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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만두·롤·밥을 한번에 고른다...美 대형마트 벽 뚫은 CJ 비비고의 '매대 실험'

입력
2024.01.04 10: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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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식의 완성 '꿈'
CJ제일제당, 뿔뿔이 흩어진 아시아 식품 한 곳에
크로거 등에 매대 변신 제안...구조 바꾸니 매출↑

지난달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세리토스의 식료품 체인 랄프의 냉동 식품 코너 속 비비고 만두. 박소영기자

지난달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세리토스의 식료품 체인 랄프의 냉동 식품 코너 속 비비고 만두. 박소영기자




아시아 식품 종착지(Your Asian Foods Destination)


지난달 20일 오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세리토스의 식료품 가게 랄프(Ralphs). 냉동식품 코너 한편에서 눈에 들어온 문구다. 수백 가지 냉동식품이 들어찬 냉장고 중에서도 문 위아래 빨간색 띠지로 둘러진 3개의 문이 튀었다. 아시안 디저트 브랜드 파고다(PAGODA)의 에그롤, 미국 중식 체인점 피에프창이 낸 볶음면과 밥, 일본 아지노모토의 냉동식품 브랜드 링링의 만두·라면 등 갖가지 아시안 냉동식품이 채워져 있었고 한가운데 만두(MANDU), 찐 만두(STEAMED DUMPLING), 완탕(MINI WONTONS), 매운 왕교자, 볶음밥 등 '비비고(BIBIGO)' 제품들이 있었다.

이 '쓰리 도어 냉장고'는 CJ제일제당이 자랑스러워하는 미국 내 사업 성과 중 하나다. 2019년 CJ 역사상 가장 많은 1조5,000억 원을 주고 미국 냉동식품 업체 슈완스를 품으면서 확보한 전국망을 갖춘 대형마트 매대이기 때문이다. 슈완스 인수 전 CJ는 H마트 등 한인마트, 일부 중국 마트, 큰 폭 할인을 통해 대기업이 진입할 수 있는 코스트코 같은 멤버십 할인 매장에만 제품을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장보기 채널로 전체 유통망의 20%를 차지하는 월마트, 크로거 등 일반 대형 마트를 뚫기는 쉽지 않았다.


미국 마트 매대 바꾼 비비고

지난달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식료품 체인 랄프의 냉동 식품 코너. 비비고를 비롯한 아시아 냉동 식품을 모두 모아놓은 냉장고에는 ‘아시아 식품 종착지(Your Asian Foods Destination)’라는 빨간 띠지가 둘러져 있다. 박소영기자

지난달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식료품 체인 랄프의 냉동 식품 코너. 비비고를 비롯한 아시아 냉동 식품을 모두 모아놓은 냉장고에는 ‘아시아 식품 종착지(Your Asian Foods Destination)’라는 빨간 띠지가 둘러져 있다. 박소영기자


그렇다고 비비고가 일반 대형마트 매대에 그냥 오른 것은 아니다. 강원철 CJ제일제당 아메리카 GSP 경영리더는 "비비고를 (냉장고에) 넣으려면 기존에 있던 다른 제품을 빼야 한다"며 "그럴만한 이유를 가지고 마트 측이나 소비자들을 잘 설득해야 했다"고 말했다. CJ는 아시아 음식이 미성숙 시장이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점에 집중했다. 강 리더는 "한 매장 안에서도 스낵은 이쪽, 식사류는 저 뒤, 디저트는 반대편 등 뿔뿔이 흩어져 있어 고객들이 번거롭게 느꼈다"며 "고객사에 우리가 '아시아 음식은 성장하는 카테고리고 이들은 모아서 제공해야 소비자가 쇼핑하기 편하다'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CJ가 '아시아 식품 종착지(ASIAN DESTINATION)'이라고 이름 붙인 이 매대 혁신 프로젝트에 처음 응한 곳이 미국에서 월마트 다음가는 대형마트· 슈퍼마켓 체인 크로거였다. 크로거는 본사가 있는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2개 매장에서 아시안 식품들을 애피타이저부터 식사류, 디저트까지 몽땅 모았다. 강 리더는 "(구조를 바꾸니) 아시아 식품 매출이 크게 오르고 비비고가 새 고객을 끌어들이는 효과도 컸다"며 "2023년에는 월마트도 구성을 바꿨고 현재 전국 1만 개 넘는 매장 속 매대를 비슷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CJ 지원 받은 슈완스, 네슬레와 경쟁

CJ제일제당이 202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보몬트에 세운 공장에서 비비고 만두가 생산되고 있다. 이곳은 비비고 만두와 볶음밥 등을 생산하는 미국의 가장 큰 비비고 생산기지다. CJ제일제당 제공

CJ제일제당이 202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보몬트에 세운 공장에서 비비고 만두가 생산되고 있다. 이곳은 비비고 만두와 볶음밥 등을 생산하는 미국의 가장 큰 비비고 생산기지다. CJ제일제당 제공


CJ는 슈완스 인수 뒤 3개년 계획을 통해 슈완스가 기존 CJ의 미국 사업을 맡던 CJ푸드를 흡수 통합했다. 2020년 학교 급식 등 푸드 서비스 통합, 2021년 그로서리 사업 통합에 이어 지난해 초 CJ푸드 사업 전체를 슈완스 안에 넣었다. CJ제일제당의 미국 사업은 미국 미네소타주 작은 도시 마셜의 슈완스 본사가 진두지휘한다.

