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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은 사람 지능을 닮지 않았다" 사이버네틱스 창시자의 경고

입력
2024.01.06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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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 콘웨이·짐 시겔만 '정보시대의 다크 히어로'
'사이버네틱스' 창시자 노버트 위너의 일대기 다뤄
천재 수학자로 '인간 같은 컴퓨터'를 개념화했지만
인공지능 전면화에 따른 '노예노동' 가능성도 경고

1960년 MIT대 은퇴 만찬을 함께한 줄리어스 스트래튼(맨 왼쪽부터) 총장, 노버트 위너, 정보이론가 클로드 섀넌. 섀넌은 이진법과 비트 등의 개념을 정립해 '디지털의 아버지'라 불린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 대부분은 위너에게 빚지고 있다. 섀넌을 자주 만났던 위너는 나중에 그를 슬슬 피했는데, 이를 두고 위너는 "그는 나의 뇌를 통째 뽑아 먹을 듯이 묻고 또 물었다"라고 말했다. 형주 제공

1960년 MIT대 은퇴 만찬을 함께한 줄리어스 스트래튼(맨 왼쪽부터) 총장, 노버트 위너, 정보이론가 클로드 섀넌. 섀넌은 이진법과 비트 등의 개념을 정립해 '디지털의 아버지'라 불린다. 하지만 그 아이디어 대부분은 위너에게 빚지고 있다. 섀넌을 자주 만났던 위너는 나중에 그를 슬슬 피했는데, 이를 두고 위너는 "그는 나의 뇌를 통째 뽑아 먹을 듯이 묻고 또 물었다"라고 말했다. 형주 제공

시속 500㎞로 고도 9㎞ 상공을 나는 폭격기의 비행 경로를 예측, 격추시킬 수 있는 대공포 계산기를 설계하라. 단, 폭격기의 회피기동도 감안해야 한다.

불수능 문제가 아니다. 2차대전 당시 독일 폭격기에 맞서야 했던 연합국의 미션이었다. 미 국방부 산하 래드랩(Radiation Laboratory)은 그럭저럭 계산기를 만들어냈지만, 그 과정에서 수학자 노버트 위너의 보고서에 더 주목했다. 복잡한 수식이 가득한 이 보고서는 당시 기술로 구현을 못했다 뿐이지 이론적으로 훨씬 더 우수해서다. 군사기밀 접근권을 가진 극소수의 사람들만 돌려본 이 보고서는 노란 표지가 붙었다는 이유로 중의적으로 '옐로 페릴(Yellow Peril)'이라 불렸다.


2차대전 방공포에서 시작된 연구 주제 '사이버네틱스'

이 보고서에서 위너는 외부 정보의 유효성을 측정하고 그 가운데 통계적으로 더 큰 실현 가능성을 가진 정보를 가려낸 뒤 그에 맞춰 포대를 제어한다는 것이 어떤 개념인지를 설명하며, 이것이 동물의 신경계처럼 작동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개념은 나중에 인간의 지성 또한 "한낱 통계적 확률, 그리고 순수한 혼란으로부터 유도될 수 있다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이 정도면 감이 올 것이다. 요즘 최고 최대의 화두, 인공지능(AI)이다.

'정보시대의 다크 히어로'는 사이버네틱스의 창시자라 불리는 노버트 위너(1894~1964)를 한국에 처음 소개하는 책이다.

1957년 MIT대에서 강의 중인 노버트 위너. 문제 길이만도 1.5m에 이르는 수학 문제 두 개를 하나는 오른손으로, 다른 하나는 왼손으로, 양손을 써서 동시에 풀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형주 제공

1957년 MIT대에서 강의 중인 노버트 위너. 문제 길이만도 1.5m에 이르는 수학 문제 두 개를 하나는 오른손으로, 다른 하나는 왼손으로, 양손을 써서 동시에 풀었다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형주 제공


위너는 11세에 대학생이, 18세에 미국 하버드대 박사가, 25세에 MIT대 교수가 됐다. 책엔 그의 천재성과 조울증, 아버지와의 갈등, '위너웨그(Wienerweg·위너가 걷던 산책길)'로 대표되는 온갖 기행까지 천재 과학자의 일대기에 어울릴 만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앨런 튜링, 폰 노이만 같은 과학자들뿐 아니라 폴 라자스펠드, 로버트 머튼 같은 사회학자들, 마거릿 리드 같은 인류학자들까지. 20세기 초중반 각 분야 일급 지식인들이 총출동하는 스토리도 흥미롭다.


