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서울고법에 공탁... 뒤늦게 공개
변제공탁 아니라 손해배상 성격은 아냐
일본 기업, 손배소 관련 최초 공탁 의미
피해자 "공탁금 출급 청구절차 밟을 것"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가 확정된 일본 기업 '히타치조선'이 2019년 법원에 공탁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일본 기업이 강제동원 사건과 관련해 한국 법원에 돈을 낸 건 처음이다. 다만, 항소심에서 진 뒤 강제집행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 피해자에게 배상금을 지불하는 변제 성격은 아니다.
29일 강제동원 피해자 이모씨 변호인에 따르면, 히타치조선은 2019년 1월 항소 기각 직후 6,000만 원을 서울고법에 공탁했다. 공탁 목적은 변제가 아닌 강제집행 정지를 보증하는 것이었다.
이씨는 1944년 9월 국민징용령에 의해 일본 오사카 소재 히타치조선소로 강제동원됐다. 자재 운반과 보수 공사 등을 했지만, 월급은 받지 못하다가 이듬해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후에야 밀항선을 타고 가까스로 귀향할 수 있었다. 이후 이씨는 2014년 11월 강제노역에 대한 정신적 피해보상(위자료) 청구 소송을 냈다. 1·2심 재판부 모두 히타치조선이 이씨에게 5,000만 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대법원이 28일 원고의 승소를 확정했다.
히타치조선은 2019년 1월 2심에서 항고 기각 후 압류와 같은 강제집행 정지를 청구했다. 6,000만 원을 공탁한 건 강제집행 정지의 담보 성격이다. 다른 일본 기업과 달리 히타치조선은 한국 내 강제집행 대상에 해당하는 재산이 있다고 판단해 공탁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에게 변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돈을 준비한 게 아니라는 얘기다.
이씨 측은 히타치조선이 서울고법에 낸 보증공탁금 6,000만 원에 대해 출급 청구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단, 강제집행정지 공탁금은 집행이 정지돼 채권자가 입은 손해에 대해서만 출급을 청구할 수 있다. 공탁관이 청구를 받아들이더라도 히타치조선 측에서 불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연손해금(지연이자)까지 합치면 이씨 측이 받아야 하는 배상금은 6,000만 원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이씨의 법률대리인 이민 변호사는 "(공탁금이 출급되면) 일본 기업이 낸 돈이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전달되는 첫 사례"라며 "일부지만 사실상 배상이 이뤄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30년 넘게 강제동원 피해 관련 활동을 한 최봉태 변호사도 "한국 법원 판결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일본 기업이 법적 조치를 취한 것"이라면서 "일본 측 돈이 피해자들에게 돌아가는 물꼬를 텄다고 본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원고가 훨씬 많은 미쓰비시중공업 등 다른 일본 기업의 배상금 지급이 요원한 데다,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 역시 피해자 측이 거부하고 있어 실제 배상이 성사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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