슈완스와 CJ의 통합의 성과는 브랜드 순위가 보여준다. 2020년 비비고는 미국의 아시아 식품 시장에서 4위 브랜드에 이름을 올렸고 25년 동안 1등 자리를 지켰던 일본의 아지노모토와 시장 점유율 격차는 13%가량이었다. 그런데 1년 만인 2021년 아지노모토를 제치고 현재는 5%가량 차이가 나는 1등 브랜드가 됐다. 강 리더는 "2019년에는 비비고 만두가 미국 내 매장의 20% 정도만 깔렸었지만 지금은 80%까지 늘었다"고 말했다. 슈완스의 학교 급식 납품망을 타고 비비고 만두가 학생들에게도 제공된다.

사실 몇 년 전만 해도 슈완스는 미국 냉동식품 기업 순위에서 10위 아래에 머물며 성장이 정체돼 있었다. CJ는 그런 슈완스에 과감히 투자했고 빠른 의사 결정으로 브랜드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지난해 5월 6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캔자스주 냉동 피자 공장을 증설해 세계 최대 규모로 키운 것이 대표적이다. 완스의 냉동 피자 브랜드 '레드 바론'도 날개를 달아 독보적 시장 1위 브랜드 네슬레의 '디조르노'를 제치고 지난해 연간 1위가 됐다.

CJ 측에 따르면 미국 냉동식품 시장에서 슈완스는 7위로 식료품이나 상온 식품까지 파는 회사들을 빼면 사실상 1위 코나그라, 2위 네슬레에 이어 3위다. 특히 매출액과 판매량이 함께 늘면서 슈완스는 전체 냉동식품 시장의 성장률을 감안하면 네 배나 더 컸다.



7개 글로벌 전략식품으로 '한식의 완성' 꿈 꿔

12월 20일 미국 LA 교외의 한 코스트코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비비고 냉동 제품들을 카트에 담아봤다.치킨 라이스볼, 비비고 왕교자, 스팀 덤플링, 미니 완탕,양념치킨, 김치치즈 주먹밥, 햇반 등 총 7종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박소영 기자

12월 20일 미국 LA 교외의 한 코스트코 매장에서 판매되고 있는 비비고 냉동 제품들을 카트에 담아봤다.치킨 라이스볼, 비비고 왕교자, 스팀 덤플링, 미니 완탕,양념치킨, 김치치즈 주먹밥, 햇반 등 총 7종의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박소영 기자


앞으로 전망도 밝다. 세계 곳곳에서 한식 트렌드가 유행을 타고 있기 때문이다. 강 리더는 "전 세계 한식당 수가 2011년에는 6,000개 수준이었는데 10년 뒤에 4만 개까지 늘었고 현재는 약 6만, 7만 개로 추정된다"며 전 세계 1위 프랜차이즈 맥도널드 매장보다 많은 것이 한식당이고 여기서 한식을 경험한 사람들이 식료품 매장에서도 K푸드를 사려고 할 것이라는 게 그의 예상이다.

CJ는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해 글로벌 전략제품(GSP·Global Strategic Product) 일곱 가지를 뽑았다. 만두, 롤, 가공밥, 김치, 고추장·된장·쌈장 등 K소스, 치킨, 김 등인데 이들을 한데 어우러지게 해 궁극적으로 식사, '한식의 완성'을 이뤄내는 것이 목표다.

그중 대표 선수인 만두는 미국에서 1차 성장기를 마치고 2차 성장기로 넘어가는 단계다. 비비고가 밀고 있는 차세대 주자는 '햇반'이다. 강 리더는 "미국 소비자들은 끈끈한 한국식 밥을 고품질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코스트코에서는 우리의 매출 톱(TOP)5 제품에 밥이 들어간다"고 소개했다. 소스, 김치, 김은 해마다 20% 급성장하는 제품으로 더 많은 소비자와 접점을 넓히고 이미 경쟁자가 많은 치킨은 기반을 더 닦아야 한다는 게 자체 평가 내용이다.



CJ제일제당이 202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보몬트에 세운 공장. 비비고 만두와 볶음밥 등을 생산하는 미국의 가장 큰 비비고 생산기지다. CJ제일제당 제공

CJ제일제당이 2020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보몬트에 세운 공장. 비비고 만두와 볶음밥 등을 생산하는 미국의 가장 큰 비비고 생산기지다. CJ제일제당 제공


양적·질적 성장을 꾀하기 위해 현재 미국에 있는 17개 슈완스 공장 중 비비고 제품을 만드는 7개 공장 외에도 중서부 사우스다코타주의 수폴스에 '아시안 기지' 역할을 할 새 공장을 짓는 등 투자도 더 늘릴 계획이다.

강 리더는 "현재 비비고는 '스낵' 단계에 머물고 있는데 미국 냉동식품 시장에서 스낵과 애피타이저 시장 규모는 1조 원 수준"이라며 "공급량을 늘리고 제품을 다양화해 스낵보다 2, 3배 더 큰 아시아 냉동 식사 시장까지 가는 것이 장기적 목표"라고 말했다.

세리토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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