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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백악관 한복판에 침투한 쿠바 스파이

입력
2023.12.07 17: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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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로차 전 주볼리비아 미국대사는 자신이 쿠바 비밀요원으로 활동한 일을 ‘그랜드슬램’이라고 자랑하기도 했다고 한다.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일하고 대사까지 지낸 미 전직 외교관이 40년간 쿠바의 비밀요원이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지난 4일(현지시간) 빅터 마누엘 로차(73) 전 주볼리비아 미국대사가 간첩혐의로 기소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로차는 2002년 퇴직 후 2012년까지 쿠바를 관할하는 미군 남부사령부 자문역도 맡았다.

□ 꼬리가 잡힌 건 미 연방수사국(FBI)이 첩보를 입수한 뒤 스페인어 사용 비밀수사관을 쿠바 총첩보국 마이애미 주재요원으로 위장시켜 접근하면서다. 메신저 ‘왓츠업’으로 접선해 마이애미의 한 교회 앞에서 만났다. 우회로를 이용하고 중간에 몇 분간 멈춰 미행 여부를 살피는 건 기본. 비밀수사관이 “아바나”라고 쿠바 수도를 언급하자 로차는 “우리는 ‘그 섬’이라 부른다”며 오히려 상대를 조심시켰다. 로차의 ‘레전드’(주변을 속이기 위해 설정된 인격)는 평범한 우익인사였다.

□ 영화 007, 미션임파서블, 마타하리에서 등장하는 스파이들은 준수한 외모에 컴퓨터 같은 두뇌와 상황판단 능력, 숨 막히는 액션까지 존재 자체가 매력적이다. 현실에선 사후까지 실체가 드러나지 않아야 성공이다. 미 역사상 최악의 이중간첩 중 한 명인 로버트 핸슨 전 FBI 요원(79세)은 올해 6월 감옥에서 숨졌다. 1979년 옛 소련군정보국(GRU)에 돈을 받고 정보를 넘긴 그는 이후엔 미국에 포섭된 옛 소련 정보원들이 이중 스파이인지 확인하는 일까지 했다. 그가 미 당국에 넘긴 명단의 인물은 모두 처형됐다. 그러면서 22년간 핵전쟁 대응계획 등 미 기밀정보 수천 건을 러시아에 넘겼다. 본인도 정체성이 헷갈리지 않았을지 의문이다.

□ 북한 김정남도 ‘미 중앙정보국(CIA) 스파이’ 의혹이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피살된 그의 백팩에서 미화 12만 달러가 발견됐는데, 정보를 넘기고 받은 돈일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권력자의 정적 제거수단으로 이처럼 유용한 것도 없다. 장성택은 ‘미제 스파이’로 처형됐고, 박헌영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과 대선 때 경쟁해 216만 표를 받은 조봉암도 북한 간첩혐의였다. 1959년 사형이 집행됐는데 2011년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가 나왔다.

박석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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