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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보다 어려운 소아과 '오픈런'"... 손주 키우는 할머니 속은 더 타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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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넬보다 어려운 소아과 '오픈런'"... 손주 키우는 할머니 속은 더 타들어간다

입력
2023.12.08 00:10
수정
2023.12.08 10:59
2면
0 0

대기만 7시간, "노인들 하염없이 기다려"
예약 앱 유료화까지... '디지털 소외' 가중
의료접근은 기본권, 정부가 대책 내놔야

4일 서울의 한 이비인후과 의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최현빈 기자

4일 서울의 한 이비인후과 의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최현빈 기자

진료대기 94명.

지난달 20일 오전 9시 10분 감기 기운이 있는 세 살배기 손자를 데리고 집 근처 소아과를 찾은 김모(61)씨는 대기인원 현황판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병원 로비가 한산해 조금만 기다리면 될 줄 알았는데, 간호사는 "오늘 진료가 어려울 수도 있다"는 황당한 답변을 했다. 김씨는 급히 택시를 타고 인근 병원으로 갔지만 사정은 비슷했다. 자신보다 늦게 도착한 30대 환자가 미리 스마트폰으로 예약했다며 20분 만에 진료를 보자 더 허탈했다.

김씨는 오후 4시 30분이 넘어서야 의사와 마주할 수 있었다. 7시간 넘게 할머니와 손자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김씨는 7일 "이후로 병원 갈 일 있으면 딸에게 부탁해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예약한 뒤 방문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요즘 소아과 진료 보기는 명품 매장 '오픈런' 저리 가라다. 그런데 사각지대가 된 소아진료 분야에서 더 소외된 이들이 있다. 손주 양육을 도맡은 조부모 등 노약자들이다. 긴 대기 시간을 줄이려 예약진료 앱이 확산됐으나, 디지털 소외계층의 경우 의료접근권을 더욱 침해받고 있는 셈이다.

병원에도, 약국에도 어르신 '오픈런'

취재진이 최근 찾은 서울 시내 소아과, 내과 등 7곳 전부 대기인원이 50명 이상일 정도로 북새통이었다. 절반 이상은 예약서비스를 이용했다. 누적 가입자 1,000만 명을 기록한 예약진료 앱 '똑닥'은 9월부터 유료화(월 1,000원)했는데도 인기가 고공행진 중이다. 대학생 오모(27)씨는 "사용료가 부담 줄 수준은 아니라 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7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소아과를 찾은 시민이 아이와 함께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7일 오전 서울 시내의 한 소아과를 찾은 시민이 아이와 함께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뉴스1

문제는 노인 등 취약계층이다. 실제 현장접수자 대부분은 60세 이상 고령층이었다. A병원에서 오전 7시 30분부터 오픈런을 했다는 박우용(72)씨는 "보통 2시간쯤 기다리는데 나는 늙어서 앱인지 뭔지는 쓸 줄 모른다"고 멋쩍어했다.

디지털 소외 현상은 병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보건당국이 종합병원 등을 중심으로 전자처방전 도입을 추진하면서 일부 약국에서도 QR코드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이 곤욕을 치르고 있다. 최모(78)씨는 "큰 병원에서 전자처방전을 주는데, 매번 약사 도움 없이는 접수가 어려워 민망하다"고 푸념했다.

당국도 부작용은 알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병원이 특정 예약 방식만 요구하면 진료 거부에 해당돼, 다양한 방식을 병행하도록 지도·감독을 요청하는 공문을 각 자치단체에 내려보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예약 앱 업체나 병원은 진료대기와 관련한 가이드라인 도입에 머뭇거리고 있다. 똑닥 관계자는 "서비스 이용 병원에 현장 접수도 병행해야 한다고 안내한다"면서도 "병원마다 상황이 달라 일률적 지침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해명했다. 대한병원협회 관계자도 "정부 정책이 나오지 않은 마당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기 해결은 미봉책... 공공의료 체질 강화해야"

10월 서울 성북우리아이들병원에서 독감 및 외래진료를 받으려는 어린이와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10월 서울 성북우리아이들병원에서 독감 및 외래진료를 받으려는 어린이와 보호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해법의 본질은 소아청소년과 인기가 떨어지면서 생긴 필수의료 공백을 정부가 어떻게 메우느냐에 모아진다. 진료대기 문제 해결이라는 미봉책이 아닌 공공의료 영역의 체질 강화가 먼저라는 것이다. 가뜩이나 예약 앱 유료화는 기본권인 의료서비스를 두고 앱 사용자와 미사용자를 차별한다는 비판도 받는 실정이다.

김영선 경희대 노인학과 교수는 "당장 '디지털 코디네이터' 등을 병원 현장에 배치해 고령층도 진료에서 차별받지 않도록 하고, 이들에게도 손쉬운 앱 개발과 디지털 활용 교육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줄 서기 앱이 등장한 근본 배경에는 지역 소아과 부족 사태가 있다"면서 "그 지점에서부터 대책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승엽 기자
장수현 기자
최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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