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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靑龍)의 해

입력
2024.01.08 04:30
27면
0 0

고전

편집자주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하면 신발 끈을 묶는 아침. 바쁨과 경쟁으로 다급해지는 마음을 성인들과 선현들의 따뜻하고 심오한 깨달음으로 달래본다.

전북 김제시 벽골제에 위치한 쌍룡 조형물. 뉴스1

전북 김제시 벽골제에 위치한 쌍룡 조형물. 뉴스1

육십갑자는 60진법으로 시간을 표시하는 방법이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 열 개의 천간(天干), 그리고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열두 개의 지지(地支)를 합쳐서 만든다. 올해는 천간의 갑과 지지의 진이 만나는 순서이므로 갑진년이다.

열 개의 천간은 목화토금수 오행으로 나눌 수 있다. 갑을은 목, 병정은 화, 무기는 토, 경신은 금, 임계는 수에 해당한다. 그리고 오행은 각각 청색, 적색, 황색, 백색, 흑색, 다섯 가지 색깔을 상징한다. 그러니까 갑을이 붙는 해는 푸른색, 병정이 붙는 해는 빨간색, 무기가 붙는 해는 노란색, 경신이 붙는 해는 흰색, 임계가 붙는 해는 검은색이 된다.

여기에 열두 가지 동물을 상징하는 지지를 덧붙이면 색깔과 동물의 조합이 완성된다. 갑은 오행으로 목, 색깔로는 푸른색에 해당하고, 진은 용을 상징한다. 이렇게 해서 갑진년이 푸른 용, 청룡의 해가 되는 것이다. 내년은 육십갑자로 을사년인데, 을 역시 푸른색에 해당하고 사는 뱀을 상징하니, 내년은 푸른 뱀의 해다.

육십갑자는 60년에 한 번씩 돌아오므로 푸른 용이든 푸른 뱀이든 전부 다 60년에 한 번씩 돌아온다. 이른바 '환갑(還甲)'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가지고 60년에 한 번 돌아오는 해라며 놓칠 수 없는 기회인 양 호들갑을 떠는 것은 이상하다. 색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다. 청룡이 흑룡보다 힘이 센 것도 아니고, 황금 돼지(정확히는 노란색 돼지)가 빨간색 돼지보다 번식력이 월등한 것도 아니다. 색깔은 우열이 없다.

푸른색이 다른 색깔과 차이가 있다면 그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것이다. 푸른색은 엷은 옥빛, 짙은 남색은 물론 흰색과 검은색까지 포괄한다. '청운(靑雲)의 꿈을 안고'의 청운은 푸른 구름이 아니라 흰구름이다. 맑고 투명한 이슬을 청상(靑霜)이라 하고, 희뿌연 안개와 함께 내리는 비를 청우(靑雨)라고 한다. 여기서 '청'은 모두 희다는 뜻이다. 흰색이 선명하면 푸른색이 감도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런 모양이다.

반대로 시커먼 납을 청금(靑金)이라 하고, 시커먼 까마귀를 청오(靑烏)라고 하고, 검은 눈동자를 청안(靑眼)이라 하고, 검은 머리를 청발(靑髮)이라고 한다. 여기서 '청'은 모두 검다는 뜻이다. 검은색이 선명하면 역시 푸르스름하게 보여서 그런가 보다.

이처럼 푸른색은 전통적으로 명도와 채도의 폭이 넓은 색상으로 알려져 있다. 흰색부터 검은색까지 포괄하는 푸른색의 다양성과 포용력, 이것이야말로 극단적 대립으로 흑백논리에 빠진 오늘날, '청룡의 해'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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