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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갖지 못한 이들에게 말을 찾아주고 경청하는 일, 연극·희곡이 해내길" [희곡 심사평]

입력
2024.01.0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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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심사평

지난달 1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2024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심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심사위원 장성희(왼쪽) 극작가 겸 평론가와 이성열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 및 연출가가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김예원 인턴기자

지난달 16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사에서 2024 한국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심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심사위원 장성희(왼쪽) 극작가 겸 평론가와 이성열 인천시립극단 예술감독 및 연출가가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김예원 인턴기자

희곡 부문 응모작은 모두 101편이었다. 단막극의 길이나 시·공간 제한 등 기본 조건을 넘어서는 작품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대화와 이미지를 다루는 문학적 훈련, 동시대적 주제와 이를 진지하게 다루는 작가 의식, 연극이 담아낼 수 있는 행동 서사 등을 찾자는 시선으로 응모작들을 읽었다.

일단 대화를 쓸 줄 아는 작품이 많지 않았다. 대화를 시늉한 독백에 그치거나 상황만을 그릴 뿐 진전 없는 구조가 많았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 타인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작품은 매우 적었다. 설명적인 대사로 채우거나 인물 각자의 혼잣말을 담아내고 있는 작품이 다수였다. 최종까지 거론한 작품은 다음과 같다.

'지구 반대편에서 스쿼트를 하는 사람들'에는 학교폭력에 희생된 동생의 죽음을 추적해가는 누나가 등장한다. 과거를 현재화하는 솜씨, 명료하고 탄력감 좋은 대사 구사가 큰 장점이다. 다만 극중 누나가 가해자로 오인한 필라테스 강사의 강습 장면은 공연 시 소재가 지나치게 희화화될 가능성이 크다. 결말 또한 콩트적 반전 구성을 넘어서지 못한 점이 아쉽다.

'은하수에 묻었다'는 세련된 언어 구사와 풍성한 이미지 구축이라는 장점으로 끝까지 우리를 고민하게 했다. 무엇보다 상징과 은유를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으나 인물 구도가 카뮈의 희곡 '오해'를 연상케 하는 점, 다채로운 이미지를 연상케하는 언어는 문학적 아름다움에 그칠 뿐 과연 무대 위에서도 그 힘을 가질 수 있을지에 대한 염려를 지우기가 어려웠다. 사막화된 남도 해변이라는 장소적인 사실성을 고려해서 사투리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 또한 꼭 필요한 것인지 의문이다. 시적 환상이 담긴 작품의 매력을 약하게 만들고 있다.

'위대한 무사고'는 현장실습을 나간 고등학생 소년이 경험하는 겹겹의 부조리를 다룬다. 신문 기사 몇 줄로 요약되는 사건 사고 속에 어떤 마음들이 부딪치고 있는가를 들여다보게 한다. 다소 극적 긴장을 상승시키지 못하는 사실의 나열이 아쉽지만 일단 우리 사회에서 작동하는 시스템 상자를 열어젖혀 보이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도 고립된 개인의 내면 독백을 담은 다른 응모작들을 넘어서는 지점이 있었다.

사회와 언론이 다 못하는 일을 좀 더 응시하고 목소리를 갖지 못한 이들에게 말을 찾아주는 일, 그것을 우리가 경청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을 연극과 희곡의 대화적 속성이 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밀어 올린다.

심사위원 이성열 장성희(대표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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