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 래퍼 겸 방송인 한해
2011년 팬텀으로 데뷔해 방송인으로 활약 중
'놀라운 토요일'부터 '솔로지옥'까지 인기 예능 섭렵
"음악도 방송도 열심히 하는 2024년 되기를"
패기 넘치는 래퍼에서 순수하고 편안한 매력의 방송인으로 변신한 한해는 지난 한 해를 누구보다 열심히 보냈다. 무려 10개 프로그램에 출연했고,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스케줄을 소화했다. 하지만 '긍정 한해'답게 그에겐 너무나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국제 공인 와인 자격증을 최고 등급으로 패스할 만큼 와인에 진심인 한해는 체중이 증가한 후 "살이 찐 게 아니라 행복이 찐 거"라는 말로 새로운 유행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실제로 만난 한해는 '무공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방송에서 보여지는 모습보다 훨씬 더 반듯하고 진중했다. '와인 전문가'라는 말에 손사래를 치며 "애호가라 불러달라"던 그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코를 찡그리고 웃으면서 민망해했다. 본업보다 방송인으로 더욱 활발히 활동해온 터라 "음악을 안 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올해는 반드시 팬들을 위한 음악 선물을 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언뜻 보면 고생을 모르고 자란 청년 같아 보이지만 한해의 삶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무뚝뚝한 부산 남자'였던 그는 음악을 하기 위해 스무 살 때 무작정 상경했다. 각종 아르바이트와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던 시절, 고시원에서 옆방에 살던 아저씨가 돌아가시는 충격적인 사건도 겪었다. 특유의 둥글둥글하고 잔잔한 매력 뒤엔 인생 경험으로 단단히 여문 서른 넷 청년의 또 다른 얼굴이 숨어있었다. 그래서 그의 말과 눈빛에는 깊이가 있다. 2시간 인터뷰를 하고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만큼, 한해는 강한 흡인력을 지닌 사람이다.
◆한해의 인생 이야기
-상경부터 데뷔까지 과정이 궁금하다.
"제가 데뷔를 한 건 음원을 낸 기준으로 하면 2011년 11월이에요. 팬텀이라는 그룹으로 데뷔했죠. 원래는 블락비 멤버로 준비 중이었는데 최종 탈락을 했어요. 당시에 저와 지코 박경 송민호 유권 이렇게 다섯 명이었어요. 이후에 키겐 형, 산체스 형이랑 모여서 노래를 냈는데 생각보다 잘 돼서 계속하게 됐어요. 전 음악을 좀 늦게 시작했어요. 꿈이 없는 학생이어서 수능 성적에 맞춰서 대학에 갔다가 1학기 때 갑자기 휴학하고 서울로 올라왔죠. 음악을 좋아했고 고등학생 때부터 집에서 혼자 힙합 가사도 써보고 했는데 그때는 용감했던 거 같아요. 부모님께 '1년만 해보겠다' 말씀드렸죠. 말수도 굉장히 적었던 터라 '말도 못하는 게 무슨 음악을 하냐'고 걱정하시더라고요. 상경한지 1년쯤 되어갈 때 이리저리 데모를 보냈어요. 그때 조PD 형이 하던 스타덤 엔터테인먼트에서 연락이 왔고 보컬로 쓰고 싶다고 얘기하셨어요. 부끄럽지만 메인 보컬로 들어가서 연습했습니다."
-왜 부끄럽나. 최근 '놀라운 토요일'에서 god 노래를 불러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방송에서 한번씩 노래할 기회들이 있는데 왠지 노래를 진지하게 하는 게 부끄럽더라고요. 제가 노래하는 사람으로 살지는 않았으니까 그런 거 같아요. 그날은 태우 형과 준형이 형도 와 있고 제대로 불러야 할 거 같았어요. 다들 놀리는데도 진지하게 불렀는데 반응이 있더라고요. 그날 목이 잘 풀려 있었어요. 하하. 제작진이 영상을 보내줬는데 세 번이나 리플레이를 했더라고요. 원래는 '놀토'가 젊은 프로그램이라 리플레이가 없거든요."
