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개혁 전문가 중간평가: ②노동개혁]
노사 법치주의 확립 부문은 양호한 평가
상생협약 통한 이중구조 해소엔 '물음표'
근로시간 개편, 정책 홍보 미흡 지적도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신년사에서 노동개혁을 천명하며 내세운 목표는 “노동개혁을 통한 경제성장 견인”이다. 일자리 창출, 기업 성장,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국가적 과제를 노동개혁으로 이뤄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윤 대통령은 노사 법치주의 확립,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노동시장 유연화(경직적 노동규범 완화)라는 구체적 개혁 목표도 언급했다.
노동개혁은 정부가 의욕을 보인 만큼 소기의 성과를 거뒀을까. 본보는 전문가 5명(명단은 표 참조)에게 중간 평가를 요청했다. 평가의 전문성과 균형감을 위해 학계와 공직을 두루 거치고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전문가들을 선정했다. 성취 수준을 가늠하기 위해 5개 척도(A~E등급, 1~5점으로 환산)의 정량 평가를 아울러 부탁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전문가들은 ‘노사 법치주의 확립’ 부문에 나름의 성과(5점 만점에 3.9점)를 냈다고 평가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은 3.3점으로 ‘방향은 좋지만 성과는 미흡하다’는 대답이 다수였다. 최하점인 2.8점을 받은 ‘경직적 노동규범 완화‘ 부문은 성과뿐 아니라 방향성을 두고도 평가가 엇갈렸다.
“노동계 불법ㆍ폭력 시위 끊어낼 필요 있다"
화물연대 파업 강경 대응, 노조 회계 투명성 강화, 노조 전임자(타임오프제) 전수조사로 대표되는 ‘노사 법치주의 확립’은 노동계의 거센 반발과 달리 다수 전문가로부터 상대적으로 후한 평가를 받았다. “법과 원칙의 토대 위에 노사가 대화하는 규율을 바로 세웠다"는 호평이 적지 않았다. 최영기 한림대 경영학부 객원교수(전 경사노위 상임위원)는 “노동계의 불법ㆍ폭력 시위는 어느 시점에 확실히 끊고 가자는 사회적 결의가 필요했던 부분”이라고 긍정했다.
다만 개혁 방식이 주로 노동계의 행동 변화를 요구했다는 점을 두고는 호응과 비판이 갈렸다. 윤 대통령의 후보 시절 '노동정책 과외교사'로 불린 정승국 고려대 노동대학원 객원교수는 “기득권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대기업ㆍ공무원ㆍ정규직 노조의 저항을 무릅쓰고 노사 관계를 건강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반면 “노조를 개혁 대상으로 몰아세우며 노동계와 정부 간 대립 구도가 형성됐다”(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며 부작용을 지적하는 의견도 나왔다.
이런 점에서 '노사 법치주의를 추진하되 변주를 가미해야 한다'는 의견은 정부가 새겨들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원덕 노사공포럼 상임대표(전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법치주의는 당연히 확립돼야 한다”면서도 “법치주의도 따뜻한 얼굴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는 정부가 노동계에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고 했다.
“이중구조 해소, 방향 맞지만 성과 의문"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 임금 및 고용 안정성에 큰 격차가 나타나는 현상을 통칭한다. 시장경제에서 노력에 따른 임금 격차는 불가피하지만, ‘어느 노동시장에 속했느냐’는 것만으로 심각한 차별이 나타나는 게 이중구조의 병폐다. 전문가들은 이중구조 개선을 정책 목표로 내세운 점을 높게 사면서도, 임금격차 해소와 노동 취약계층 보호에 실질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특히 정부가 이중구조 해소 방안으로 공을 들이고 있는 ‘원하청 상생협약 체결’은 ‘성과로 보기 어렵다’는 평가가 다수였다. 상생협약은 원청ㆍ하청업체가 ‘상생협의체’를 구성해 자발적으로 숙련인력 채용, 직원복지 증진에 나서게 하는 방식이다. 최 교수는 “안 하는 것보다 낫지만 (실질적 이중구조 해소 방안으로 보기에는) 약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상생협약에 노동계의 참여가 배제된 상황이어서 지속 가능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 주도 개혁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도 잇따랐다. 이·최 교수와 이 대표는 “경영·노동계의 희생과 양보가 필요한 이중구조 개혁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부가 이중구조 해소를 위해 이해관계 당사자들을 설득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노력을 기울였는가에 '물음표'를 찍은 것이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국가인권위원회 사회권 전문위원)는 윤 대통령의 노란봉투법(노조법 2, 3조 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문제 삼았다. 노란봉투법은 하청업체가 원청업체와 임금ㆍ노동조건을 교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주희 교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려면 하청업체가 원청업체와 교섭할 수 있도록 해 임금ㆍ노동조건을 개선할 틀을 마련해 줘야 했다”며 "정부가 노란봉투법이 과격하다고 판단했다면 다른 대안이라도 내놨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경직적 노동규범 완화? 과로사 OECD 최고 수준"
주 52시간제 근로시간 개편, 연공서열에 따른 임금체계 개편 등은 ‘경직적 노동규범 완화’ 정책의 일환이다. 정부는 이른바 ‘노동 유연화’로 불리는 이 정책들이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에도 기여할 거라는 입장이지만, 전문가 평가는 엇갈린다. 이주희 교수는 “우리나라는 과로사ㆍ사고사ㆍ자살률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라며 방향 설정 자체를 문제 삼았다. 정 교수는 근로시간 개편과 관련해 “방향 설정은 옳지만 여론 반발을 고려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근로시간 개편의 경우 기업이 원하는 정책이라는 측면이 부각되면서 근로자에게 긍정적인 효과가 제대로 홍보되지 않았다는 견해도 나왔다. 최 교수는 “근로시간을 단축하고, 단축된 근로시간을 더 유연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법”이라고 했다. 청년, 맞벌이 부부의 ‘일과 삶’ 양립을 위해 근로시간 단축과 근로시간 유연화가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취지다.
경직적 노동규범 완화는 정밀하게 추진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 교수는 “비정규직ㆍ저임금 노동자가 평생 비정규직ㆍ저임금 노동자에 머물 가능성이 가장 큰 나라가 우리나라”라며 “이러한 기괴한 노동시장을 혁파하기 위해 어떤 개혁을 추진할지가 제시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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