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원금 공여자에 전화해 특정 진술 종용
"먹사연 정책 좋아 돈 낸 것으로 해달라"
'수사 임박' 소식 듣고 밤새 PC 하드포맷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으로 구속된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검찰 수사 진행 과정에서 차명 휴대폰을 이용해 사건 관계자에게 특정한 진술을 종용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통신기록을 드러내지 않은 채로 뒤에서 사건 관계자와 입을 맞추려 한 것인데, 법원은 이런 행위가 증거인멸(형사소송법상 구속 사유)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보아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19일 한국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송 전 대표는 검찰이 외곽 후원단체 평화와먹고사는문제연구소(먹사연)를 통한 불법 정치자금을 수사하는 것을 파악하자, 후원금 공여자 A씨에게 차명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당시 송 전 대표는 A씨에게 "먹사연은 후원조직이 아니라 '싱크탱크'인 것으로 말해달라"며 "송영길에 대한 후원이 아니라 먹사연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해 지원한 것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검찰 조사에서 자신에게 유리할 수 있는 진술을 '모범답안' 형식으로 전한 것이다. "정치 후원금이 아니라 싱크탱크 기부금"이라는 항변은 먹사연 의혹에서 송 전 대표의 일관된 주장이기도 했다.
또한 송 전 대표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 조짐을 먼저 알고, 이에 대비해 먹사연 자료 파기를 지시한 정황도 드러났다. 강래구 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 측으로부터 '검찰이 먹사연 쪽을 보고 있다'는 내용을 접한 뒤 먹사연 회계 자료 등이 담긴 컴퓨터 하드디스크 포맷을 지시한 것이다. 강래구 전 감사위원→이성만 의원→송 전 대표→보좌관 박용수씨→먹사연으로 이어진 수사 상황 전달 및 증거인멸 지시는 하룻밤 사이 속전속결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별건 수사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힌다"고 말했던 송 전 대표가 실은 사건 관계자들과 긴밀하게 연락하며 증거인멸로 간주될 수 있는 행위를 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부장 최재훈)는 관계자 진술과 확보한 물증을 통해 확인된 이런 증거인멸 정황을 18일 송 전 대표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제시하며 구속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인적, 물적 증거에 관해 수사과정에서 확인된 피의자의 행위 및 제반 정황에 비추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검찰 주장이 합당하다고 봤다. 또 "피의자가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하고 당대표 경선과 관련한 금품수수에 일정 부분 관여한 점이 소명되는 등 사안이 중하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서울구치소에 수감 중인 송 전 대표의 증거인멸 시도를 차단하기 위해 변호인 외 가족과 지인 등 타인을 접견할 수 없도록 조치했다.
수사 8개월 만에 돈 봉투 의혹의 정점인 송 전 대표가 구속되면서, 돈 봉투를 받은 것으로 의심되는 현역 의원들에 대한 소환 조사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송 전 대표가 2021년 4월 27일과 28일 이틀에 걸쳐 국회의원 교부용 돈 봉투 20개(총 6,000만 원)를 윤관석 의원에게 제공했고, 윤 의원을 통해 의원 20명에게 전달한 것으로 본다. 검찰은 확보된 증거를 토대로 돈 봉투 수수 의원 특정을 마무리한 뒤, 조만간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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