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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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헤이즐넛 커피로 대표되는 플레이버 커피(원두에 향을 입힌)가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원두를 살 때도 ‘향 커피 드릴까요, 맛 커피 드릴까요?’라고 물을 정도였으니, 헤이즐넛 향이 본래 커피 향이라고 여기던 사람도 꽤 많았다. 우리 엄마가 그랬다. 그 시절 식당, 미용실, 사무실 등에서 ‘향을 피우려고’ 커피메이커에 일부러 커피를 내려두는 것은 흔한 풍경이었다. 심지어 자동차나 집 방향제로도 쓰이던 그 향을, 지금 20대 친구들은 알기나 할까.
그 많던 헤이즐넛 커피는 다 어디로 갔을까. 아마도 품질 낮은 원두에 인공 향을 입힌 것이라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이 퍼지며 수요가 급감한 듯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향을 따로 입힐 필요가 없을 만큼 커피의 맛과 향 자체가 좋아졌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즐겨 마시는 ‘스페셜티 커피’는 지역과 농장에 따른 특유의 맛과 향을 골라 먹을 만큼 품질이 뛰어나다. 그렇게 커피 고유의 향에 매료되어 20여 년이 흐른 지금, 다시 또 다른 ‘향 커피’의 시대가 왔다. 커피 열매를 수확해 정제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처리했느냐에 따라 ‘커피답게도, 커피답지 않게도’ 향미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조금 어려운 이야기를 하자면, 정제발효 공정에서 온도, 시간, 환경, 효모 등을 인위적으로 조정해 특정 미생물을 활성화함으로써 커피 향미를 변화시키는 ‘커피 과학’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런 식으로 커피가 지닌 본래의 퍼텐셜을 최대한 끌어올리거나 전혀 다른 향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최근에는 발효과정에 시나몬이나 과일 껍질 등을 넣어서 가향(인퓨전) 커피를 만드는 일도 많아졌다. 이쯤 되면 어디까지가 ‘커피다운’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커피 애호가들은 과일 향(수박, 복숭아, 딸기 등)이 강한 커피를 이미 맛보았을 터이다. 아직 생소한 이야기처럼 들린다면, 동네 로스터리 카페에 한번 들러보시라. 독특한 향을 지닌 커피 메뉴가 한두 개는 꼭 있을 것이다. 메뉴에 과일 이름이 들어간 긴 설명이 붙어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생산 공정에 손이 많이 들어갔으니 당연히 가격도 비싸다.
신기하게도 이런 커피가 유독 인기를 끄는 나라가 한국이다. 과거 헤이즐넛 향 커피 역시 우리나라에서 특별히 사랑받았다. 하기야 우리는 맥주도 라거보다 향이 강한 에일을 선호한다고 하니, 한국인은 맛보다 향을 우선순위에 두는 게 확실한 듯하다. 어쩌면 이것도 ‘코르가즘’의 일종일까? 지치고 힘들 때 좋은 향을 맡으면 기운을 되찾고, 활력이 생긴다는 건 과학으로도 속속 증명되는 사실이다. 어쩌면 우리는 커피 한 잔에 담긴 위로와 더불어 향으로 얻는 치유를 일찍부터 알아차린 것은 아닐까. 혹은 향으로 치유받고 싶은 사람이 유독 많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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