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발언으로 공격받는 소셜테이너]
'경성크리처' 한소희, 안중근 사진 게재
가수 김윤아, 日 후쿠시마 오염수 비판
배우 이영애, 이승만기념관 건립 기부
"SNS 파급력 높을수록 집중 공격 타깃"
"SNS 확증편향이 진영논리 심화한 탓"
1945년 일제강점기 경성을 배경으로 한 넷플릭스 드라마 '경성크리처'에 출연한 배우 한소희가 최근 일본 누리꾼들로부터 악플 테러를 당했다. 한씨가 지난달 24일 드라마 홍보를 위해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안중근 의사 사진을 올리자 이들은 "반일이자 혐일"이라며 "일본인들의 심정을 헤아리지 않고 글을 올렸다"고 비난했다.
사회적 이슈에 소신을 드러냈다가 여론의 집중 공격을 받는 연예인이 한씨가 처음은 아니지만, SNS가 발달할수록 연예인들이 여론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SNS가 공론장의 순기능도 있지만, 다른 의견에 적대감을 분출하는 집단 공격 도구로 악용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소셜테이너' 배우 김규리부터 가수 이효리까지
지난해 9월 가수 김윤아도 자신의 SNS에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처리수 비판 글을 올렸다가 여권 지지층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김씨는 일본이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시작하자 SNS에 “RIP(Rest in Peace·명복을 비는 표현) 지구” “오늘 같은 날 지옥에 대해 생각한다”고 썼다가 당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로부터 "개념 없는 '개념 연예인'"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일부 누리꾼이 아닌 여당 대표까지 나서 김씨를 직격하면서 공격 수위는 한층 더 높아졌다. 피해가 심해지자 김씨 측은 "환경 오염에 대한 우려와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지, 정치적 입장을 피력한 게 아니다"라며 해명했다.
배우 이영애씨도 같은 달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5,000만 원을 기부하며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초석을 단단히 다져놓으신 분"이라고 언급해 논란이 됐다. 이번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강성 지지자 커뮤니티인 ‘재명이네마을’에서 이씨를 향해 "역사의식이 없다"며 맹비난했다. 역사 왜곡 논란에 이씨 측은 당시 "과오는 과오대로 역사에 남기되 공을 살펴보며 화합하자는 의미였다"고 해명했다. 지난달 드라마 제작발표회에서도 이씨는 "나도 아이 엄마니까 우리나라가 행복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기부했다"고 거듭 입장을 밝혔다. 모델 출신 배정남씨도 최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책 '디케의 눈물'을 자신의 SNS에 올렸다가 정치색 논란에 휩싸였다.
연예인들의 소신 발언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 시작한 건 대략 15년 전부터다. SNS가 활발해지면서 민감한 이슈에 대한 연예인들의 사회적 발언도 늘어났다. '소셜테이너'(Social과 Entertainer 합성어·사회 참여 발언 대중문화예술인)라는 용어도 그즈음 생겼다. 배우 김규리씨는 2008년 '광우병 소고기' 파동 당시 자신의 미니홈피에 "(광우병 소고기를 먹느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에 털어넣는 편이 낫겠다"는 글을 올려 정부의 연예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2011년 한진중공업 사태 당시 노조 집회를 지지했던 배우 김여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자녀를 도운 가수 박혜경, 진보적 정치인들과 순회공연을 하며 정부 비판 발언을 했던 방송인 김제동, 김미화 등이 소셜테이너 원조 격이다. 이어 동물·환경보호 등 사회 문제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온 가수 이효리 등도 있다.
확증편향 심한 SNS… “연예인, 공론장의 약자”
대중의 관심을 받는 연예인 특성상 이들의 발언의 파급력은 일반 시민보다 크다. SNS 발달로 발언의 파급력은 더 막강해졌다. 하지만 파급력이 높아질수록 여론의 공격 수위도 높아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대학 교수는 "연예인은 파급력과 영향력을 가졌기 때문에 얼핏 보면 온라인 등에서 여론을 이끈다고 여겨질 수 있다"면서도 "동시에 발언의 적절성 여부와 상관없이 사회정치적 사안을 언급했다는 사실만으로 공격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오히려 약자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SNS에서 강화되는 확증편향도 연예인에 대한 과도한 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믿고 싶은 정보만 찾아 자신의 신념을 강화해 다른 의견을 배척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는 얘기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SNS에서 자신과 다른 생각을 말하는 사람을 무시하거나 깎아내리려는 진영 논리가 강하게 작용한다"며 "이 때문에 의견이나 입장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우르르 몰려가 집단 공격하는 게 보편적인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도 "연예인 발언에 대한 비방과 공격이 심해진 건 발언 내용의 문제라기보단 SNS상 확증편향이 심해진 탓"이라며 "SNS에서 건전한 토론 문화가 아직 정착되지 못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 교수는 "연예인이 사회적 발언을 했다고 해서 '소셜테이너'로 구분 짓는 게 적절한가"라며 "이들이 어떤 발언을 하든 자연스럽게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했다. 김헌식 평론가도 "연예인이나 일반 시민이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며 "SNS 플랫폼 차원에서 악의적인 댓글을 막거나 필터링 시스템을 가동해 과열을 막고, 토론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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