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부족 필리핀, 대규모 식량 위기 우려
2008년 쌀 위기, 가격 급등 재현 가능성
‘아시아의 주식(主食)’인 쌀의 가격이 각국에서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지난해 이상고온에 따른 주요 생산국 수확량 급감과 세계 최대 쌀 수출국 인도의 수출 중단 여파로 시작된 가격 상승세가 해가 바뀌어도 꺾이지 않는 분위기다. 올해도 슈퍼 엘니뇨(적도 부근 해수면 온도 상승) 현상이 지속될 것으로 관측되면서 아시아의 밥상머리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1년간 태국산 쌀값 40% 상승
1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산하 아시안리뷰 등에 따르면,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국가들이 쌀 가격 상승으로 허덕이고 있다. 태국에서는 지난달 말 ‘아시아 벤치마크’로 통하는 태국산 백미 ‘5% 싸라기’ 판매가가 전주 대비 2.5% 오른 톤당 650달러(약 84만8,000원)를 기록했다. 2008년 10월 이후 15년 만의 최고치다. 지난해 1년간 가격 상승률은 약 40%를 찍었다.
중국에 이은 세계 2위 쌀 수입국 필리핀은 시장에서 쌀을 구매하기도 쉽지 않다. 필리핀 농업 관련 비정부기구 농민·과학자연합(MASIPAG) 알피 풀룸바릿 담당자는 미국의소리(VOA) 인터뷰에서 “필리핀에서 한 사람이 생존하려면 하루 최소 1.5달러(약 2,000원)가 필요한데, 현재 쌀 가격은 1㎏당 1.1달러(약 1,400원)여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며 “쌀 가격이 안정되지 않으면 대규모 식량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베트남, 파키스탄에서도 지난달 쌀값은 톤당 600달러(약 78만 원)를 웃돌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미국 시카고 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쌀 국제 선물 가격 역시 최근 6개월 새 10% 이상 올라 100㎏당 17.39달러까지 치솟았다. 미국 암호화폐(가상자산) 매체 CCN은 올해 쌀값 상승이 다른 투자 자산보다 높았다는 점을 소개하며 “금은 잊어라, 비트코인의 새로운 도전자는 쌀”이라고 전했다.
쌀 가격은 물가마저 끌어올렸다. 필리핀의 지난달 물가 상승률은 4.1%를 기록했다. 미국(3.1%)이나 유로존(2.4%)보다 높은 수준이다. 물가 상승에 직접적 영향을 준 품목은 쌀값으로, 상승 요인의 30%를 차지했다.
파종 시기 4~6월, 엘니뇨 재현될 것
이는 이상기후와 규제가 맞물린 결과다. 아시아는 전 세계 쌀 생산량의 90%를 책임지는데, 지난해 4월 엘니뇨 현상으로 동남아시아·남아시아에 때 이른 무더위가 찾아오고 기온이 섭씨 45도를 웃돌면서 주요 곡창지대의 수확량은 반 토막 났다.
국내에서 소비할 식량마저 부족해지자 각국은 식량 빗장을 걸어 잠갔다. 대표적인 나라가 세계 쌀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인도다. 쌀값 때문에 식품 물가 상승률이 두 자릿수로 오르자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민심을 달래기 위해 지난해 9월 쌀 금수 조치에 나섰다.
VOA는 “인도 쌀에 의존해 온 필리핀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국가, 그리고 나이지리아 코트디부아르 세네갈 등 서아프리카 국가가 직격탄을 맞았다”고 설명했다. 쌀 부족과 가격 급등 여파가 3개월이 지난 연말·연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호전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미국 기상청은 올해 아시아 국가들이 파종 시기인 4~6월 엘니뇨 영향권에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모내기한 벼가 자라야 할 기간에 뜨거운 햇볕 아래 고사해 버리면서 지난해 수확량 부족이 되풀이될 것이라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2008년 쌀 위기가 반복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당시 생산량 감소와 각국의 보호주의 정책 확산으로 쌀 가격이 6개월 만에 3배로 급등했고, 남·동남아시아, 북아프리카, 카리브해에서도 사회 불안이 촉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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