-그룹 활동을 하다가 엠넷 '쇼미더머니'로 유명세를 탔다. 한해에게 '쇼미더머니'는 어떤 프로그램으로 남아있나.
"팬텀 활동을 4~5년 했는데 망하진 않았어요. 성공까진 아니었지만. '쇼미더머니4'에 나간 게 2015년인데 당시 판정 번복 사건이 있었어요. 전 그때 인생이 망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오히려 동정 여론이 생기더니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한 거에요. 너무 신기했어요. 다음 날 범키 형 콘서트가 있어서 홍대에 갈 일이 있었는데 다들 알아보더라고요. 예선 탈락을 했음에도 호감 캐릭터가 생겨서 공연을 많이 하게 됐어요. 처음으로 유명세가 생겼죠. 2년 뒤에 '쇼미더머니6'에 한 번 더 나가서 그땐 오래 살아남았어요. '쇼미더머니'는 제겐 너무 고마운 기억으로 남아있어요. 사실 싸우는 성격이 아닌데 경연이다 보니 그 부분은 힘들었어요. 그때는 제가 봐도 독기가 있더라고요. 그 상황에 가면 몰입이 돼요. 어리기도 했고, 이거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생각으로 덤볐죠."
-과거 '남친룩'으로도 화제가 됐었다.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
"눈에 띄고 싶어서 곰돌이 폴로템을 밀었어요. 그땐 다들 스냅백을 쓸 때였는데 볼캡을 썼어요. 캐릭터가 있을 거 같아서 밀었고, 나름대로 작전도 짰죠. 제가 말을 세게 못하니까 '옷으로라도 화제가 되어보자' 싶어서 골프웨어도 입었고요. 스타일리스트도 없었어요. 화려한 비싼 옷 말고 내 색깔이 드러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직접 준비를 했죠. 2~3년 동안 스타일리스트 없이 모든 방송을 소화했어요. 지금요? 스타일리스트가 주는 대로 입고 있어요. 하하."
-'놀라운 토요일'에 출연하며 방송인으로 본격 활약하게 됐는데 출연 계기가 궁금하다.
"꾸준히 앨범도 내고 했는데 '쇼미더머니' 때 받았던 관심이 서서히 없어지더라고요. 오디션 프로의 허와 실인 거 같아요. 그 당시 여러 예능을 많이 했는데 '놀라운 토요일' 측에서 연락이 온 거에요. 출연진이 유명한 분들로만 꾸려져 있었는데 딱 한자리가 신선한 인물이 필요했나 봐요. 그땐 래퍼들이 핫할 때니까 '남자 래퍼면 좋겠다' 해서 세 명이 추려졌었어요. 미팅을 하러 갔고 최종적으로 합류하게 됐죠. 2018년쯤이에요. 그때는 말도 많이 안 하고 어리바리한 느낌으로 갔어요. 콘셉트는 아니고 방송을 잘 못하니까 그랬던 거였어요. 너무 감사하게 제가 군대에 다녀온 이후에도 '놀토'에서 다시 불러주셔서 지금까지 하고 있네요."
-군대를 조금 늦게 간 걸로 알고 있는데 힘들진 않았나.
"서른 살에 의경을 갔어요. 저는 재미있고 좋았던 시간으로 기억해요. 그 당시 2년여간 정말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을 했거든요. 뷰티 프로그램부터 '놀토'까지, 사람들은 모르지만 엄청 바쁘게 살았어요. 1주일에 6일을 일했기 때문에 오히려 군대가 휴식기였어요. 마지막에 콘서트까지 하고 갔거든요. 군대 선임들이 98년생이었고 동기들 중엔 2000년생도 있었어요. 소대 친구들은 지금도 한 번씩 만나고 그래요."
-가족에 대한 애정이 많은 걸로 안다. 자주 보고 지내는지.
"가족들이랑은 자주 만나고 있어요. 일년에 부산을 서너번은 내려가요. 엄마도 자주 올라오시고요. 저는 20대 초에 서울에 와서 온전히 제가 벌어서 생활한 줄 알았어요. 그런데 '편스토랑' 촬영을 하며 누나가 용돈을 줬던 기억이 나서 2012년과 2013년 입출금 내역을 확인했더니 누나가 제 통장 잔액이 몇천 원 있을 때 돈을 보내준 적이 많더라고요. 자기도 빠듯했을 텐데 보내줬던 거에요. 고마웠죠."
