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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범죄에 시효는 없다"... 부산 형제복지원 배상 책임 첫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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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범죄에 시효는 없다"... 부산 형제복지원 배상 책임 첫 인정

입력
2023.12.21 18: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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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 홀로코스트' 인권침해 사건
법원 "수용 1년당 8,000만원 배상"

당시 부산형제복지원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관련 일지. 진실화해위 제공

당시 부산형제복지원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관련 일지. 진실화해위 제공


'한국판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학살)'라는 오명을 얻었던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국가가 원고들이 강제 수용된 기간 1년당 8,000만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9부(부장 한정석)는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26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는 각 원고에게 수용 기간 1년당 약 8,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총 청구 액수 203억 원 중, 법원이 인용한 금액 합계는 145억 8,000만 원이다. 1인당 손해배상금은 8,000만 원에서 최대 11억 2,000만 원까지다. 선고 결과가 나오자 재판정에 출석한 원고 일부는 "감사합니다"라고 외치기도 했다.

박종호(왼쪽부터), 이채식 씨를 비롯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21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재판을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하모씨 등 26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20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정부는 피해자 26명에 대해 8,000만 원~11억 2,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뉴스1

박종호(왼쪽부터), 이채식 씨를 비롯한 형제복지원 피해자들이 21일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재판을 마친 후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 하모씨 등 26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200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에서 정부는 피해자 26명에 대해 8,000만 원~11억 2,000만 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뉴스1

형제복지원 사건은 권위주의 정부 시절 국가권력이 법적인 근거도 없이 영장주의(강제처분에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필요로 한다는 원칙)를 정면으로 위반하며 사회적 약자를 탄압한 대표 사례다. 형제복지원은 1975년부터 87년까지 내무부 훈령에 따라 부산에서 운영된 부랑아수용시설이다. 감금·폭행·성폭행 등의 범죄 및 가혹행위가 일상적으로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최소 513명(공식 확인)의 원생이 사망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훈령은 법률유보원칙, 명확성 원칙, 과잉금지원칙, 적법절차 원칙, 영장주의 원칙을 위반해 위헌·위법하다"면서 "원고들은 신체의 자유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침해당해 피고는 원고들에게 정신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봤다.

국가가 주장하는 손해배상 소멸시효 완성에 대해선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에 해당해 소멸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과 인권 침해 사건에서 민법상 소멸시효를 적용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위자료 액수 산정 기준으로는 △육체·신체적 고통 △강제수용 당시 미성년자였던 원고들이 침해당한 학습권 △35년 이상 배상이 지연된 점 △장기간 명예회복이 이뤄지지 못한 점 등을 고려했다. 재판부는 선고 직전 "강제 수용돼 그 기간 동안 고통과 어려운 시간을 보낸 원고 분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재판부로서 먼저 드린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날 법원이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하면서, 향후 진행될 다른 피해자들의 소송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8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공권력이 자행한 중대한 인권침해'로 결론 내리고 국가가 피해자 지원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권고에 강제성은 없어, 보상을 받고자 하는 피해자들은 개별적으로 소송을 진행해야 했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에는 다른 피해자들이 낸 소송 2건이 내년 1월 31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이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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