 오크’는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15차례 초청(역대 최다, ‘나의 올드 오크’ 포함)되고, 황금종려상을 2차례(2006년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2016년 ‘나, 다니엘 블레이크’) 수상한 감독의 종착지 같은 영화인 셈이다. 다큐멘터리로 영화 이력을 시작했던 로치 감독은 다큐멘터리 연출은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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