-개인적으로 한해의 '아이구' 가사가 찡하더라. 본인 노래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이 궁금한데.
"날것의 감정일 때 낸 노래를 좋아해요. '아이구'가 군대 가기 직전에 쓴 곡인데 저도 좋아해요. '내가 이래'라는 곡과 '구름'이라는 곡도 좋아해요. '내가 이래'는 직접 쓴 건데 픽션도 섞여있어요. 당시 제가 좀 오랜만에 동창을 마주할 일이 있었는데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밥만 먹고 헤어졌는데 그런 류의 영화를 많이 봤던 터라 가사가 그렇게 탄생했어요. 사운드적으로도 완성도가 있었고요. 많은 곡을 냈으니까 지금 들으면 부끄러운 게 있고 잘 만든 게 있는 거 같아요."
-와인을 사랑하는 걸로도 유명한데. 한해에게 와인은 어떤 의미인가.
"사업을 하는 건 아니지만 와인이 제게 엄청 중요한 게 돼버렸어요. 올해 자선 디너를 하면서 소믈리에 활동도 할 거 같아요. 올해도 열심히 마셔야죠. 하하. 사람들에게 와인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도 커요. 전역하고 한 3년 지나서 본격적으로 자격증을 따고 소믈리에들과 모임을 하기 시작했어요. 와인 공부를 해보니 무궁무진하고 새로운 세계더라고요. 붐 형이 '국내 1호 포도주 래퍼'라고 놀리기도 하는데, 여러 가지로 좋은 걸 가져다주는 거 같아요. 제가 워낙 좋아하는 거니까 유일하게 스트레스 안 받고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덕분에 "행복이 쪘다"는 표현을 유행시키기도 했다.
"그때 그냥 방송 중에 한 말인데 이렇게 화제가 될 줄은 몰랐어요.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지인들과 술 먹는 시간이 있었는데 '형 이러니까 살이 찌지'라고 하길래 '행복이 찐 거야'라고 답했는데 나중에 여러 방송에서 살 찌는 걸 표현할 때 '행복이 쪘다'는 표현이 사용되더라고요.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이젠 다이어트를 좀 하긴 해야겠어요. '솔로지옥'을 보는데 제가 너무 후덕해서 핫한 남녀의 심리를 얘기하는 게 이율배반적이란 느낌이 들더라고요. 하하하."
-한해의 음악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은데 신곡은 언제쯤 만날 수 있나.
"음악을 안 한 것에 대한 죄책감이 있어서 매년 음악 계획을 세우는데 수포로 돌아가서 팬들에게 미안해요. 이번에는 허투루 약속하지 않고, 기대하지 않았을 때 선물처럼 많은 걸 줄 수 있게 준비 중이에요. 한참 음악을 열심히 할 때는 크게 반응도 없었는데 3년 정도 안 내니까 앨범 내달라는 요청이 많아졌어요. 안 하다 보니까 처음으로 제가 그리운 느낌을 받아 본 거죠. 이번에 상황이 되면 좋을 거 같아요. 제 노랜 아니지만 최근에 다비치 이해리 누나와 '에버그린(Evergreen)'을 발매했어요. 래퍼 PK헤만이 2007년 발표했던 곡인데 리메이크했습니다."
-갑진년(甲辰年), 한해의 새해 소망은 뭘까.
"'대중의 사랑으로 먹고 산다'는 표현이 요즘엔 좀 와닿아요. 책임져야 하는 부분도 있고 사명감이 생기더라고요. 지난 한 해는 굉장히 바쁘게 살았고 방송 프로그램을 10개 정도 했어요. 올해 소망이 있다면 그리 티 나지 않게 바쁘고 싶습니다. 너무 바빠 보이면 호들갑 떠는 거 같으니까요. 다양한 것들을 해보고 싶고 안 나갔던 프로그램도 나가고 싶어요. 그간 실내 예능 위주로 했으니 '1박2일'이나 '런닝맨' 같은 야외 예능도 한번 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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