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서울 성산동 우리동생동물병원을 찾은 반려묘 ‘제나’(12∙러시안 블루)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건강해 보였습니다. 몸무게도 5㎏대로 양호한 편이었습니다. 이날 동물병원을 찾은 이유도 올해 초 발생한 항문낭염이 잘 치료됐는지 확인하는 동시에 가벼운 설사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날 진료에서는 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제나가 이렇게 건강해지기까지는 나름의 우여곡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제나의 반려인 소연수 씨는 제나와의 4년간 반려생활을 돌아보며 “제나가 참 많은 고생을 했다”고 돌아봤습니다. 당시 제나가 앓았던 질병은 외이염. 4년 전부터 제나를 진단했던 우리동생 김희진 원장은 “제나는 처음 봤을 때 8㎏이 넘는 비만 상태였다”며 “살이 찌면 귀에도 통풍이 잘되지 않아 쉽게 기름지고 염증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연수 씨 역시 “병원으로부터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결단이란, 다이어트를 성공시키거나, 그렇지 않으면 수술을 해서 외이염이 자주 발생하지 않도록 귀를 교정해야 한다는 뜻이었죠. 고민 끝에 연수 씨는 “조금 더 다이어트를 해보고 실패하면 수술을 받자”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제나를 괴롭히던 비만과 외이염은,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질병을 불러오고 말았습니다.
가려운 귀 때문에 ‘각막궤양’으로 고생하게 된 사연
외이염은 심한 가려움증을 동반합니다. 그러다 보니 고양이는 귀를 긁게 되고, 그러다 귀에서 상처가 나면 더욱 염증이 깊어지는 악순환을 부르죠.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어느 날, 연수 씨는 제나의 왼쪽 눈이 크게 부어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제나가 눈도 뜨지 못할 만큼 붓기는 심각했습니다.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직감한 연수 씨는 제나를 데리고 급히 동물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김 원장이 제나를 살펴본 뒤 내린 진단은 ‘각막궤양’. 원인은 제나의 외이염이었습니다. 제나가 귀를 긁다가 발톱으로 각막을 건드려 상처가 났고, 이게 궤양으로 이어진 겁니다. 각막궤양의 원인 중 상당수는 외상입니다. 다른 고양이의 발톱에 의해 상처가 날 수도 있고, 화학물질이나 먼지 등 이물질 자극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죠.
사고로 생길 가능성이 높은 만큼, 각막궤양은 고양이들에게는 그다지 많이 걸리는 질병은 아니라고 합니다. 이는 제나의 다소 둔한 성격과도 연관이 있다고 하네요. 김 원장은 “보통은 반사적으로 눈을 깜빡여서 손상을 피하곤 하는데 제나는 다소 둔한 만큼 눈을 잘 깜빡이지 않아 사고에 쉽게 노출됐을 수 있다”며 제나의 성향이 각막궤양 발생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나가 눈까지 다치게 되자 연수 씨는 크게 상심했습니다. 그는 “모두 내 탓인 것만 같았다”고 당시를 돌아봤습니다. 귀를 긁는 제나를 막지 못하고, 좀 더 자주 귀 청소를 해줬어야 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죠. 특히 각막궤양 치료 과정에서 평소보다 병원을 자주 드나들며 제나가 스트레스를 받는 듯한 모습도 보여서 연수 씨의 마음고생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초보집사를 일깨운 불의의 사고.. 다이어트까지 성공해
제나는 9년 전, 연수 씨 가족과 함께 살게 됐습니다. 당시 유기묘였던 제나를 연수 씨 가족이 입양해왔죠. 당시 연수 씨는 대학교를 다니며 집 밖에서 자취 생활을 해 제나와는 가끔 만나는 사이였습니다. 연수 씨가 본격적으로 제나를 책임지게 된 이유는 집에서 제나와 함께 지내던 강아지의 상태가 악화되면서 제나를 돌봐줄 손이 모자라게 된 까닭이었습니다.
제나의 주 양육자가 아니다 보니 초보 집사였던 연수 씨는 처음에는 모든 게 어색했었다고 합니다. 외이염이 있다는 사실을 집에서 전달받았지만, 전적으로 제나를 돌본 적은 없었기에 서툴 수밖에 없었죠.
초보 집사와 함께 하느라 제나가 참 많은 고생을 했었던 것 같아요. 처음 각막궤양 진단을 받았을 때는 미안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크게 당황했었고요.
그러나 언제까지 자책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각막궤양은 병원에서 치료받는 것만큼이나 집에서 돌봐주는 역할이 중요합니다. 매일 안약을 넣어줘야 하는 문제도 있지만, 더 큰 문제는 회복 과정에서 눈을 비비는 등의 행동을 막아줘야 하니까요. 김 원장은 “각막은 회복이 매우 더딘 기관이라 문제기도 하지만, 회복하는 과정에서 눈에 가려움증을 느끼는 게 더 큰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상처를 입은 각막에 세균이 감염될 경우, ‘멜팅 얼서’(Melting Ulcer∙녹는 궤양)가 생겨 상태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눈을 비비지 못하도록 넥카라를 씌우고 잘 관리해 줘야 합니다.
지침을 전달받은 연수 씨는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 상태였던 연수 씨는 수업 시간을 제외하고는 항상 집에 들어와 제나의 상태를 확인했습니다. 넥카라를 오래 씌우면 제나가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염려돼서였습니다. 최대한 제나와 함께 있는 시간을 늘려서 넥카라 없이도 제나에게 신경을 쏟을 시간을 늘리겠다는 뜻이었죠.
그렇게 6개월간의 치료 끝에 제나는 각막궤양에서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연수 씨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직 남았습니다. 각막궤양을 부른 외이염, 그리고 외이염의 근본적인 원인인 비만이었죠. 그는 지난 6월 소개된 고양이 ‘알프’의 사례를 언급하며 “더 노력해 성공한 분들이 있어서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제나의 체중감량 역시 모범적이라고 할 만합니다. 홀로 자취생활을 하며 캣워크 같은 ‘수제 아이템’을 만들지 못하는 형편에서도 성공했기에 더 그렇습니다.
연수 씨의 방식도 근본적으로는 알프 보호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바로 ‘행동 풍부화’입니다. 캣타워 등 고양이가 갈 만한 곳마다 사료나 간식을 놓아둬서 자연스럽게 집 곳곳을 오갈 수 있도록 활동량을 늘려준 거죠. 그렇게 기초 체력을 쌓은 뒤에는 제나와 놀아주는 시간을 늘리면서 순차적으로 살을 빼나갔죠. 그렇게 3년 만에 체중이 3㎏ 줄어들었고, 지금까지 유지됐다고 합니다. 연수 씨는 “체중이 줄어든 뒤로는 자연스럽게 귀의 염증도 줄어들었다”며 “예전에는 한번 귀 청소를 하면 귀지를 비롯해 갈색 분비물이 한가득 나왔는데, 지금은 그보다 훨씬 나아진 상태”라며 웃었습니다.
제나의 건강을 되찾는 과정에서 연수 씨는 본인도 집사로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어느덧 ‘반려고수’의 경지에 가까이 다가선 연수 씨에게 제나와의 반려생활에서 원하는 게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제나가 우리 가족에게 오기 전에 어떻게 지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먹을 걸 많이 못 먹어본 것 같아요. 사료 말고는 거의 먹는 게 없었어요. 심지어 고양이 간식조차도 생소해해서 먹는 걸 망설일 정도였으니까요. 이제 체중 조절을 하는 법도 알았으니까, 좀 더 맛있는 걸 건강하게 먹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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