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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부선 감독이 '왕'… "폭행·욕설 사건 터져도 일부 학부모가 먼저 회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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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운동부선 감독이 '왕'… "폭행·욕설 사건 터져도 일부 학부모가 먼저 회유"

입력
2023.12.15 13:0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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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진학·대입 때 감독 영향력 절대적
폐쇄적 운동부 문화에 폭행·폭언 '쉬쉬'
"지도자 폭행 처벌 가이드라인 둬야"

소속팀 지도자들과 선수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최숙현 선수가 사망 직전 남긴 문자 메시지. 한국일보 자료사진

소속팀 지도자들과 선수들에게 가혹행위를 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최숙현 선수가 사망 직전 남긴 문자 메시지. 한국일보 자료사진

감독 등 팀 구성원들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하다 세상을 떠난 최숙현 선수(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팀 소속) 사건이 발생한 지 3년이 지났다. 이후 폭력 지도자의 자격 정지 기간을 늘리는 내용 등을 담은 '최숙현법'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현장에선 "학교 운동부의 감독과 선배들이 어린 학생 선수를 폭행하거나 모욕을 주는 일이 여전히 빈번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학교 운동부 특유의 폐쇄적 문화로 인해 학대와 폭력이 외부로 드러나기 어렵고, 문제가 생겨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기 일쑤인 탓이다.

"감독이 왕…억울해도 말 못 해"

최근 5년 간 폭언, 폭행, 금품수수 등 비위 행위를 저지른 운동부 지도자에 대한 징계 건수는 총 357건이다. 이용 국민의힘 의원실. 그래픽=강준구 기자

최근 5년 간 폭언, 폭행, 금품수수 등 비위 행위를 저지른 운동부 지도자에 대한 징계 건수는 총 357건이다. 이용 국민의힘 의원실. 그래픽=강준구 기자

이용 국민의힘 의원실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월부터 지난 1일까지 전국 초중고교 학교 운동부에서 발생한 감독·코치 비위행위(처벌받은 건수)는 모두 357건이다. 연도별로 보면 최 선수 사건 이전인 2019년 41건에서 지난해에는 69건으로 늘었다. 학생과 학부모가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신고한다는 의미일 수도 있지만 현장의 지도자 폭력 등이 여전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위 종류별로 보면 △폭행 및 폭언 169건 △금품수수 93건 △횡령·배임 38건 △성범죄 14건 △승부조작 3건 등이다. 현장 전문가들은 "피해자가 신고하지 않아 숨어 있는 사건까지 따지면 현장 상황은 훨씬 심각하다"고 말한다.

학교 운동부 지도자의 부조리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입시 때 감독의 권한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초등학교 야구부원이 중학교에 진학할 때가 되면 초등학교 감독과 중학교 감독이 만나 입학을 결정한다. 고교 운동부에선 감독의 힘이 더 세진다. 주요 대학 체육특기생 전형을 보면, 전국대회 8강 이상 진출 팀에서 전체 경기시간의 50~60% 이상을 출전해야 지원 자격이 생긴다. 개인 역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경기에 뛰지 못하면 대학 지원조차 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감독의 악행이 계속돼도 참고 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프로 진출을 노리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감독의 눈에 들어 일단 출전을 해야 프로팀의 눈길을 끌 수 있다. 감독의 추천서도 필요하다. 얽히고설킨 체육계 안에서 감독은 말 한마디로 선수의 진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운동부 지도자들은 학생들의 입시와 진학, 프로 진출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운동부의 폐쇄적 문화 속에서 지도자들의 폭언, 폭행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운동부 지도자들은 학생들의 입시와 진학, 프로 진출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운동부의 폐쇄적 문화 속에서 지도자들의 폭언, 폭행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전수민 변호사(법무법인 현재)는 "피해 학생이 신고해 감독이 바뀌면 다른 학부모들이 오히려 피해자를 질책하는 일이 흔하다"며 "당장 자기 자식의 진학에 악영향을 줄지 모르니 (다른 학부모가) 문제를 덮으려고 회유하는 사례도 많다"고 말했다.

지도자들의 가혹행위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흔적이 남지 않는 언어폭력과 정서학대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다. 학교 폭력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이정엽 행정사는 "운동부 내에서 은근히 따돌리거나 정서적 가스라이팅(타인의 심리를 조작해 그 사람을 지배하는 행위)이 많아졌다"며 "슬쩍 밀치는 방식의 폭행이나 몸으로 소화하기 힘든 가혹한 훈련을 반복하는 학대 방식이 신고되고 있다"고 전했다.

가해자 분리조치 안 돼도 '강제 조치' 불가능

징계 처분을 받은 운동부 지도자들의 주요 비위행위. 그래픽=강준구 기자

징계 처분을 받은 운동부 지도자들의 주요 비위행위. 그래픽=강준구 기자

용기를 내 피해사실을 알려도 분리조치가 제때 이뤄지지 않는 등 학교의 대응이 미온적이면 2차 가해를 당할 수도 있다. 학생끼리 때리는 학교폭력의 경우 신고가 접수되면 피해자는 72시간 동안 가해자와 즉시 분리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지도자가 폭행하는 아동학대는 경찰서와 지자체에 신고해도 학교장이 자체적으로 분리조치 수준을 결정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운동부 지도자의 비위행위 발생 시 대처 가이드라인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이 행정사는 "운동부 지도자가 학생 선수를 폭행, 폭언하는 일이 발생하면 강제적으로 즉각 분리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며 "성범죄나 전치 4주 이상 상해 등 심각한 학대 행위를 했을 때는 즉각 파면하는 등 인사상 처벌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행정사는 "특히 교육청의 감독이 잘 닿지 않는 사립학교 운동부에서 부조리가 생기거나 제대로 대처를 못하면 벌점을 부과하고 기준 이상으로 쌓이면 페널티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제보받습니다> 학교 체육이나 성인 엘리트 체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부조리(운동부 내 폭력•폭언 등 가혹행위, 지도자의 뒷돈 요구, 대학·성인팀 진학·진출 시 부당한 요구 및 압력 행사, 학업을 가로막는 관행이나 분위기, 스포츠 예산의 방만한 집행, 체육시설의 미개방 등)를 찾아 집중 보도할 예정입니다. 직접 경험했거나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목격했다면 제보(dynamic@hankookilbo.com) 부탁드립니다. 제보한 내용은 철저히 익명과 비밀에 부쳐집니다. 끝까지 취재해 보도하겠습니다.

송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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