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신각 종지기 역사 과장 의혹 제기
"재직 기간 짧고 역사 독점 가능성"
시, "역사적 자료 없고 검증 힘들어"
후손, "관련 자료 소실, 인정받을 것"
서울시가 면밀한 사료 검증 없이 60년 이상 특정 가문과 그 후계자에게 서울 종로구 '보신각 종지기' 역할을 맡겨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25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시는 1961년부터 종지기 역할을 할 공무원을 채용했다. 보신각 제야의 종 타종행사 진행, 보신각 보수 유지 등을 한다. 현재 8급 임기제 공무원 자리다.
보신각 종지기 역사는 1840년대 1대 종지기 조재복씨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아들 조영희씨가 2대, 조한이씨가 3대를 맡았다. 해방 이후 한이씨의 아들 진호씨가 "대대로 조상들이 종을 관리했다"며 종지기를 자처, 4대 종지기로서 시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진호씨가 2006년 숨지면서 전통문화행사업을 하던 신철민(48)씨가 서울시 공무원으로 채용돼 5대 종지기가 됐다. 두 사람은 과거 타종행사를 함께 치르며 사제 연을 맺었다. 신씨는 "과거 관철동 주변에 양주 조씨 가문이 살았는데, 주변에 뜰이 넓은 곳이 많지 않아 집 앞마당에 종을 잠시 보관한 게 (종지기 가문이 된) 계기가 됐다고 스승(진호씨)에게 들었다"고 말했다. 신씨는 지난해 4월 "스승의 손자인 재원씨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싶다"며 퇴직했다. 재원(27)씨는 "가업을 잇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서울시는 지난해 5월 조씨 후손과 관련 없는 사람을 채용했다. 채용이 되면 2년 동안 경력에 따라 4,000만~5,600만 원의 급여를 받고 계약 연장도 가능하다.
일단 특정 가문의 '종지기' 독점을 막았지만, 최근 조씨 가문이 주장하는 '종지기 역사'가 불분명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서울시 책임론도 불가피해 보인다. 검증 없이 서울시가 60년 이상 특정 가문을 공무원으로 채용했기 때문이다.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종감(종지기)은 과거 재직 기간도 길지 않았다"며 "일부 조씨 조상들이 보신각을 관리한 것은 맞지만, 이를 부풀려 종지기 역사를 독점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에 따르면 종감은 1, 2년 주기로 바뀌는 무관 임명직이었다. 또한 대한제국 정부가 덕수궁과 대한문 등 주요 시설물 관련 역사를 기록한 '각부청의서존안(1900년 3월 31일자)'에도 종감으로 '조영희'와 '박경선'이라는 이름이 함께 나온다. 조씨 가문만 종지기를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조씨 후손들은 '3대 한이씨가 보신각 주변을 청소하다 민족의식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일제에 끌려갔고, 보신각 뒤에 공중 화장실이 설치되자 곡괭이로 부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주장하지만 근거자료는 없다. 장 교수는 "서울 한복판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는데 신문 기사 한 줄 없을 수 없다"며 "오히려 '서린동 양복점 직공 43세 조한이가 술주정을 하고 폭행을 저질렀다'는 기사(조선중앙일보, 1935년 6월 8일자)가 나온다"고 말했다 .
서울시도 주로 조씨 측 구술에만 의존해 특정 가문에 종지기를 맡긴 점은 인정하고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수십 년 전부터 조씨 가문이 종지기를 했다는 사실이 굳어졌다. 하지만 이를 증명할 자료는 부족하다"며 "종지기 역사가 부풀려졌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별도 입장을 내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서울시 측은 "자료는 남아 있지 않으나 당시에도 어떤 식으로든 절차를 거쳐 선발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후손 측은 한국전쟁 등으로 이를 입증할 자료가 모두 소실됐다는 입장이다. 신씨는 "그런 지적이 나올 수 있지만, 오히려 아니라는 증거는 어디에 있나"라고 반박했다. 재원씨도 "조상들이 계속 종을 지켜오셨던 만큼 기회가 되면 재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에서는 주무부서를 중심으로 위원회 등을 구성해 학술적으로 해결하려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정인성 영남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각자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공식적 논의의 장을 마련하고, 객관적 자료를 바탕으로 양 측의 이야기를 검토하는 등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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