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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철강, 밤엔 미용 연구하는 포항제철소 '가위손' 김한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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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철강, 밤엔 미용 연구하는 포항제철소 '가위손' 김한규씨

입력
2023.12.28 04:3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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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 이미용봉사단 '누리봄' 단장
2020년 창단, 요양원·벽지 돌며 봉사
좋아하는 어르신 표정에 연습 또 연습

포스코 이미용 봉사단을 이끌고 있는 김한규(57) 포항제철소 포항연구인프라그룹 과장이 18일 경북 포항시 남구 괴동동 포스코역사박물관 앞에서 양손에 미용가위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포항=김정혜 기자

포스코 이미용 봉사단을 이끌고 있는 김한규(57) 포항제철소 포항연구인프라그룹 과장이 18일 경북 포항시 남구 괴동동 포스코역사박물관 앞에서 양손에 미용가위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포항=김정혜 기자

포스코 포항제철소 연구인프라그룹에서 현장 혁신 업무를 담당하는 김한규(57) 과장. 평일에는 제철소 연구원들의 요구사항을 수렴하는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퇴근시간이 되면 잊지 않고 검은 앞치마와 미용가위가 든 가방을 챙겨 나선다. 차로 20분 떨어진 포스코 나눔스쿨 회의실에서 곧장 마네킹 머리카락을 자르기 시작한다. 미용사 김옥이(68) 강사의 지도를 받으며 4시간을 꼬박 선 채 수업을 받는데 저녁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출근할 때 미리 챙긴 간식으로 요기를 한다.

포스코 직원들로 구성된 누리봄 이미용봉사단이 경북 포항시 남구 대잠동 포스코나눔스쿨 강의실에서 미용 수업을 받고 있다. 김한규 누리봄 이미용봉사단 단장 제공

포스코 직원들로 구성된 누리봄 이미용봉사단이 경북 포항시 남구 대잠동 포스코나눔스쿨 강의실에서 미용 수업을 받고 있다. 김한규 누리봄 이미용봉사단 단장 제공

매주 두 차례 김 과장을 비롯해 포항제철소 각 부서에 속한 동료 16명이 이곳에서 미용 수업을 받는다. 김 과장은 몸이 불편해 누워서 생활하는 요양시설 노인과 미용실 없는 벽지주민들의 머리를 무료로 매만져 주는 포스코 ‘누리봄 이미용봉사단’의 단장이다. 2020년 3월 창단 때부터 활동 중인 그는 “어르신들은 ‘머리를 잘 잘라줘 고맙다’고 하지만 늘 아쉬워 수업에 매진하게 된다”고 말했다.

포스코 직원들로 구성된 누리봄 이미용봉사단이 경북 포항의 한 요양시설에서 침대에 누워 있는 노인의 머리를 자르고 있다. 김한규 누리봄 이미용봉사단 단장 제공

포스코 직원들로 구성된 누리봄 이미용봉사단이 경북 포항의 한 요양시설에서 침대에 누워 있는 노인의 머리를 자르고 있다. 김한규 누리봄 이미용봉사단 단장 제공

김 과장이 미용봉사를 하기로 마음먹은 건 2020년 초. 우연히 사내 게시판 동아리 배너를 클릭했다가 '이미용 봉사단을 만들어 보자'는 게시물을 읽은 게 계기다. 평소 '손재주가 좋다'는 말을 들어 미용기술도 익힐 겸 시작했다. 몇 번 가위질을 연습하면 금세 커트를 하고 봉사도 나갈 줄 알았지만, 오산이었다. 4시간가량 이어지는 미용 강의 내내 서 있는 것조차 보통 일이 아니었다. 수십 번 가위질을 해도 도통 실력이 늘지 않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회사 직무와 무관한 미용 수업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동료들도 하나둘씩 포기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 대유행에 비대면 근무가 잦았고, 머리카락이 날려 강의실을 구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진 후, 오랜만에 가위질을 시작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가윗날에 손이 베이는 일은 부지기수. 그런데도 김 과장과 의기투합해 창단 때부터 참여한 9명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늘지 않는 실력에 자책하는 날도 많았지만 '어르신들이 봉사단 오는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는 쉽게 가위를 놓을 수 없었다.

김 과장은 “한번은 추석 명절 전 급하게 요청이 들어와 염색만 해드렸는데 자식과 손주들한테 깔끔한 모습을 보이게 해줘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며 “요양원에 누워 있는 어르신들은 뒷머리를 자를 때 붙잡아 주는 사람이 필요한데 커트 실력이 부족한 직원은 보조라도 하면서라도 거들었다”고 말했다.

포스코 직원들로 구성된 누리봄 이미용봉사단이 경북 포항의 한 요양원에서 미용봉사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한규 누리봄 이미용봉사단 단장 제공

포스코 직원들로 구성된 누리봄 이미용봉사단이 경북 포항의 한 요양원에서 미용봉사를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김한규 누리봄 이미용봉사단 단장 제공

미용 수업을 시작하고 60회쯤 지났을까. 김 과장과 봉사단원들은 김 강사에게 "커트 실력이 제법이다"는 말을 들었다. 김 과장은 이제는 본인 머리까지 바리캉으로 직접 다듬을 정도로 상당한 실력자가 됐다. 가족들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부산에 홀로 계신 어머니와 아내의 머리 손질은 김 과장의 몫이 됐다. 수업이 없는 날에는 인터넷 동영상을 검색하며 최신 유행 스타일 따라잡기에 전념한다.

김 과장은 "치매가 있는 어르신도 머리 자를 때만큼은 원하는 스타일을 분명하게 말씀하신다"며 "이발이 끝난 뒤 아이처럼 좋아하는 어르신의 표정을 보면 더 많이 연습해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고 했다. 그는 "17명의 적은 인원이지만 손길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언제 어디라도 달려가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포항= 김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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