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자전거래·사후 이익제공 등
9개사 운용역 30여명은 수사 대상에
주로 법인 고객이 단기자금 운용 수단으로 활용해온 채권형 랩어카운트(랩)과 특정금전신탁(신탁)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증권사들이 자금 수천억 원을 돌려막기 하는 등 위법행위를 저지른 사실이 발각됐다.
금융감독원은 올해 5월 이후 9개 증권사의 채권형 랩·신탁 업무 실태에 대해 집중 점검을 실시한 결과, 위법행위와 리스크 관리 및 내부통제상 문제점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랩과 신탁은 펀드와 달리 증권사가 고객과 1대 1 계약을 통해 자산을 운용하는 금융상품으로, 통상 법인이 대상 고객이다. 금감원 측은 "지난해 하반기 일부 증권사가 고객 투자손실을 회사 고유 자산으로 보전해줬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며 "이에 올해 랩·신탁 관련 불건전 영업관행에 대한 테마검사를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검사 결과, 일부 증권사 운용역은 불법 자전거래를 통해 고객 계좌 간 손익을 이전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예컨대 A 증권사는 지난해 7월 이후 다른 증권사와 총 6,000여 회에 걸쳐 연계·교체거래를 하면서 특정 고객 계좌의 기업어음(CP)을 다른 고객 계좌로 고가 매도함으로써 5,000억 원 규모 손실을 전가했다. 결국 한 고객은 환매 시 원금 800억 원의 목표 수익률 3.9%를 만족했지만, 또 다른 고객은 평가손실을 떠안아야 했다. 이는 업무상 배임이 의심되는 행위로, 금감원은 이런 거래를 진행한 9개 증권사 30명 내외의 운용역을 수사당국에 넘길 예정이다.
특정 투자자에게 사후 이익을 제공한 사례도 적발됐다. 일부 증권사는 시장 상황 변동으로 만기 시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기 어려워지자 고객 CP를 고가에 매수해주는 방식으로 이익을 제공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랩·신탁을 확정금리형 상품처럼 판매·운용하고, 환매 시 원금 및 수익률을 보장하는 잘못된 관행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밖에 신용등급을 위반해 상품을 운용한다거나, 동일 투자자 계좌 간 자전거래를 하는 등 추가 위법행위도 다수 발견됐다.
금감원은 운용상 위법행위로 손실이 발생한 랩·신탁 계좌에 대해서는 환매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불법 정도에 따라 회사나 대표이사 등에 행정 처분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금감원 측은 "랩·신탁은 실적 배당 상품이므로 증권사에 과도한 목표 수익률 제시를 요구하거나 이를 신뢰해서는 안 된다"며 "특히 환매 시 투자손실 보전 또는 목표 수익률 보장을 요구하는 행위는 투자자 자기책임 원칙에 반하기 때문에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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