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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사에서 반려견 키울 수 없나요?"… MZ 초급간부가 원하는 복무여건 개선 [문지방]

입력
2023.12.24 13:00
수정
2023.12.24 14:38
0 0

편집자주

광화'문'과 삼각'지'의 중구난'방' 뒷이야기. 딱딱한 외교안보 이슈의 문턱을 낮춰 풀어드립니다.

"반려동물 키울 수 있나요?"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반려견을 안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용산 대통령실 집무실에서 반려견을 안고 있다. 연합뉴스

몇 년 전 전세로 살던 집에서 이사를 준비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고양이를 키우는 분이 집을 보러 왔죠. 집 자체는 상당히 맘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결국 포기했습니다. 집주인이 반려동물을 절대 키우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인구가 1,5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한국 사람 10명 중 3명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셈입니다. 하지만 자기 집을 갖지 못한 이들은 여전히 반려동물과 함께 살 집을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벽지나 장판을 뜯어놓거나 털과 배설물 냄새 때문에 집이 상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다음에 들어와 살게 될 사람을 배려했을 때도 셋집에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MZ세대로 불리는 20대 초반~40대 초반은 반려동물에 대한 애착이 남다릅니다. 어릴 때부터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운 경험이 있고, 삶에서 그들이 주는 만족감이 얼마나 큰지 몸소 배우며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반려동물은 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한 공군 초급간부가 공개한 공군 비행단의 초급간부 숙소 모습. 페이스북 커뮤니티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캡처

한 공군 초급간부가 공개한 공군 비행단의 초급간부 숙소 모습. 페이스북 커뮤니티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 캡처

다소 장황하게 반려동물 얘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국방부 고위직 인사들이 군부대들을 직접 방문해 초급간부들과 복무여건 개선 의견 수렴을 위한 면담을 실시했는데 그중 한 명이 "관사에서 반려견을 키울 순 없나요?"라는 의견을 냈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얘기를 전한 군 관계자는 "과거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요구"라며 상당히 인상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과거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들이 지금은 보편적인 일상으로 자리 잡은 것들은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반려견과 관사에서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초급간부의 희망도 어찌 보면 이런 변화한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특히 MZ세대의 특징을 잘 살펴야 합니다. 이를테면 저출산 추세는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팍팍한 현실, 감당이 안 되는 부동산 가격과 육아 부담에 더해 연애에 들이는 노력을 자기개발과 여가에 쏟는 MZ세대들의 특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이죠.

군의 심각한 구인난도 MZ세대들의 직업관이 바뀐 영향이 큽니다. 사명감이나 직업의식보다는 고된 일을 피하고, 적당한 보수를 받는 걸 선호하게 된 것이 초급간부 모집에 애를 먹는 이유입니다. 군인은 다른 직업에 비해 힘들고 보수는 적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기 때문입니다.

육군사관학교 3학년 생도들이 경기 광주 육군특수전학교에서 공수기본훈련을 받고 있다. 육군 제공

육군사관학교 3학년 생도들이 경기 광주 육군특수전학교에서 공수기본훈련을 받고 있다. 육군 제공

실제로 최근 초급간부 지원율과 이탈률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초급간부의 한 축인 학군장교(ROTC) 경쟁률은 올해 1.6대 1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창군 이래 처음으로 추가 모집을 했을 정도입니다. 한때 인기를 누렸던 사관학교 경쟁률도 뚝 떨어졌습니다. 육군사관학교 경쟁률은 2020년 44.4대 1에서 올해 25.8대 1로 절반가량 하락했습니다. 사관학교 출신 중 의무복무 기간을 채우지 않고, 5년 차에 조기 전역한 인원도 최근 10년간 452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평생직장 개념이 없어지고 이직이 활발해졌다는 측면에서 군의 이런 현상도 놀라운 일은 아닙니다. 다만 군은 우리의 안보 역량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조금 얘기가 다릅니다. 통수권자 윤석열 대통령과 군의 수장인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초급간부 복무여건 개선에 힘쓰라고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이에 따라 군은 최근 다양한 복무여건 개선 방안을 내놨습니다. 금전적 처우와 주거 개선에 방점이 찍혔습니다. 국방부는 '2023~27 군인복지기본계획'을 통해 경계부대 소위 연봉을 2027년까지 중견기업 수준인 4,990만 원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습니다. 일반부대 소위는 3,910만 원 수준입니다. 하사는 소위보다 약 80만~150만 원 적습니다. 미혼 간부를 위한 숙소는 2026년까지 1인 1실을 확보하고, 기혼자를 위한 관사는 '국민 평형'(32평·약 105㎡) 시대를 열겠다는 계획입니다. 의료지원 강화도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군대에 가면 민간 못지않은 급여를 받을 수 있고, 따로 집을 구하지 않아도 번듯한 몸 누일 곳이 있다는 건 청년세대에게 분명 긍정적 유인동기로 작용할 것입니다. 다만 이런 조치가 궁극적인 해법이 될 수 있느냐는 더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초급간부 93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을 실시한 결과 '직업군인으로 복무 시 가장 고민되는 사항'에 대한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잦은 이사와 가족과의 별거'(47.9%), 불규칙한 근무(46.9%)를 꼽았습니다. 낮은 보수(69.2%) 다음으로 많은 응답이었습니다. 또 '군에서 지원하고 있는 사항 중 가장 시급히 개선돼야 할 사항'으로는 전역 후 취업지원(44.7%)이 주거지원(67.4%)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즉 충분히 보수를 받는 만큼 워라밸도 중요하고, 당장 살 만한 주거 환경을 제공해 주는 것만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도 해소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는 것입니다.

모든 걸 갖춘 직업은 없을 겁니다. 교육계의 의대 선호 현상은 갈수록 가속화하는데, 그중에서도 소아과나 힘든 필수의료 과목은 기피하고 '정재영'(정신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과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 쏠림이 심각하다고 하니 말입니다.

관사에서 반려견을 키울 수 있는 시대가 올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아무리 '가족 같은' 반려동물이라 해도 조직 내에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곤란하겠죠. 하지만 군 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진짜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현실만큼은 하루빨리 개선됐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어떤 직업도 가족과의 생이별을 강요해선 안 되니 말입니다. 배우자의 직업, 육아, 교육, 주거, 의료 등 다양한 문제 때문에 가족 전체가 이사를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 목표 중 하나인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는 대한민국 안보에 있어서도 꽤나 중요한 과제인 셈입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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