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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인천에선 타는데, 서울선 못 타... 장애인 택시 지역별로 오락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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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인천에선 타는데, 서울선 못 타... 장애인 택시 지역별로 오락가락

입력
2024.01.03 04:30
수정
2024.01.04 23:09
11면
0 0

정부 차원의 통일된 지침 부족해
지자체별 이용 가능 대상에 차이

한 장애인이 서울시 장애인콜택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서울시 제공

한 장애인이 서울시 장애인콜택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서울시 제공

경추척수증(목뼈 신경의 압박으로 근력이 약해지는 질환)으로 인해 중증장애(장애인증명서 종합 판단 기준) 판정을 받은 황덕현(48)씨. 그는 2020년 11월 서울 서대문구 자택 앞으로 장애인 콜택시를 호출하려 했다가, 자격이 안 돼 택시를 이용할 수 없다는 황당한 답을 받았다.

장애인택시를 운영하는 서울시설공단(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이 배차를 거절한 이유는 '황씨의 하체 장애가 심하지 않아서'라는 것이었다. 그의 장애인증명서엔 '상지(팔) 기능 장애는 심하고, 하지(다리) 기능 장애는 심하지 않으며, 종합적으론 심한 장애인'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공단이 장애인 이동권을 종합적으로 보지 않고 '하지 장애가 심하지 않다'는 대목으로만 콜택시 사용 여부를 판단한 것이다.

중증장애인이 장애인 택시 못 쓴다?

부산·인천·광주에서 아무 제약 없이 콜택시를 불렀던 황씨의 입장에선 납득할 수 없는 처사였다. 그래서 그는 서울시 콜택시 배정 기준에 이의를 제기하는 소송을 냈고, 최근 항소심 법원이 황씨의 손을 들어줬다. 2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9부(부장 성지용)는 황씨가 서울시와 공단을 상대로 낸 장애인 차별 중지 청구소송에서, 지난달 21일 원고 패소 판결한 1심을 뒤집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쟁점은 구 교통약자법 시행규칙을 어떻게 해석할지였다. 제6조는 콜택시 이용 대상을 '보행상 장애인으로서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으로 규정하고 있는데, 서울시는 이를 '보행 장애가 심한 장애인'으로 바꿔 해석했다. 결국 장애인 증명서상으로 하지 장애 정도가 경증인 황씨는 콜택시를 이용할 수 없다는 논리다.

1심도 서울시 주장은 잘못됐다고 봤다. 입법 취지를 감안하면 신체 어디든 종합장애가 심하기만 하면 된다는 판단이다. 다만 규칙이 개정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선례가 없었으므로 서울시에 해석을 잘못한 책임까진 물 순 없다고 봤다. 하지만 2심은 이에 대해서도 "서울시가 애초 해석에 검토 노력을 들이지 않은 과실이 있다"며 황씨 손을 들어줬다.

정부가 통일된 지침 마련해야

2002년 12월, 서울시 장애인 콜택시 발대식에서 장애인이 시승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2년 12월, 서울시 장애인 콜택시 발대식에서 장애인이 시승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한국일보 자료사진

특정 지역에서만 택시를 호출할 수 없었던 황덕현씨 사례는 지방자치단체 별로 제각각인 콜택시 이용 기준의 실태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교통약자의 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장애인 콜택시는 올해로 도입 22년을 맞이했지만, 전국적으로 통일된 운영 지침이 없어 지자체의 자의적 해석에 의존하고 있다.

지역별로 다른 운영 지침 때문에 발이 묶인 건 황씨 만이 아니다. 홍모씨는 지난해 4월 서울시설공단으로부터 "지적장애인은 보호자를 동반해야 한다"는 이유로 택시 신청을 거부당했다. 이 보호자 동반 규정은 대전·인천 등 6개 시도엔 아예 존재하지 않고, 대구∙전남∙전북에선 필요에 따라 제한적으로 적용하는 규정이다. 홍씨는 사건을 법원에 들고 간 끝에야 겨우 임시 이용 결정을 받았다.

여기서 문제의 핵심은 현행법상 장애인 콜택시를 포함한 특별교통수단의 세부 운영 사항이 중앙정부 법령이 아닌 지자체 조례(지자체가 법령 범위 안에서 정하는 자치입법)에 위임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업 주체인 지자체가 사정에 맞게 운용할 수 있도록 한 조치였는데, 이것이 지역 간 서비스 차별이라는 엉뚱한 결과로 이어진 셈이다. 정부가 2019년 표준조례안을 배포하긴 했지만, 큰 틀에서 원칙을 제시했을 뿐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온다.

각 지자체 조례의 유일한 가이드라인인 교통약자법 적용을 두고 정부부처 간 해석 차이도 있다. 국토교통부는 황씨 사건에서 문제가 됐던 조문을 지난해 7월 '중증보행장애인'으로 구체화했지만, 정작 보건복지부는 보행장애에 중증과 경중을 구분하지 않고 있다. 기준을 어디 두느냐에 따라 지자체가 구비해야 하는 법정 콜택시 대수까지 대폭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이런 문제를 해소하려면 중앙정부가 나서 규정을 일원화하는 등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해부터는 장애인 콜택시 운영에 국비 보조가 시작돼 정부가 목소리를 낼 명분도 있다. 황씨 사건을 대리한 법무법인 원곡의 임한결 변호사는 "콜택시 이용 기준에 대한 범정부적 논의가 필요한 때"라고 강조했다.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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