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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버스에 '예스키즈존'을 만든다면…

입력
2023.12.07 22: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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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버스 안에 붙어 있는 휠체어, 유아차 하차벨. 휠체어와 유아차가 나란히 버스에 타고 있다. ⓒ홍윤희

파리 버스 안에 붙어 있는 휠체어, 유아차 하차벨. 휠체어와 유아차가 나란히 버스에 타고 있다. ⓒ홍윤희

프랑스 파리에 갔을 때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길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유아차였다. 파리 시내는 거의 대부분 지역이 19세기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서 서울에 비해 휠체어나 유아차 접근성이 좋다고 할 수 없다. 수유실이나 화장실 환경도 서울에 비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에 유아차가 많았다. 특히 버스를 타면 거의 항상 유아차를 볼 수 있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딸이 버스를 타고 있으면 유아차가 옆에 나란히 서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파리엔 굴절버스가 많아 버스 한 대에 유아차, 휠체어가 두세 대 탈 수 있다는 것도 눈에 띄었다.

반면 한국 거리에서는 유아차를 보기 힘들다. 버스에서는 거의 유아차를 볼 수 없다. 전국 저상버스(한 발만 디디면 올라갈 수 있는) 비중은 26%에 불과하다. 서울의 경우 저상버스 비중이 63%가 넘는데도 유아차와 함께 버스를 타는 건 여전히 스트레스받는 일이다. 잘못된 종사자 인식도 한몫한다. 어떤 버스기사들은 경사로를 내려달라고 하면 ‘휠체어용’이라며 경사로 내려주기를 거부한다. 사실 거부 자체가 법 위반이다. 저상버스가 도입된 근거는 ‘장애인, 임산부, 노인 등 편의증진보장에 관한 법’(약칭 장애인 등 편의증진법)으로 당연히 영유아 동반인도 포함된다.

한국 버스에서 유아차를 볼 수 없는 건 ‘아이를 환영하지 않을지도 몰라’라는 보호자들의 공포와 실제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들어낸 인식이 악순환을 이룬 결과다. 유아차와 함께 외출하면 그동안 아무 버스나 타다가 저상버스를 골라서 타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유아차로 버스를 탄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탈 엄두를 내질 못한다. 용기를 내 버스를 타보려 해도 버스 기사가 싫은 표정을 지으면 버스를 기피하게 된다. 어떤 부모들은 ‘노키즈존’의 존재 자체에 위축된 나머지 아이를 데리고는 그저 가는 곳들만 가게 된다고 토로한다.

계단 몇 개를 유아차를 들어 올려서 이동해야 하는 물리적인 불편보다 ‘내 아이가 환대받지 못할 수 있다’는 심리적 장벽이 더 큰 셈이다. 심리 장벽은 비용부담으로도 이어진다. 유아차가 편한 곳을 찾다보니 백화점이나 할인점 같은 공간들을 주로 찾게 되고, 대중교통 장벽이 높다보니 차가 없던 부모들도 차를 사야 하는 식이다.

한국 합계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가장 낮은 0.78명이다. 반면 프랑스는 1.8명이다. 프랑스의 출산율이 높은 이유엔 비혼 출산을 차별하지 않는 제도를 비롯해 ‘아이 낳기 좋은 환경’이 크게 작용했다. 뉴욕타임스가 지적한 ‘중세 흑사병’ 때보다 심각한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면 입시지옥을 포함해 치열한 경쟁 타파와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 안정적으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신뢰가 필요하다.

많은 과제가 놓여있겠지만, 우선 길거리에 유아차가 ‘신뢰하고’ 나올 수 있도록 버스부터 ‘예스키즈존’으로 만들면 어떨까. 마을버스, 광역버스, 고속버스를 포함해 모든 버스를 저상버스로 전환하고 아이와 유아차가 쉽게 탈 수 있게 해, 양육자들의 이동이 자유롭게 하자는 거다. 길에서 유아차를 쉽게 볼 수 있고 아이랑 어디든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다면 ‘사회가 출산과 양육을 환영함’을 누구나 느낄 수 있는 확실한 신호가 될 것이다.


홍윤희 장애인이동권증진 콘텐츠제작 협동조합 '무의'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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