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기 수출액 코로나 호황기의 6분의 1
팬데믹 지나며 강화한 관리 체계 적용
업계 "성장 발목", 당국 "필요한 제도"
전문가 "산업 성장 도울 인프라 마련"
팬데믹 기간 의료기기 수출의 4분의 1 이상을 책임졌던 진단기기 산업이 엔데믹을 맞아 악화일로에 놓였다. 코로나 진단키트 수요가 빠지면서 매출은 급락하는데 규제마저 까다로워졌다. 산업 위기 극복과 품질 강화의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해법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0일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체외진단기기의 지난해 총 수출액은 8억1,500만 달러(약 1조700억 원)로 추산됐다. 2022년 33억5,300만 달러(약 4조4,100억 원)와 비교하면 4분의 1 토막 난 수치다. 코로나 진단키트 수출 호황의 정점이었던 2021년(6조2,700억 원) 대비 6분의 1 수준으로 급락한 것이다. 전망도 좋지 않다. 올해 역시 수출액이 반등하지 못하고 전년보다 20.7% 더 하락해 6억4,600만 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측됐다.
신약보다 긴 진단기기 데스밸리
주요 기업들 실적도 바닥을 뚫고 내려갔다. 2021년 연매출 2조9,300억 원에 영업이익 1조3,877억 원에 달했던 SD바이오센서는 에프앤가이드 평균 전망치 기준 올해 매출이 6,785억 원, 영업손실이 2,229억 원이다. 2021년 1조3,708억 원 매출을 올렸던 씨젠은 지난해 3분기까지 매출 2,669억 원에 적자로 돌아섰다. 휴마시스, 엑세스바이오, 수젠텍 등도 1, 2년 전과 비교해 매출이 급감하고 영업손실로 전환하는 모습이다. LG화학은 진단사업부를 지난해 매각했다. 업계 관계자는 "팬데믹 특수가 사라지자 글로벌 경쟁력을 스스로 낮추는 실정"이라고 우려했다.
하향세가 뚜렷해진 이유로 업계는 산업의 특수성과 함께 강화한 규제를 지목하고 있다. 바이오산업은 초기 투자 이후 수익을 낼 때까지 어려움을 겪는 기간, 이른바 '데스밸리'가 유독 길다. 신약개발 기업은 15년 안팎의 데스밸리를 이겨내기 위해 후보물질을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이전해 중간 단계에 수익을 확보하곤 한다. 그나마 숨통이 트일 길이 열려 있는 셈이다. 반면 진단기업은 개발을 완료하고 상업화를 위한 제조시설까지 갖춘 후에야 판권 계약을 맺어 매출을 일으킬 수 있다. 그만큼 투자 비용이 커 소규모 기업은 생존하기가 더 어렵다.
그런데 2020년 5월 체외진단의료기기법이 발효되면서 규제당국이 요구하는 검체 수가 늘어나는 등 임상시험 기준이 높아졌다. 과거 관리 주체나 허가 기준이 명확하지 않았던 만큼 별도 관리체계의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문제는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을 거치는 동안 상당수 기업이 이 규제에 대응할 여력을 갖추지 못한 채 성장했다는 점이다. 엔데믹 이후 업계는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고 호소하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경쟁력을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필요한 제도"라는 입장이다.
체외진단의료기기 기술시험원에 쏠리는 눈
결국 진단산업의 데스밸리를 줄이면서 품질 경쟁력도 키울 묘수가 절실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마침 식약처 산하로 설립을 준비 중인 '국립 체외진단의료기기 기술시험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견해가 나온다. 2026년 문을 열 시험원이 진단기기를 평가할 시설과 전문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다양한 검체를 수집·분양하며 산업 성장을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엔 인허가에 전문성과 신속성이 높아질 거란 기대와 더불어 자칫 '옥상옥'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상임부회장은 "국내 진단산업은 팬데믹을 계기로 기술력을 입증했다"며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100여 개 업체가 모여 지난달 출범한 한국체외진단의료기기협회의 최의열 회장은 "데스밸리를 줄여 신속하게 개발을 완료하는 것이 경쟁력"이라며 "세계 수준의 의료 인프라에도 현장 진단기기의 약 90%가 수입품인 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자구책과 지원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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