20세기 중반, 이미 인공지능의 한계를 지적하다

하지만 지금 위너를 들여다봐야 할 이유는 대런 애스모글로우 '권력과 진보'(생각의 힘 발행)에서 찾을 수 있다. 애스모글로우는 거침없는 자동화의 물결에 넋 놓고 있을 게 아니라 적극 개입해 '모두를 위한 기술'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인공지능' 대신 '기계지능', 더 나아가 '기계유용성'이란 표현을 쓴다. AI는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이 아니라 그저 기계지능일 뿐이며, 인간을 도와야 하는 기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애스모글로우는 이 아이디어를 위너에게 빚졌다고 밝혀뒀다.

1906년 미국 일간지 1면을 장식했던 어릴 적 노버트 위너의 사진. 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를 익혔으며 화학, 대수학, 기하학, 동물학 등을 공부하고 대학생이 된 11세의 위너는 '세상에서 제일 놀라운 소년'이라 소개됐다. 형주 제공

1906년 미국 일간지 1면을 장식했던 어릴 적 노버트 위너의 사진. 라틴어, 그리스어, 독일어를 익혔으며 화학, 대수학, 기하학, 동물학 등을 공부하고 대학생이 된 11세의 위너는 '세상에서 제일 놀라운 소년'이라 소개됐다. 형주 제공


위너는 그런 평을 받을 만했다. 그는 1948년 '사이버네틱스: 동물과 기계에서의 제어와 통신'이란 책을 내면서 미래 세계 비전을 제시한 인물로 떠올랐다. 하지만 그가 그린 미래는 밝지 않았다. 자동화 때문에 인간이 노예 노동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위너는 전미자동차노조와 함께 '노동-과학 자문위원회'를 만들고 분별없는 자동화에 대한 반대와 새로운 대안 모색을 천명했다. 거기다 2차대전 이후 군사 관련 각종 연구 프로젝트를 거부한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고, 과학 연구에 스며든 군사적 비밀주의를 맹비판했다.


'인공지능'이란 말 자체가 냉전의 산물

냉전 시기 이런 언행은 군대, 대학, 정부, 대기업 모두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미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국(CIA)은 한동안 그의 뒤를 캤다. 거기다 소련이 사이버네틱스 개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후 정부는 사이버네틱스 대신 인공지능 쪽에다 연구비를 몰아준다. AI의 'Intelligence'가 '지능'이기도 하지만 '첩보'이기도 하니까 국익에 도움될 거라는 기괴한 이유에서다. 인공지능이라는 용어의 부상 자체가 냉전 때문인 셈이다.

챗GPT 이후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에 대한 논의가 한층 더 뜨거워졌다. 로이터 연합뉴스

챗GPT 이후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에 대한 논의가 한층 더 뜨거워졌다. 로이터 연합뉴스

위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공지능 같은 전자두뇌는 인간의 두뇌와 전혀 닮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인간의 일을 전자두뇌에 맡겨둘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늙은 괴짜 지식인이 지껄이는 저주" 취급을 당했다. 챗GPT 열풍이 후끈한 이 시대에 AI가 아닌 사이버네틱스란 단어를 되씹어볼 이유다.

책을 낸 형주출판사는 부산에서 시작한, 1년 된 신생출판사다. 주혜민 팀장은 "21세기를 맞아 가장 첨예한 질문이 되고 있는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무엇인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책들을 앞으로 지속적으로 펴낼 예정"이라 말했다.

정보시대의 다크 히어로·플로 콘웨이, 짐 시겔만 지음·김성훈 옮김·형주 발행·653쪽·3만5,000원

정보시대의 다크 히어로·플로 콘웨이, 짐 시겔만 지음·김성훈 옮김·형주 발행·653쪽·3만5,000원


조태성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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