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동물 수십 마리를 집에서 방치한 혐의로 수사를 받던 인플루언서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장애가 있는 동물들만 골라서 입양을 시도했고 후원금을 모집했는데,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과 동물단체를 속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 애리조나 주 지역 방송 ‘폭스10피닉스’에 따르면 애리조나 주 챈들러 시 경찰은 지난 9월부터 동물학대 혐의로 수사 중이던 에이프릴 맥라흘린(April McLaughlin) 씨의 추가 혐의를 포착했습니다. 맥라흘린 씨는 지난 9월 자신의 자택에서 55마리 개를 방치하고, 죽은 개 5마리 사체를 냉동고에 넣어둔 사실이 발각돼 현장에서 체포됐습니다. 당시 경찰은 그의 집 근처에서 ‘냄새가 심하게 난다’는 내용의 신고를 접수했습니다.
그러나 체포 48시간 만에 그는 석방됐습니다. 지역 검찰이 증거가 더 필요하다며 사건을 경찰에 돌려보낸 뒤, 긴급체포 기한이 경과한 탓이었습니다. 경찰은 이후 2개월간 수사를 더 벌인 끝에 그의 사기 등 추가 혐의를 포착해 다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검찰은 경찰이 제출한 추가 혐의를 검토 중입니다.
그는 2018년 ‘클라이드’(Clyde)라는 허스키 품종 개를 입양해 화제를 불렀습니다. 클라이드는 다리가 기형으로 자란 장애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는 클라이드의 상태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지속적으로 올렸고, 이 사실이 주목을 받으면서 각종 언론에 출연했습니다. 이후 그를 돕겠다는 시민들의 후원금도 들어왔습니다.
점점 유명세가 커지자 맥라흘린 씨는 아예 동물단체를 만들었습니다. 그는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반려견 구조대’(Special Needs Dog Rescue)라는 이름의 비영리단체를 내세우며 아예 장애견만 집중적으로 돌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수의사가 자신을 도와주고 있는 것처럼 동물단체들을 속여 단체가 보호하던 동물들을 데려오기까지 했습니다.
문제는 맥라흘린 씨 혼자 집중적으로 동물을 데려오면서 불거졌습니다. 계속해서 동물을 데려오면서 제대로 동물을 돌보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겁니다. 실제로 지난 2019년에는 미국 내 청원 사이트 체인지(Change.org)에서 맥라흘린 씨와 클라이드의 사연을 내보낸 동물전문매체 ‘도도’를 향해 “클라이드의 영상을 내려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청원인은 “맥라흘린 씨는 자신이 데려간 개들을 적절하게 돌볼 금전적인 자금이나 지원이 없는 상태”라며 “이 사람에게 개를 보내도록 부추기는 영상이 계속 유포되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논란이 이어지자 맥라흘린 씨는 다른 방법을 찾았습니다. 바로 가명을 여러 개 내세워 동물을 데려온 겁니다. 실제로 경찰과 챈들러 시는 개인 구조자나 동물단체에 접근한 ‘시드니 테일러 맥킨리’, ‘에이프릴 애디슨’ 등의 이름이 모두 맥라흘린 씨가 만든 가명인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이 같은 사실은 맥라흘린 씨가 지난 9월 풀려난 뒤, 개인 구조자들과 동물단체가 집요하게 사실관계를 파악하면서 확인됐습니다.
사기 피해자 중 한 사람인 레베카 아리즈멘디(Rebecca Arizmendi) 씨는 ‘버터’(Butter)와 ‘체코’(Checo)를 구조한 뒤 맥라흘린 씨에게 보냈습니다. 당시 맥라흘린 씨는 개들이 자신에게 올 때까지는 연락에 성실하게 답하다가, 개들을 받고 나서는 돌변했습니다. 초기에는 버터와 체코의 사진을 보내주더니 곧 연락이 끊겼습니다. 아리즈멘디 씨가 “더 많은 사진을 보내달라”고 말하자 맥라흘린 씨는 자신이 너무 바쁘다며 연락을 회피했습니다. 이후 몇 개월 뒤, 개들의 안부를 묻는 아리즈멘디 씨의 질문에 맥라흘린 씨는 “버터와 체코는 임시보호 가정에서 지내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그 대답과는 달리 개들은 맥라흘린 씨의 집에서 잔뜩 굶주린 채 발견됐습니다. 특히 버터는 몸무게가 약 6.8㎏이나 줄어들었을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었다고 합니다. 아리즈멘디 씨는 “그가 다시 체포되어서 기쁘다”면서 “버터와 체코가 살아 있다는 건 행운”이라고 밝혔습니다. 아리즈멘디 씨 가족은 현재 개들의 건강 회복을 위해 간호에 전념하고 있다고 합니다.
다행히 목숨을 건진 개들도 있었지만, 구조 이후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해 안락사된 개들도 있습니다. 시라 아스트로프(Shira Astrof) 씨가 구조해 돌보던 장애견 ‘루디’(Rudy)는 몸 상태가 악화돼 결국 안락사를 당해야 했습니다. 당시 맥라흘린 씨는 ‘새미’(Sammy)라는 가명으로 아스트로프 씨에게 접근했습니다. 그는 “발이 기형인 자신의 반려견과 짝이 될 만한 친구를 찾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베일리’라는 개를 처음 보낸 아스트로프 씨는 1년간 연락을 잘 주고받으며 맥라흘린 씨를 믿었습니다.
이후 루디를 보호할 만한 곳을 물색하던 아스트로프 씨는 맥라흘린 씨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맥라흘린 씨는 이 요청에 흔쾌히 답하며 아스트로프 씨가 점검 차원에서 보낸 수의사들의 방문도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수의사들은 맥라흘린 씨가 보여준 집을 보고 “관리가 잘 되고 있다”며 칭찬했는데, 알고 보니 이 집은 맥라흘린 씨가 단기 임대한 집이었습니다.
이처럼 동물 학대와 사기 행위가 베일을 벗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맥라흘린 씨가 받을 처벌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직 가늠할 수 없습니다. 챈들러 시에는 애니멀 호더를 처벌하는 조항이 명시돼 있지 않아서입니다. 마크 스튜어트 챈들러 시의원은 “이와 같은 사례는 우리 시에서 정말 드물었던 일”이라며 제도로 막지 못한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현재 이번 사건을 계기로 챈들러 시는 방치와 애니멀 호더 행위를 동물학대로 정의하는 방향으로 조례를 개정할 예정입니다. 오는 이 조례는 12월 의결을 앞두고 있습니다. 조례가 의결되면 내년부터 시행될 예정입니다. 스튜어트 시의원은 “이 조례는 향후 경찰관과 시청 직원들이 비슷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대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어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오는 30일 재판 기일을 앞둔 맥라흘린 씨는 여전히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는 법원에 “내 재산을 돌려달라”며 구조된 55마리 중 13마리를 반환하라는 탄원을 제기했습니다. 현재 이 13마리는 애리조나 휴메인 소사이어티가 보호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개 사체를 냉동고에 보관한 방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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