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팟캐스트 '열여덟 어른이 살아간다' 신선씨]
9세 때 보육원에 들어가 24세 자립 성공
"은행 가는 법도, 공과금 내는 법도 몰라"
"보육원 출신은 '조폭' 사회 편견에 아파"
"자립이 고립되지 않도록 멘토 가장 필요"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이 끝나고 성적이 발표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 어딘가에 그때의 나처럼 또 다른 시작을 분주히 준비하고 있을 열여덟 살들이 있을 것이다. 그 아이들이 무사히 새로운 출발선에 안착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팟캐스트 '열여덟 어른이 살아간다' 51화 '열아홉 겨울 스무살 봄' 중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성적을 발표하는 12월이면 수험생보다 더 마음을 졸이는 이들이 있다. 예비 자립준비청년(보호종료아동)들이다. 매년 약 2,000명의 청년(만 18세)이 아동양육시설(보육원)을 떠나야 하는 기로에 선다. 대학에 입학하면 보호기간을 만 24세까지 연장할 수 있지만, 취업해 소득이 생기면 보육원에서 나와 자립해야 한다. 자립을 앞둔 청년에게 자립에 성공한 청년 신선(30)씨가 7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따뜻한 조언을 건넸다. 신씨는 아홉 살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보육원에 입소해 스물네 살이 된 2017년 자립했다. 대학에서 국어교육학을 전공하고 아름다운재단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인터넷 방송인 팟캐스트 '열여덟 어른이 살아간다'를 통해 자립준비청년을 위한 정보 등을 공유하고 있다. 방송은 지난달 15일 100회를 맞았다.
-만 18세 보호 종료가 끝났을 당시는 어땠나.
"2011년 11월이었는데 수능을 보고 고민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보육원에서 경제적 지원을 받았지만 대학에 진학하면 숙소 외에 경제적 지원을 받기가 힘들다. 주변에 친구들은 놀러 갈 계획을 세울 때 대학 입학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아야 했다. 당시 추운 겨울에 주유소에서 입학금을 벌 수 있을까 마음 졸였던 기억이 난다. 입학 전까지 매일 10시간씩 일해 겨우 입학금 200만 원을 입금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보육원에서 나왔을 때 어땠나.
"대학에 진학하면서 보호종료기간을 연장받아 2016년까지 보육원에 있었다. 2017년 1월 원룸을 얻어 자립했다. 처음으로 혼자만의 공간이 생겨 굉장히 신이 났다. 그런데 짐을 정리하고 누우니 방이 너무 조용했다. 보육원에서는 항상 아이들과 같이 있어 심심할 틈이 없었는데 외로움이 밀려왔다. 이제 정말 기댈 곳이 없구나, 나 혼자구나라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 같다."
-자립 후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였나.
"그해 겨울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독한 독감을 앓았다. 끙끙 앓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병원에 간다면 보호자라고 적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만약 내가 여기에서 죽게 된다면 누가 날 발견할까. 장례식에 찾아올 사람이 누가 있을까. 나는 혼자니까. 내 몸을 지킬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내내 앓다 보육원에 전화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전화할 수가 없었다. 보육원 식구들에게 잘 사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자립 후 어떤 점이 어려웠나.
"보육원에서 한 달에 몇 번씩이나 자립 교육을 받았지만, 막상 자립하니 모르는 것 투성이였다. 전기와 수도 요금 고지서가 왔는데 어떻게 내는지도 몰랐다. 내는 법을 몰라 가스 요금이 3개월째 체납됐다는 통지를 받기도 했다. 보육원에서 한 달에 3만 원씩 용돈을 받아 썼기 때문에 공과금 내는 법이나 은행 가는 법이나, 인터넷 뱅킹을 하는 법도 전혀 몰랐다. 다른 친구들은 부모가 어렸을 때부터 통장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고지서로 요금을 내는 것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아는 거라고 했을 때 서러움이 들었다. 결혼식과 장례식 예절 같은 규칙도 몰라서 헤맸다. 그런 사소한 일들이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했나.
"세상에 이런 일을 고민하는 사람이 나뿐일까 봐 인터넷에 검색하기도 겁이 났다. 앞으로의 삶에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을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도 컸다. 보육원을 떠나올 때 몰랐던 자립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졌다. 인터넷에 찾아보고, 책도 보고, 지인들에게 물어보고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 그럴 때마다 나에게 알려줄 사람도, 모르는 걸 편하게 물어볼 사람 한 명 없었던 게 무척 서러웠다. '믿을 수 있는 어른' 한 명이 절실했다."
-사회에서 겪었을 힘든 점도 많았을 것 같다.
"대학 졸업 후 주점에서 일한 적이 있다. 일하다 손가락 살갗이 다 벗겨져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그때 주방에서 '감바스'라는 태국 고추가 들어가는 요리를 많이 만들었는데, 매운 고추를 만져서 그런 거였다. 그런데 사장이 '네가 보육원 출신이어서 끈기가 없다'고 했다. 나의 과거가 그저 비난의 이유가 된다는 게 억울했다. 보육원 출신에 대한 사회의 편견에 맞서야 하는 게 힘들었다. 한 방송사 관계자가 인터뷰 후에 나에게 "신선씨는 되게 잘 자랐다. 보육원 출신들은 보통 '조폭'으로 빠지던데"라는 말을 한 적도 있다. 그러면서 어렸을 때 보육원 애들에게 맞은 거라고 흉터를 보여줬다. 그런 사회적 편견들이 상처가 되고, 굉장히 아팠다."
-지난해 자립준비청년들이 잇달아 목숨을 끊으면서 문제가 됐다. 어떤 사회적 지원이 필요한가.
"지난해 광주에서 숨진 청년이 정부 지원 통장(디딤씨앗통장)에 1,000만 원이 남아 있었는데, 그 돈을 고스란히 두고 생활고를 겪은 것으로 알려져 안타까움을 샀다. 제도에 대해 제대로 알려주는 이가 없어서 정부 지원금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거다. 자립수당이 월 40만 원으로 오르고, 자립정착금 지급액도 1,000만 원으로 인상됐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신청방법이나 지원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방송 등에서도 모두 '물어볼 곳이 없다'고 한다.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기관 직원 1명이 자립준비청년 70명을 맡고 있다. 영국은 직원 1명당 10명을 지원한다. 특히 자립 후 5년이 지나면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끊기면서 고립된다. 자립이 고립이 되지 않도록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멘토 같은 이들이 가장 필요하다."
-자립한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방송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후기는 '방송을 듣고 보니 살아 볼 만하겠다. 용기를 가져도 되겠다'였다. 사실 나도 '나는 혼자다' '나는 정말 잘 살아야 한다'고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자립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혼자서 해결하려 하지 말고 주변에 말하고, 도움이 필요하면 요청하라고 강조하고 싶다.
자립은 정보전이다. 장학금 지원이나 기초생활수급자 지원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많다. 최대한 활용해 자립에 성공해야 한다. 자립을 준비하면서 다양한 경험도 해야 한다. 내 경험에 비춰보면 보육시설에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기가 어렵다. 많은 아이들 중 한 명이니까. 자립을 준비할 때는 자신이 어떨 때 행복한지, 자기가 어떤 성향인지를 스스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립 이전엔 주어진 삶이었다면, 자립 후엔 비로소 자신의 삶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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