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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돌 찾아 수십만 리"… 7년 매달려 국내 최초 편종·편경 복원한 악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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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돌 찾아 수십만 리"… 7년 매달려 국내 최초 편종·편경 복원한 악기장

입력
2023.12.20 10:0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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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 김현곤씨, '서울 명예의전당' 헌액
옥돌 찾아 중국에서 3년 반, 수천 번의 사포질
"전통 잇겠다는 사명감 하나로 시간과 돈 바쳐"

국가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보유자 김현곤(오른쪽)씨가 19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2023 서울시 명예의전당 헌액식'에서 헌액증서를 받고 있다. 서울시 제공

국가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보유자 김현곤(오른쪽)씨가 19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에서 열린 '2023 서울시 명예의전당 헌액식'에서 헌액증서를 받고 있다. 서울시 제공

"악기 복원에 수십 년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던 지난날이 생각납니다."

19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본관에서 '2023 서울시 명예의전당'에 헌액된 국가무형문화재 제42호 악기장 보유자 김현곤(88)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김씨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제례악의 주요 국악기 중 하나인 편종과 편경을 7년에 걸친 작업 끝에 국내 최초로 복원한 공을 인정받았다.

국악기를 향한 그의 외길 인생은 7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졸업 후 무일푼으로 상경한 김씨는 충무로의 한 악기점에 취직했다. 전문적으로 악기를 다룬 적도, 수리를 배운 적도 없지만 어려서부터 '절대음감'에 손재주 좋다는 말을 들어 자신 있었다. 금세 일을 익혀 19세부터 직접 악기점을 운영했고, 1983년 악기 공장을 차렸다. 평소 친분이 있던 당시 한만영 국립국악원 원장으로부터 편종·편경을 복원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편종·편경은 일제강점기 이후 소실되거나 다 망가진 상태였고, 제작법을 아는 전수자도 없었지만 악기라면 물불 안 가리던 그는 '내가 안 하면 누가 하겠나'라는 생각으로 맡았다.

자재를 구하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편경을 만들 때 필요한 옥돌을 찾기 위해 수십만 리를 헤맸다.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지만 발견할 수 없어 '중국 산둥성에 옥돌이 있다더라'는 풍문만 믿고 중국으로 떠났다. 3년 반을 밤낮 가리지 않고 험한 산골을 쏘다니다 한 광산에서 알맞은 밀도와 색깔의 옥돌을 겨우 찾았다. 그러나 복원 작업은 만만치 않았다. 옥돌을 깎아 나무틀에 매달아야 편경이 완성되는데, 옥돌 하나를 다듬기 위해 수천 번의 사포질을 했다. 1mm 단위도 어긋나지 않게, 조그마한 흠이라도 나지 않도록, 온 정신을 집중해 갈아야 했다.

김현곤씨가 복원한 편경. 김현곤씨 제공

김현곤씨가 복원한 편경. 김현곤씨 제공

이렇게 7년을 매달려 편종·편경 복원에 성공했다. 김씨는 "완성된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나온다"고 했다. 이어 "돈을 바란다면 몇 십억 원을 줘도 못할 일"이라며 "전통을 잇겠다는 사명감과 악기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간과 돈을 바쳤다"고 덧붙였다. 후계자를 자처한 아들도 아버지에게 악기 제작 일을 배우고 있다. 김씨는 "힘든 일을 이어받겠다고 결심해 대견스럽다"고 흐뭇해했다.

한편, 2003년부터 베트남어 통·번역, 심장병 어린이 무료 수술 지원 등 꾸준한 봉사로 이주민들의 한국 정착을 도운 베트남 귀화 통역 봉사자 응우옌티땀띵(45)도 이날 함께 헌액됐다. 시는 2016년부터 매년 시 발전과 시민 행복 증진에 기여한 인물을 뽑아 명예의전당에 올려왔다.

권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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